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n번방 가해자들이 속속 체포되고 있으나 정작 n번방 개설자인 갓갓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3월 23일 경북지방경찰청이 갓갓의 것으로 추정되는 IP(인터넷 식별 번호)를 찾았다고 밝히며 수사에 가닥이 잡히는가 했으나 이후 검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사진=고성준 기자
갓갓의 추적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까지 검거된 성착취물 제작‧유포자는 대부분 최근까지 범행을 저질러 많은 흔적을 남긴 반면 갓갓은 지난해 7월 가지고 있던 모든 자료를 공범 ‘켈리’에게 넘기고 이미 종적을 감췄다. 텔레그램에는 특정 기간 접속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계정이 삭제되는 기능이 있다. 경찰은 텔레그램 본사를 찾아 접촉하기 위해 노력 중이나 텔레그램이 수사에 협조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갓갓에 대한 수사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와치맨이 고담방 개설 전 ‘av snoop’라는 불법 사이트를 운영했듯, 갓갓 역시 n번방 개설 이전의 행적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n번방이 개설되기 전부터 갓갓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고 있던 피해자도 있었다. 자신을 n번방 피해자라고 밝힌 한 여성은 1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약 1년간 갓갓으로부터 협박과 고문에 가까운 성착취를 당했다”고 토로했다. n번방이 개설된 건 지난해 2월이다. 즉, 이 말이 사실이라면 갓갓은 그 이전부터 트위터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편 n번방 개설 이후에는 갓갓이 ‘뀨릅’이라는 닉네임과 ‘djdjdjsjsjsus’라는 아이디를 이용해 n번방과 박사방을 홍보하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갓갓은 n번방을 운영하기 전부터 트위터에서 활동하며 범행 대상을 찾아다녔다. 주된 범행대상은 미성년자나 자신의 신체 일부 사진을 올리는 일탈계였다. 갓갓은 피싱링크를 이용해 이들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해서 빼낸 사진을 협박 수단으로 사용했다. 혹은 경찰을 사칭해 “부모나 학교에 이 사실을 알리겠다”며 “일주일 동안 노예를 하면 없던 일로 해 주겠다”고 협박했다. 일련의 과정들은 영상이나 사진으로 기록되면서 또 다른 협박 수단이 됐다.
그런데 복수의 제보자들에 따르면 트위터에는 갓갓와 유사한 범행 수법으로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던 가해자가 또 있었다. 2018년에 한 신원 미상의 인물이 변호사를 사칭해 일탈계정을 운영하는 여성들을 협박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한 제보자는 “자칭 김 아무개 변호사라는 사람이 나타나 법률 상담을 빌미로 오픈 카톡으로 유인한 뒤 일탈계 여성들의 신상 정보를 캐낸 뒤 이를 협박 수단으로 썼다”고 말했다. 나체 사진을 보내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한다는 식이었다는 것. 물론 진짜 변호사도 아니었다.
또 다른 제보자는 “실제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변호사를 사칭한 이가 신상유포를 하지 않는 대가로 일주일 동안의 노예 생활을 요구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갓갓이 피해자들에게 요구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변호사 사칭 수법이 어느 정도 알려지자 경찰과 사이버수사대를 사칭하는 수법이 등장했고 여기에 피싱링크까지 접목됐다.
범행 수법과 요구사항 등이 매우 유사하다보니 트위터 내에서는 이러한 사칭 계정이 갓갓의 전신이거나 공범일 수도 있다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실제로 갓갓은 2019년 7월 잠적한 이후 2020년 1월 다시 모습을 드러냈는데(관련기사 [단독] 조주빈 vs 갓갓, 대화방서 ‘누가 더 대단한가’ 대결 펼쳤다) 자신의 공범인 ‘반지’를 찾으며 “트위터에서 주로 활동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김 변호사나 사이버수사대를 사칭한 이들의 행적은 현재도 묘연하다.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갓갓과 연결되어 있다면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성착취물 역시 n번방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2018년부터 트위터 내 성착취 피해자를 돕고 있는 계정주는 “갓갓과 김 변호사가 동일인이라는 확증은 없다. 다만 그 수법이 너무 흡사했다. 동일인이 아니라면 최소한 해킹만 도입한 모방범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 수사가 비단 텔레그램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트위터 등 다양한 SNS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전했다. 2018년 트위터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던 일이 결국 지금의 n번방 사건으로 번진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 처벌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그동안 알려진 갓갓에 대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갓갓은 1월 조주빈(25‧무직)에게 자신이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으며 수능을 보기 위해 잠적한 것”이라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허위 신상일 가능성이 높다. 조주빈 역시 온라인상에서는 자신을 ‘중국 청도에 거주하는 40대 남성 최선일’이라고 소개했으나 검거 이후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현재 조주빈은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 12개 혐의로 구속돼 조사받고 있다.
갓갓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경찰은 뒷북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중순부터 n번방 관련 신고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경찰이 매번 이를 반려한 까닭이다. 지난해 8월 박사방을 신고하기 위해 직접 경찰서를 방문했다는 A 씨는 “박사의 공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증거자료를 PDF 파일로 가져갔으나 경찰이 ‘수사가 어렵다’며 신고를 반려했다”고 말했다. A 씨가 확보했던 인물은 공범이 아닌 박사방에 가입하고자 했던 회원으로 확인됐다.
경찰도 갓갓 검거에 총력을 쏟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청 본청은 최근 경력 20년의 총경급 책임수사관을 경북지방경찰청으로 보내 수사를 지원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4월 2일 경찰청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 브리핑에 따르면 1일 기준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로 검거된 피의자는 총 140명이다. 자수자는 4명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