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월 1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코로나19’ 위기에 보증업무 도맡았는데
정부는 2월부터 소상공인,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신용보증재단에 금융지원을 받고자 몰렸다.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보증서 심사는 계속 지연됐다. 이는 대출 연기로 이어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보증 지원을 받기 위해 전국 16개 지역신용보증재단에 상담한 사례가 3월 27일 0시 기준 약 30만 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절반 정도만이 보증서가 발급됐고 대출 실행은 30%만 성공했다.
소상공인은 유동성에 취약해 하루만 늦어져도 도산할 위험성이 높다. 결국 중소기업벤처부는 보증 심사를 시중은행에 위임했다. 3월 13일 8개 시중은행으로 확대했고 4월 1일에는 14개까지 늘어났다. 시중은행은 보증 상담 및 심사를 맡아 고객의 서류를 정리해 신용보증재단에 보냈다. 은행은 본연의 업무 외에 신용보증재단의 일까지 떠맡게 된 셈이다. 시중은행이 신용보증재단과 함께하는 이차보전 프로그램은 3조 5000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신용보증재단이 은행에서 처리한 보증 서류가 잘못됐다며 반송하는 일이 속출하면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기업 실사부터 신용평가를 신용보증재단에서 하면 은행은 대출만 해주면 끝인데, 코로나 특례보증 때문에 사람이 너무 몰려 업무처리를 못하니까 보증업무를 은행에 위임했다”며 “은행에서 신용보증재단의 일을 맡아서 도와주고 있는데 서류 순서가 다르다고 우편을 반송하니까 황당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시중은행 직원은 “신용보증재단, 은행보다는 인력 지원 없이 돈만 푸는 정부에 잘못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 소상공인 금융지원 신속 집행 방안 안내문. 사진=신용보증재단중앙회 홈페이지
# 대출 연장 거부에 민원인의 협박도…
정부는 이를 의식한 듯 업무 배분을 다시 했다. △신용등급 4~10등급의 저신용자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경영안정자금’ △1~6등급의 중신용자는 기업은행 ‘초저금리 대출’ △1~3등급 고신용자는 ‘시중은행 이차보전 프로그램’으로 나눴다.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은 신용보증재단중앙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보증서 발급까지 도맡았다. 대출이 필요한 소상공인이 대부분 중·저신용자이기에 기업은행,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의 시중은행 직원은 “정부가 병목현상을 피하고자 자금 공급 채널을 나눠서 이제 고신용자가 주로 찾고 있다”며 “중·저신용자가 오면 보증업무를 해줄 수는 있지만, 기업은행으로 가보시는 게 좋겠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저신용자를 피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소상공인 대출원금 만기 연장에도 조건이 있는 것이 한 예다. 대출 연체가 없고, 자본잠식, 폐업 등에 해당하지 않아야 최소 6개월 이상 대출원금 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대상이 된다. 올해 9월 30일까지 상환 기한이 도래하는 중소기업에만 적용되고, 가계 대출은 대상이 아니다. 연 매출액이 1억 원을 넘는 업체는 매출 감소 증빙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충족하지 못한 악성 민원인이 행원에게 욕하고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하는 일이 잦다.
또 다른 시중은행 직원은 “조건이 안 돼 대출 연장을 거부하면 저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고 욕을 퍼붓는다”며 “어떤 민원인은 금감원에 민원을 넣으면 지점 KPI(핵심성과지표)가 대폭 깎이는 걸 알고서 협박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 이름으로 민원이 들어가서 지점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까 괜히 저신용자를 기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