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인 조사 앞두고 숨진 수사관의 휴대전화
경찰 등 사정기관에 따르면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는 최근 백 수사관이 사용하던 휴대전화(아이폰) 잠금을 해제하는 데 성공했다. 2019년 12월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4개월 만이다. 아이폰은 잠금을 해제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검찰은 이스라엘에서 들여온 셀레브라이트사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잠금을 해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이 휴대전화를 주목하고 있을까. 우선 백 수사관의 역할을 알아야 한다. 백 수사관은 검찰 출신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아래의 일명 ‘백원우 별동대’로 불리는 특별감찰반(특감반) 반원으로 일했다. 민정비서관실 직제에 존재하지 않는 별도의 감찰팀이었다.
문제는 이때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관여됐다.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 후보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 낙선을 목적으로 경찰을 동원해 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인데, 백원우 전 비서관은 문재인 대통령 30년 지기인 송철호 현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하명수사를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서 일하던 백 수사관이 직접 울산에 내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입장에서는 당연히 수사 대상이었다. ‘지시를 받았던 위치’라는 점을 고려해, 조사 신분은 참고인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2009년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을 할 때 백 수사관과 함께 일했고, 그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직접 장례식장에 가서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마음이 아프다”고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수사관의 장례식장을 찾았을 당시의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그리고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받기로 예정됐던 2019년 12월 1일. 백 수사관은 서울 서초동의 한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오후 6시 검찰의 참고인 조사를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그는 ‘가족에게 미안하다. 최근 심리적으로 힘들었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미안하다. 가족을 부탁한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 실제로 사망 직전, 그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수사가 본격화되자 주변에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총장을 ‘작심’하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실제 윤 총장은 2009년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을 할 때 백 수사관과 함께 일했고, 그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윤 총장은 직접 상가에 가서 눈물을 뚝뚝 흘렸는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마음이 아프다”고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가 어떻게 ‘메시지’ 줬을지 다 들어있을 가능성
청와대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백 수사관이 울산을 방문한 것에 대해 ‘2017년 말 고래고기 사건’으로 인한 검경 갈등 해결을 위해서였다는 입장이다. 백원우 전 비서관이 주도했다는 ‘선거 개입’은 아예 없었다고 강조한다. 이미 기소된 백원우 전 비서관 역시 재판에서 “검찰 공소사실은 주관적 추측과 예단으로 범벅된 ‘검찰 측 의견서’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과 청와대 중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검찰이 백 수사관의 휴대전화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법조계는 ‘두 시점’으로 나눠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와 △사망 직전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거다.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 직접 지시를 받은 내용이나 통화나 문자 메시지 기록 등이 남아 있을 수 있고, 사망 직전에는 검찰 수사에 대비해 과거 청와대 윗선(백 전 비서관 등)으로부터도 ‘부탁’을 받았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사건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간부급 검사는 “사건 직전에는 ‘불리한 쪽이자 윗선’에서 부하 직원이자 아래 사람에게 검찰 소환 때 유리하게 진술해달라고 포섭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청와대 쪽에서는 검찰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쪽으로 진술을 해달라고 얘기를 했을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지시 등이 있었다면 그게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백 수사관이 사망할 시점에 소지하고 있던 휴대전화는 청와대 근무 당시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8개월 전 휴대전화를 교체했다고 한다. 검찰 복귀 이후 휴대전화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는데, 자연스레 청와대 근무 당시 지시 정황은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도 ‘사망 직전 연락’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문자나 SNS 메시지, 전화 기록 외에 메모 등도 확인 중이다.
백 수사관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로부터 5차례가량 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때 동료들에게 ‘힘들다’고 토로했던 만큼 검찰은 ‘말맞추기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이미 기소된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재판에서 “검찰 공소사실은 주관적 추측과 예단으로 범벅된 ‘검찰 측 의견서’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백 수사관의 장례식장을 찾았을 당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는 백 전 비서관.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휴대전화를 통해 백 수사관의 사망경위를 포함한 하명수사 의혹 전반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논란은 피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4·15 총선이 끝나기 전까진 관련 사건 수사 상황을 일절 함구할 것을 수사팀 등에 지시했다. 해당 의혹에 연루된 청와대 및 여당 인물 상당수가 총선에 출마했기 때문이다.
기소된 13명에 포함된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대전 중구 출마)과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전북 익산을 출마)은 각각 경선을 거쳐 민주당 후보로 확정됐고,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도 울산 중구 후보로 낙점됐다. 송병기 전 울산부시장과 장환석 전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도 각각 울산 남갑과 서울 중랑갑에 출사표를 냈으나 더불어민주당 내 공천 과정에서 탈락했다. 검찰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 2부(부장 김태은)는 이미 13명을 기소했지만,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이광철 민정비서관의 경우 아직 신병 처리를 하지 않았다. 검찰은 나머지 관련자 신병처리는 선거가 마무리된 뒤 결정하겠다고 밝혀온 바 있는데, 백 수사관 휴대전화에서 주요 단서가 확보될 경우 수사가 더 윗선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소된 첫 재판이 4월 23일 열릴 예정인데, 검찰이 이 재판에서 휴대전화에서 나온 증거들을 공개할 가능성도 있다.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추가로 이뤄질 수사의 필요성을 언론 등에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언론에서 검사장과 기자 사이의 녹취록 얘기가 나오면서 다들 조심하고 있다”며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이 있기 때문에 백 수사관 휴대전화 속 자료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면 공개 재판에서 이를 검찰이 증거자료로 추려서 재판부에 제시하고 설명하면 된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