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공공기관 사무실 풍경.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재택근무하는 인원이 늘었다. 사진=연합뉴스
시민들은 답답함과 혼란을 느끼고 있지만 서서히 ‘언택트’ 일상에 적응해 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난다면 어떨까. 코로나19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까. 각 분야 전문가들과 트렌드를 연구·분석하는 전문가들은 앞으로 일상은 ‘코로나19 이전 일상’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나이 아닌 능력으로…’ 수평적 직장 문화 올 것
가장 큰 변화는 직장에서 생길 전망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재택근무는 몇몇 IT기업이나 자유로운 분위기의 스타트업에서 이뤄진 근무 형태였다. 코로나19로 대기업을 비롯해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이 재택근무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는 ‘만나야 일이 된다’는 맹목적 믿음이 깨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용섭 소장은 “만나지 않아도 일이 된다는 걸 모두가 경험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재택근무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10여 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 주도권을 가진 기득권층이 이에 저항해왔다. 이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강제로 재택근무가 이뤄졌다. 이제 꼭 만나서 일해야 할 명분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소장은 “우리나라 기업은 나이순의 서열화 문화가 중심이다. 만남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이 서열화 문화는 만나지 않으면 깨진다. 앞으로 자연스럽게 수평적 문화가 자리할 것”이라며 “데이터나 성과를 가지고 그 사람의 능력이 눈에 보일 거다. 그러면 나이는 빠지고 능력 그 자체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국민 대부분이 온라인 경험, 오프라인은 살길 모색해야
코로나19 국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비 패턴에서 나타난다. 온라인 쇼핑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대형마트 매출 32%가 온라인 몰로 이동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고객들이 오프라인으로 돌아올 순 있겠지만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긴 어려울 거란 예측이 나온다.
인적이 드문 대형 마트. 코로나19 이후 생필품이나 식자재 등을 온라인 쇼핑 이용량이 급격히 늘었다. 사진=연합뉴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자유의지에 반해서 비대면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코로나19가 끝나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긴 할 것”이라면서도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온라인을 꺼렸던 사람들이 온라인을 경험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온라인으로 배송하고, 극장에 가지 않고 영화를 봤다. 그것에 익숙해지고 적응이 되면 오프라인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 연구위원은 “사실 지난해부터 이야기가 나온 것이지만 코로나19로 빠르게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이 달라질 것”이라며 “물품을 구매하는 유통 채널이 아닌 온라인에서 물품을 사기 전 경험이나 체험을 위한 장이 될 거다. 오프라인 기반의 기업들은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피부로 느낀 ‘죽음의 공포’…건강식품 늘고, 사치품 줄까
코로나19 국면에서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민들이 눈앞에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며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건강식품 등 헬스케어 관련 제품 판매가 크게 느는 추세다. 하지만 이번 심리적 타격이 고객들의 물건 선택 기준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안정 지향적인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불신이 생길 거다. 예를 들어 단순히 나쁜 성분이 안 든 음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성분이 든 음식이 사려고 하는 등 제품 선택 기준이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죽음의 공포라는 심리적 타격이 어떻게 작용할지 아직 알기 어렵다. 주목되는 시장은 럭셔리 마켓이다. 죽음을 인지하다 보면 남에게 보이기 위해 샀던 것들이 덧없이 느껴지기 때문에 고가의 명품 같은 사치품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쓰고 죽자’는 심리가 발동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에도 정치·사교육은 ‘무풍’?
코로나19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영역도 있다. 정치와 교육 분야다. 물론 당장에 닥친 4·15 총선에서 유세 방법이 달라지긴 했지만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적다는 관측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대표는 “수많은 법이 바뀌긴 할 것이다. 예배 등 다중 집회 금지 기준, 정부의 비상 재정 여력, 구호 물품 구비 등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은 산적했다. 하지만 유권자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거나 정치 문화가 바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온라인 시범 수업을 진행 중인 경기도 광주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 사진=연합뉴스
교육 분야에서는 학교가 온라인 개학을 하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했다. 공교육의 질을 불신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사교육 시장이 심화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공교육이 학부모에게 제대로 평가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교육 시장은 이미 인터넷 강의 공급이 포화 상태라 사실 영향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관리 측면에서 온라인의 한계가 분명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 학원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라며 “지금 당장은 과외 등 개인 사교육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구 정책국장은 “온라인 개학을 하는 공교육을 불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학부모가 공교육 수업을 노트북 화면을 통해 직접 보게 될 것”이라며 “이후 공교육을 오히려 신뢰할 수도 있고, 반대로 사교육 편중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람을 꺼리는 세상…빈부격차 극명히 보여준 계기
코로나19가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키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용섭 소장은 “예외는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부자는 안 아프고 안 죽는다. 없는 사람들은 집에만 계속 있고, 부자들은 별장을 간다. 이제까지 빈부는 누구는 벤츠 타고 누구는 아반떼 타는 정도 차이였는데, 이제 죽고 사는 문제로 나타났다”며 “이를 완화할 수 있는 국가의 정책이나 행동이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경자 교수는 “사회적 격리의 학술적 의미는 ‘물리적 공간 격리’다. 하지만 현재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도 멀어지고 있다고 보인다.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발달한 사회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함께 살아가는 맛을 잃진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고 전했다.
최지예 연구위원은 “코로나19가 트렌드 변화에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이 무색할 정도다. 이젠 코로나19를 빼곤 트렌드를 분석하는 게 무의미하다. 코로나19가 얼마나 장기화하느냐가 트렌드 분석에서 관건”이라며 “분명한 건 코로나19가 티핑 포인트(급 변점)가 된 것 같다. 굉장히 많은 이슈를 만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