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배영수 코치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으로 “마지막 등판에서 박병호를 삼진 잡은 공”을 꼽으며 웃었다. 사진=고성준 기자
#달라진 일상
배영수 코치는 1년 전과 비교해 백팔십도 달라진 일상을 보내고 있다. 몸을 만들고 훈련을 하며 경기를 준비했던 선수 시절과 달리 선수들 지도에 집중하고 있다. 또 코로나19 확산으로 리그 경기가 열리지 않기에 초보 코치로서 처음 겪는 상황을 연속적으로 맞고 있다.
“코치가 되니까 할 것이 많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뭔가를 계속 해야 한다. 선수 시절에는 짧은 시간 집중해서 내가 할 것만 하고 쉬는 시간이 꽤 있었다. 아무래도 바쁘니까 좀 더 피곤한 것 같다. 집에서도 더 바빠진 것 같다. 선수 시절보다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주려고 하다 보니(웃음).”
KBO리그는 정규리그는 물론 퓨처스리그(2군 리그)도 치러지지 않고 있다. 3개월 차 코치인 그의 경기는 아직 ‘0’이다. 그는 “경기는 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 상황이 내가 코치가 됐다는 것을 더 실감하게 만든다”면서 “선수와 다른 위치이기에 괜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더 많다. 시간도 더디게 가는 것 같고 초조한 기분도 든다. 그런데 선수라면 오랫동안 경기가 열리지 않는 상황이 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투수의 경우, 몸이 덜 올라온 선수라면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자신에 대해 배 코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은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고성준 기자
#가장 행복한 은퇴
3승 0패로 앞선 2019 한국시리즈 4차전, 2점 차로 앞선 연장 10회 아웃 카운트 2개만 남겨둔 상황. 프로 무대에서 20시즌을 보낸 베테랑 투수가 등판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국가대표 4번 타자인 시즌 홈런왕을 삼진으로 잡아냈고 타점왕을 차지한 외국인 타자를 투수 앞 땅볼로 처리했다. 베테랑 마무리투수는 팀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배영수의 현역시절 마지막 순간이다.
배 코치는 지난 한국시리즈 이야기에 환한 미소부터 지어 보였다. 스스로 그 순간을 “전 세계 야구 선수 중 가장 축복받은 은퇴일 것이다. 2019년 두산 우승의 최대 수혜자가 나다”라며 웃었다. 그는 “대외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지만 나 혼자서는 시즌 중반부터 은퇴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런 마무리를 할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조용히 은퇴를 준비하고 있던 시점, 소속팀 두산은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푸른 피의 에이스’로 불리던 삼성 라이온즈 시절, 누구보다 많은 한국시리즈 경기에 등판한 그였다. 배 코치는 “경험이 있기에 자신이 있었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 시간이 3주 정도 있다.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몸을 만들었다”며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몸 만드는 과정을 감독님도 지켜보셨기에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팀의 우승을 마무리 짓는 세이브를 올리며 그의 한국시리즈 등판 횟수는 25회가 됐다. 프로야구 역대 최고 기록이다. 25는 그가 삼성 시절 오랜 기간 달았으며 두산에서 다시 찾은 등번호이기도 하다. 그는 “신기하게도 그렇게 됐다. 정말 감사하게도 강팀에 오랜 기간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국시리즈 무대를 누구보다 많이 밟았다는 부분만큼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팀과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던 투수 배영수. 한국시리즈 우승 8회 등 많은 것을 이뤘지만 정든 마운드를 떠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었을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전혀 없다.”
“스프링캠프에서도 그렇고 요즘도 공을 던져보면 팔꿈치가 너무 안 좋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공 5개로 나는 이제 끝났나 보다(웃음).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25m 넘는 거리에서 던지면 팔이 아프더라. 코치로서 딱 배팅볼(약 15m 거리) 던질 수 있는 정도다. 딱 맞게 그만뒀다.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든다. 내 기준에서는 정말 야구를 미친놈처럼 열심히 했다. 그래서인지 미련이 없다.”
#롤러코스터 같았던 선수 시절
‘미친놈처럼 했다’는 표현같이 그는 “선수 시절 야구를 잘하고 싶어서 누구보다 노력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 집한 형편이 어려웠기에 어떻게 하면 선수로서 빨리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1분 1초라도 성공의 순간을 앞당기고 싶었다. 지금은 보편화된 비시즌 개인 운동도 그 당시로선 드문 일이지만 내 돈을 써가면서 했다. 헬스장을 다녀도 돈을 냈다. 돈을 써야 더 열심히 한다는 생각에(웃음). 연차가 낮을 때는 해외훈련 가면서 대출을 받기도 했다.”
신인 시절 김기태 감독(당시 선수)의 조언이 그를 일깨우기도 했다. 배 코치는 “신인 때 삼성이 포스트시즌에 갔는데 엔트리에 못 들었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김기태 감독님이 부르시더니 국가대표를 오가는 선수들을 바라보시며 ‘너는 국가대표 했니?’라고 하셔서 ‘못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더니 ‘쟤들보다 더 운동을 많이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 그게 터닝포인트가 됐다”며 김 감독과 일화를 소개했다.
동료나 다른 팀 경쟁 선수를 가리지 않고 궁금한 점은 즉시 물어봤던 점도 그의 성공 비결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박명환은 최근 자신의 방송에서 “올스타전에서 만났을 때 배영수에게 슬라이더를 알려줬다”고 밝혀 야구팬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에 배 코치는 “맞다. 명환이 형한테 슬라이더 배웠다”면서 “명환이 형뿐 아니라 조계현, 이강철, 박동희 등 많은 선배에게 찾아가서 물어본 적이 많다. 팀 내에서도 마해영 선배나 허삼영 현재 삼성 감독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모르면 바로바로 찾아보고 물어보는 편이다.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코치를 하면서도 선수들이 뭔가 물어봤을 때 모르면 ‘나 잘 모른다. 한 번 알아볼게’라고 얘기해준다”고 말했다.
데뷔 2년차 시즌부터 화려한 시절을 만들어간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팔꿈치 부상이 악화되며 수술을 받기도 했고 하락한 구속에 자신감마저 떨어지며 2009년 1승 12패라는 부진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야구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일찍 피면 일찍 지더라. 지금 돌아보면 선수 생활에서 업다운이 심했던 것 같다. 과부하가 걸리기도 했다. 그땐 파이팅이 넘치던 시절이었으니까(웃음). 혈기왕성한 시절에 냉정하지 못했다. 더 일찍 시즌을 마무리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참고 운동을 많이 했다. 때론 나 자신을 관리할 줄도 알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는 20년간의 선수 생활을 돌아보며 가장 기쁜 장면으로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에 지명됐던 순간을 꼽았다. “꿈을 이룬 것이었다. 프로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뻤다”고 설명했다. 가장 힘든 시기는 그 직후였다. “경기도 많이 나서지 못하고 성적도 안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응을 하지 못했고 노력도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 감정이 매번 달라지지 않나. 현재 2군 코치로 신인급 선수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시절 생각이 참 많이 난다.”
배영수 코치는 이제 선수 시절을 잊고 코치 역할에 완전히 빠져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배영수 코치는 인터뷰 시간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다. 사진=고성준 기자
#코치로 제2의 인생
두산 2군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현재 경기 운영 부분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배영수 코치는 “마운드 위에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왜 이 공을 던져야 하는지, 왜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다. 강하게 하고 있다(웃음)”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선수들에게 ‘손 씻기’의 중요성도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마운드에서 마음가짐’이었다. 인터뷰 내내 몇 번이나 이 같은 의미를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마운드에서만큼은 아무나 던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연습도 긴장감 있게 해야 집중력이 생긴다. 계속해서 선수들에게도 이 부분을 강조하다 보니 긴장감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이전에는 피칭하는 날이면 ‘피칭하고 좀 쉬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임하기도 했는데 그런 선수에게는 나가라고 한다. 투수는 던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훈련 시간 중에 마운드에 올라가는 1시간만큼은 집중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그가 앞으로의 지도자 생활에서도 추구하는 방향은 ‘마운드에서 공격적인 운영’이었다. “첫째도 공격, 둘째도 공격을 강조한다”면서 “야구에서 ‘수비’ 때 투수가 나오지만 다르게 보면 던지는 행위가 ‘공격’이 될 수 있다. 던져야 타자들의 반응이 나오지 않나. 볼에는 반응이 안 나온다. 정확한 컨트롤이 안 된다면 한가운데 던질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20시즌 배 코치의 목표는 ‘이기면서 만드는 성장’이었다. 그는 “2군은 성장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기도 하는데 당연히 성적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잘 던지고 키워야지 못 던지고 키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타자를 잡아야 크는 거지 맞는다고 크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코치로서 인정받고 안 받고는 중요치 않다. 코치로서 선수들이 마운드에 섰을 때 긴장감을 심어주는 것이 목표다. 노력하는 선수에게는 기회를 줄 것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