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당에서 앞 다퉈 내부고발자를 영입하는 것은 그만큼 내부고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졌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법과 제도적으로 내부고발에 대한 변화가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인 예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인정한 공익제보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게 보호해주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이 2011년 시행됐다. 또 2017년 8월에는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청원할 수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출범해 고발에 대한 문턱도 낮아졌다.
법과 제도적으로도 내부고발에 대한 변화가 보이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인정한 공익제보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게 보호해주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이 2011년 시행됐다.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 사진=이종현 기자
실제 내부고발을 통해 우리 사회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1986년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는 ‘말’지를 통해 전두환 정부가 언론사를 통제한 일명 ‘보도지침’을 폭로했다. 이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더불어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됐다.
1992년에는 당시 육군 중위였던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이 군 부재자투표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음을 폭로했다. 이후 군부재자 투표는 부대 내가 아닌 영외투표로 바뀌었다.
2010년대 들어서도 내부고발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당시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과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의 내부고발은 사건을 파헤치는 데 결정적 증언으로 작용했다. 또 이수진 전 판사의 폭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 거래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결국 양 전 대법원장은 역대 대법원장 중 최초로 구속된 인물이 됐다.
내부고발은 기관의 부조리나 법안 개선 등을 이끌기도 했다. 유선주 전 공정관리위원회(공정위) 국장은 가습기살균제 의혹과 관련해 기업들의 책임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유 전 국장은 자신의 일에 대해 “손해배상을 위한 입증책임의 전환과 지원범위의 확대 등 입법적인 개선에 기여를 했고, 검찰이 가해기업 수사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도 촉매제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며 “또 공소시효 지나서 늑장 조사하는 실무를 개선하고, 관련 내부 규정을 개정하는 데 자극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전 수사관도 특별감찰반(특감반)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김 전 수사관은 “들은 바에 의하면 특감반원들에게 과거와 같은 위험한 일은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며 “완벽히 깨끗해진 건 아니지만 많이 좋아졌다고 보며 결국 내 공익신고로 불법행위가 경감되는 등 국가적 기능이 회복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내부고발의 사회적 순기능이 크고, 국민들의 관심도 높지만 대부분 내부고발자들은 폭로 후 순탄치 못한 삶을 살고 있다. 해당 기관이나 단체들은 내부고발자를 ‘문제가 있는 인물’로 폄하해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선주 전 국장과 김태우 전 수사관도 각각 갑질 논란, 공무상비밀유지 의무 위반 논란 등을 겪었고 현재는 직장을 떠난 상태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을 폭로한 박창진 전 사무장도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됐다.
폭로 내용이 아닌 내부고발자들의 도덕성 논란으로 논점이 흐려지기도 한다. 일례로 김태우 전 수사관의 경우 평소 행실을 문제 삼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내부고발자를 의인처럼 인식하거나 제보한 의도 등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내부고발자는 성인군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고, 우리 사회에서 원칙이나 상식에 반하는 문제에 대해 직접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폭로 후 받을 불이익을 생각하면 내부고발이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팜한농의 산업재해 은폐 사실을 신고한 이종헌 씨는 “내부고발로 사회 곳곳 특권과 반칙, 불공정, 갑질 등의 부정부패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우리 사회는 공익제보자를 조직 내 일탈행위자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고, 내부고발이란 용어도 사회의 이런 부정적인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내부고발자의 헌신을 기리고자 2010년부터 의인상을 제정해 매년 12월 시상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건물. 사진=이종현 기자
하지만 앞날이 암울하기만 한 건 아니다. 최근 여러 시민단체에서는 공익제보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내부고발자를 대우함으로써 공익제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다. 참여연대가 이들의 헌신을 기리고자 2010년부터 의인상을 제정해 매년 12월 시상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2019년 말 ‘2019 양심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이라는 자료집을 만들어 제보자들의 기록을 남겼다.
내부고발을 했던 사람들도 내부고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노승일 전 부장은 “국정농단 사태 후 분야가 어디든 간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부고발을 하는 문화가 형성됐다”며 “스포츠 성추행 문제도 후배들이 용기내서 말할 수 있는 사회와 분위기가 형성된 덕분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박헌영 전 과장 역시 “(국정농단 사태 후) 사회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내부고발자를 바라보는 인식이 크게 개선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상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은 “공익제보자를 지원하고 책자를 내고 있는데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사례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제보자들도 엄청 많다”며 “그런 제보자들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자체 정화능력을 얻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전했다. 이 소장은 이어 “우리는 모두 공익제보자에게 신세를 진 것이나 다름없다”며 “그래서 지원 등을 강화해 그들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요신문i 특별취재팀
(이수진 박형민 김예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