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3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통합당 합류 불발 후 김 위원장은 주변에 불만을 드러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교안 대표를 향한 것이었다. 김 위원장과 가깝게 지낸다는 한 정치권 인사는 “(김 위원장은) 황 대표가 자꾸 말을 바꾼다고 생각했다. 자기 앞에서 했던 것과는 다른 말들을 황 대표가 하는 것을 보고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김 위원장 입장에서 ‘초짜’나 다름없는 황 대표가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에 대해 크게 실망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통합당 참여를 공식 거절한 뒤 당 안팎에서 흘러나왔던 얘기와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황 대표는 공천관리위원회와 김종인 위원장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혼선을 빚는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공천권 일부 지분을 원했고, 공관위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황 대표는 김 위원장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고, 이것이 김 위원장 영입 실패로 이어졌다는 게 통합당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하지만 황 대표가 처한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이낙연 후보와 맞붙은 종로 지역은 물론, 한때 과반도 가능할 것이란 선거 판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황 대표 측근들은 “종로 지역 유세에 전념하면서 서울과 수도권에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조언했고, 다시 한번 김 위원장 필요성이 부각됐다. 총선 핵심 변수인 무당층과 수도권 유권자들을 공략하기 위해선 김 위원장에게 선거를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황 대표는 다시 김 위원장을 찾았다. 김 위원장이 빠진 선대위가 출범한 3월 16일부터 김 위원장 참여를 공식 발표한 3월 26일 사이에만 3번을 방문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삼고초려’였던 셈이다. 결국 김 위원장은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직 제안을 수락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첫 일성으로 1956년 야당의 구호였던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외치며 정권 심판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19대 새누리당과 20대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었던 김 위원장이 21대에서도 예전과 같은 파괴력을 보일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황 대표 측은 김 위원장이 천군만마가 될 것이라고 자신하지만 당내에서조차 부정적인 반응이 감지된다. 통합당 중진 의원은 “선거를 불과 20여 일 앞두고 김 위원장이 합류했다. 뭘 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면서 “여와 야를 가리지 않는 김 위원장 모습에 과연 중도층이 움직일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3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황 대표 측근들은 김 위원장 합류 자체가 득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친황교안계로 분류되는 통합당의 한 초선 의원은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다. 그런 그가 ‘갈아보자’고 했다. 이는 무당층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19대 때도, 20대 때도 김 위원장이 온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라는 말이 있었다. 수도권 쪽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황 대표가 총선 후까지를 염두에 두고 김 위원장 영입에 공을 들였다고 분석한다. 일단 총선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분산할 수 있다는 게 꼽힌다. 황 대표가 김 위원장을 자신의 ‘후임’으로 내세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번 공천을 통해 원내로 입성할 ‘황교안 키즈’의 구심점 역할을 김 위원장이 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최근 여의도에서 회자되는 ‘황교안 대권-김종인 당권 밀약설’과도 맞닿아있는 부분이다.
앞서의 친황계 의원은 “공천 지분 요구를 거절당했던 김 위원장이 왜 다시 돌아왔겠느냐”고 되물으면서 “차기 당권과 관련해 황 대표와 김 위원장 사이에 얘기가 오갔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 측 인사도 “1940년생인 김 위원장은 이번이 정치인으로선 마지막 기회다. 최종 목표는 정권 교체다. 이를 위해선 총선 승리 뒤 대선까지 통합당에 남아 있어야 한다. 당 대표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황 대표와 김 위원장 간의 전략적 연대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총선 결과에 따라서도 불협화음을 낼 가능성이 높다. 패배할 경우 책임론을 놓고서다. 김 대표 측 인사는 “김 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선거 패배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차원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선대위원장으로서 이를 피하진 않겠지만 솔직히 선거 20여 일 전에 합류한 김 위원장에게 전적으로 씌우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 ‘스타일’이 황 대표와 맞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과거 자신을 영입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결국 갈라섰다. 워낙 본인의 색깔이 뚜렷해 기존 주류 진영(친박·친문)에 좀처럼 녹아들지 못했던 탓이었다. 오히려 김 위원장은 친박 및 친문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황 대표가 김 위원장을 영입하면서 불거진 잡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는 둘 사이의 ‘불씨’가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황 대표 정치 일정은 차기 대선에 맞춰져 있다. 다음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대권 행보를 전적으로 지원해줄 인사를 후임으로 원할 것이란 얘기다. 또 다른 친황계 인사는 “황 대표가 대선을 치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당 내 확실한 우군이 있어야 한다. 황 대표에게 후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로열티’다. 하지만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한 정치신인 황 대표에게 김 위원장이 호락호락하겠느냐. 자칫 김 위원장에게 휘둘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통합당 내에선 김 위원장이 황 대표의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김 위원장이 당권을 넘어 대권까지 노릴 가능성이다. 김 위원장은 2017년 대선 때도 출마를 선언했다가 접은 적이 있다. 김 위원장 측 인사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총선에서 크게 이긴다면 보수 진영에서 김 위원장 위상도 달라질 것이다. 솔직히 지금 보수 쪽에선 황 대표 말고 ‘선수’가 없지 않느냐”면서 “김 위원장 전공이 ‘킹메이커’이긴 하지만 2017년처럼 상황만 조성되면 직접 ‘킹’에 도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