허윤홍 GS건설 사장이 신사업을 본격화하면서 향후 4세 경영에서 그룹 후계자로서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지 재계 관심이 쏠린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GS건설 본사. 사진=연합뉴스
GS건설은 지난 3월 27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실내장식·내장목공업 △조립식 욕실·욕실제품 제조·판매·보수 유지관리업을 정관에 추가했다. 모듈러 사업을 본격화하는 행보다. GS건설은 앞서 폴란드와 영국, 미국의 모듈러 전문회사 3곳을 올 초 인수했다. 3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유럽·미국 등 해외 모듈러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모듈러 공법은 기본 골조·전기 배선·온돌·현관문 등 주요 구조물을 공장에서 미리 만든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장난감 레고와 비슷하다.
에너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인도 북서부 태양광 발전소 개발 사업에 2350만 달러를 투입했고, 포항 영일만 일반산업단지 내 재활용 규제자유특구에 2차전지 재활용 공장을 구축하고자 2022년까지 1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아울러 GS건설의 종합부동산 개발회사 자이S&D를 지난해 코스피 시장에 상장시킨 데 이어 최근 또 다른 자회사인 부동산 자산운용사 지베스코를 설립했다. 이들과 베트남 호치민 냐베군 신도시 개발 등 디벨로퍼(개발사업자) 사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GS건설의 최근 잇단 신사업 투자는 건설업계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GS건설의 영업이익 비중 90%가량을 차지하는 국내 주택시장은 부동산 규제와 토지 부족으로 한계에 도달했고, 해외 시장도 저유가로 중동지역 플랜트 사업과 신도시 개발 등 발주가 감소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확산으로 많은 국가에서 국경을 폐쇄한 데다 글로벌 경기침체 심화에 따른 글로벌 주택시장 붕괴 우려까지 나온다. 성장은 물론 생존을 위해 미래성장동력이 절실하다.
미래 신사업을 허윤홍 사장이 진두지휘한다는 점에서 승계구도를 마련하는 차원인 것으로도 보인다. 허 사장은 허창수 전 GS그룹 회장이자 현 GS건설 회장의 장남이다. 허 회장은 고 허만정 LG그룹 공동창업주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 장남으로, LG그룹과 분리돼 GS그룹을 설립한 초기부터 1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허창수 전 회장은 지난해 말 동생인 허태수 전 GS홈쇼핑 대표에게 회장직을 넘겼다.
허창수 전 회장이 동생에게 총수 자리를 넘겨준 데 대해 재계에서는 허윤홍 사장이 1979년생으로 상대적으로 아직 어리고 뚜렷한 실적이 없는 만큼 허태수 회장을 승계 과정에서 징검다리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GS그룹과 사돈관계인 LG그룹도 고 구본무 전 회장이 병상에 있을 당시 동생 구본준 부회장이 그룹 경영을 챙기다가 결국 구광모 현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바 있다. 허태수 회장은 슬하에 외동딸 정현 양만 두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허태수 회장은 징검다리 역할일 뿐 승계구도에선 의미가 없다”며 “최근 신사업 얘기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 건 승계를 위한 성과 만들기 아니겠느냐”고 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도 “신사업은 좋은 사업 아이템을 주고 실적을 내도록 하는 차원으로, 이를 허 사장이 이끈다는 건 그룹 후계자란 의미”라며 “경쟁자로 언급되는 허준홍 삼양통상 대표와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등에겐 특별한 업적을 남기지 않는 반면 허윤홍 사장에겐 계속 업적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창수 GS건설 회장(사진)의 장남인 허윤홍 GS건설 사장이 연초부터 신사업 광폭 행보를 보이면서 재계 관심이 쏠린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실제 지난해부터 GS그룹 4세들이 꾸준히 그룹 지분을 늘리면서 ‘포스트 허태수’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후계자는 허윤홍 사장이라는 게 재계 중론이다. 그간 허 사장의 경쟁 상대로는 허준홍 대표와 허세홍 사장을 비롯해 허서홍 GS에너지 전무, 허철홍 GS칼텍스 상무 등 경영 일선에 나선 4명이 언급됐다.
가장 유력했던 허준홍 대표는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장남이다. 허남각 회장은 창업주의 장남인 고 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즉 GS가문 장손이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최근 삼양통상 대표를 맡았다. 허서홍 전무는 아버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뒤를 잇고, 허철홍 상무도 아버지인 허정수 GS네오텍 회장 사업을 이을 가능성이 크다.
허정구 회장의 차남인 허동수 회장의 아들 허세홍 사장도 아버지를 따라 GS칼텍스를 맡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부자가 향후 삼양통상이나 GS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를 맡거나 다른 사업을 찾아 독립경영에 나설 가능성도 언급된다.
박주근 대표는 “GS칼텍스는 그룹 내 매출은 가장 크지만 미국 칼텍스사가 지분 50%를 나눠 가지며 설립한 합작회사로 GS그룹에서 컨트롤할 수 없어 승계에 영향을 못 미친다”며 “칼텍스를 이끌어 허동수 회장 등 아직 가져갈 계열사가 정해지지 않은 형제들은 추후 계열사를 떼어 갖고 독립해야 하기에 지주사 지분을 사들이며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허세홍 사장은 공시 기준으로 지난 3월 한 달간 그룹 지주사인 (주)GS 지분을 6일 0.51%, 17일 0.16%, 27일 0.07% 잇달아 매입했다. 4세들 가운데 지분을 가장 많이 매입한 것이다.
GS건설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라는 점, 허창수 회장이 GS건설 최대주주라는 점 등도 허윤홍 사장이 그룹 후계자란 의견을 뒷받침한다. 박주근 대표는 “GS그룹은 케미칼이 아닌 건설이 중심”이라며 “허준구 회장이 LG건설을 이끌면서 GS그룹을 일으켜 세웠기에 그의 장남 허창수 회장이 그룹 총수 역할을 했던 것”이라고 했다.
다만 허윤홍 사장의 신사업 추진이 순항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모듈러나 에너지사업은 단기에 성과나기 어렵다. 또 이를 통해 건설업 역량을 강화할 순 있겠으나 건설경기 전망이 좋지 않아 주력 사업이 되긴 힘들다는 관측이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모듈러공법은 미리 설계한 뒤 찍어내 조립하기에 철근콘크리트 주택에 비해 공기 단축과 원가 절감에 효율적이지만 해외에서도 주류가 아니어서 수요가 많지 않고 국내에서도 안전에 대한 우려로 법망이 불리해 쉽지 않다”며 “미래를 위해 틈새시장을 노리는 투자는 될 수 있어도 실적이 나기까지 오래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의 재계 관계자도 “모듈러 주택사업은 주택경기가 안 좋으면 같이 죽는데 해외 건설경기가 심각한 저유가로 풀리지 않고 있다”며 “국내도 재개발 재건축 위주로 발주량이 줄어든 데다 인구 감소 추세여서 전망이 좋지는 않다”고 했다.
건설사 중 모듈러 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곳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예측이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박형렬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사업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프로젝트가 확장돼 구체적인 계획서가 나와야 하는데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며 “그간 다른 건설사들에서 본 적이 없는 비즈니스기에 예측하기 어렵다.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