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자 프로농구 부산 BNK 썸의 신임 코치로 선임된 변연하(40)의 다부진 각오다. WKBL 최초로 감독부터 코치들이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BNK에서 포워드 부문을 맡게 될 변 코치는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딛는 소감이 마냥 기쁘고 설레지는 않지만 자신의 역할이 분명하기에 기대를 갖고 첫 출발하게 됐다고 말한다.
부산 동주여고 출신인 변 코치는 1999년 용인 삼성생명에서 WKBL에 데뷔한 뒤 2008-2009시즌부터 청주 KB 스타즈로 옮겨 활약을 이어가다 2015-16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WKBL 정규리그 통산 545경기에 출전해 평균 14.4점 4.2리바운드 4.1어시스트를, 역대 포워드 중 가장 많은 7863점을 기록했다. 정규리그 통산 3점슛 부문에서도 1014개로 1위에 오른 WKBL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변 코치는 은퇴 후 미국 스탠퍼드대학 여자농구팀에서 2년간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지난해 7월 귀국해선 부산 MBC 농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했다. 다음은 변 코치와의 전화 인터뷰다.
변연하가 코트로 돌아온다. 그는 최근 부산 BNK 썸의 신임 코치로 선임됐다. 사진=이영미 기자
―먼저 코치가 된 소감을 듣기 전에 해설위원으로 본 WKBL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지금 선수들의 기량이 이전 선수들보다 조금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물론 그런 부분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 선배들도 제가 선수로 뛸 때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전 세대들과 지금의 선수들을 비교하면 무게중심이 기울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죠. 다시 본 WKBL의 수준이 이전보다 무게감이 떨어진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밑에서 올라오는 선수들의 기량이 점차 향상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코트를 떠나 있었던 3~4년 동안 절반 정도의 선수들이 바뀐 것 같더라고요. 아쉬운 점은 각 팀을 대표하는 확실한 에이스의 부재입니다. 아산 우리은행 위비 박혜진, 청주 KB 스타즈 박지수처럼 스타플레이어의 부재가 눈에 띄다 보니 WKBL의 전체적인 수준이 더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그는 선수생활 은퇴 이후 미국에서 지도자 수업을 마치고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부천 하나은행의 강이슬, KB 허예은 등 에이스의 자질이 보이는 선수들이 눈에 띈다는 것이죠. 이런 선수들이 각 팀마다 골고루 분포돼 있어야 해요. 그래야 고른 전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고요.”
―중계석에서 본 코트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빅게임이 아니면 다소 루즈한 경기가 많았어요. 1, 2위 팀 외 나머지 4팀의 전력이 엇비슷하다 보니 경기가 박진감 있게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창단팀인 BNK가 1, 2위 팀을 잡을 때는 팬들의 몰입도가 굉장했었죠. 우리은행이 올 시즌 우승팀이 됐지만 KB를 제외한 나머지 4개 팀이 1, 2위 팀과의 수준 차를 줄이는 것만이 WKBL의 흥행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해설위원으로서 본 아산 우리은행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위성우 감독님의 지도력과 선수들의 뛰어난 습득력이 잘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요. 시즌을 치르다보면 2~3일 동안 준비해서 경기에 나서는 일정들이 계속되는데 상대할 팀마다 다른 전략으로 경기를 준비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감독이 아무리 잘 가르쳐도 그걸 받아들이는 선수들의 습득력, 이해력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거잖아요. 우리은행은 감독님과 선수들의 호흡이 아주 좋아요. 특히 박혜진, 김정은 등 농구 잘하는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을 이끌어주는 것도 눈에 띄고요. 무엇보다 코치로 있는 (전)주원 언니의 ‘어시스트’ 능력은 최고입니다. 위 감독님을 어시스트하는 능력이요.”
―코치 제안을 제일 먼저 유영주 감독이 했다고 들었어요.
“해설을 하면서 감독님을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시즌이 조기 종료된 후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감독님이 다음 시즌부터 같이 가자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BNK의 포워드 라인을 키우고 싶다면서요. 고민하지 않았어요. 가고 싶은 길이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BNK에는 가드 출신의 최윤아 코치, 센터 출신의 양지희 코치가 있습니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제가 합류하게 되면 좀 더 전문적인 코치진들이 완성된다고 보신 것 같아요. 농구 잘했다고 해서 잘 가르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저는 특히 코치 경험도 전무하고요. 배우면서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포지션별 최강의 코칭스태프네요.
“그래서 농담 삼아 코치들끼리 이런 이야기도 했어요. 몸 잘 만들어서 선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자고요. 요즘 선수들은 코치의 커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코치가 잘 가르치는 건 기본이고, 그 코치를 믿고 갈 수 있는 신뢰 형성을 중요시하더라고요. 선수 변연하가 쌓은 기록들은 모두 내려놓고 초보 코치로 선수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고 싶어요. 선수들이 저랑 거리감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가왔으면 좋겠어요. 새벽이고, 야간이고 슛 좀 잡아달라고 하면 언제든 뛰어나갈 준비 돼 있거든요. 그 사이에 선수들과 마음을 주고받을 시간도 필요할 것이고요.”
변연하는 선수 시절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찬사와 함께 NBA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에 빗대 ‘변코비’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코치 선임 발표 후 주위로부터 축하 많이 받았죠.
“네. 제가 알고 있는 많은 농구인들이 연락을 주셨어요. 좋은 기회가 주어졌으니 열심히 해보라고요. 그리고 이 한 마디도 잊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좋겠지만 앞으로 많이 힘들 것이라고요(웃음).”
―언중유골이네요. 그만큼 지도자의 길이 쉽지 않다는 의미겠죠.
“저도 각오하고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유영주 감독님 밑에서 많은 걸 배우고 싶어요.”
―변연하 코치가 롤모델로 삼는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삼성생명 시절 선수 변연하를 만들어주신 정덕화 감독님입니다. 그분한테서 농구를 제대로 배웠어요. 수비를 강조하시면서도 공격을 살리는 테크닉, 공격과 수비의 다양한 패턴들, 그 속에서의 움직임들을 매우 디테일하게 짚어 주셨거든요. 저도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조금씩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만 한국 여자농구에서 WKBL 출신이 지도자 자리를 차지하는 건 ‘유리 천장’이나 다름없었다. 여전히 남자 농구 출신 지도자들이 WKBL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변 코치는 귀국 후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농구밖에 없는데 막상 돌아와 보니 농구계에서 내가 할 일이 없다”라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다.
“전 그런 점에서 유영주 감독님이 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밑의 최윤아, 양지희 코치를 포함해서 여성 지도자들이 이끄는 팀도 좋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증명해주길 바랍니다.”
이제 그들 속으로 들어간 코치 변연하가 BNK에서 어떠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