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총선의 핵심은 기승전·정계개편이다. 총선발 정계개편은 막을 수 없는 상수다. 이기는 쪽도 지는 쪽도 피할 수 없다. ‘정국의 주도권을 잡느냐(승자), 이합집산을 통한 판 흔들기냐(패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헌정사상 초유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까지 가세하면서 정계개편 셈법이 고차 방정식으로 격상했다. 이전과는 다른 메가톤급 회오리가 몰아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국면은 차기 대선구도 재편의 1차 분수령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4월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 출정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기본 문법에 대입한 총선발 정계개편은 ‘여당 승리=국정운영 탄력’, ‘여당 패배=레임덕(권력누수)’, ‘야당 승리=정국 주도권 뺏기’, ‘야당 패배=해체 수순의 재창당’ 등이다. 과반 정당이 출현하느냐에 따라 정계개편 범위는 달라지지만, 방향은 대체로 이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이 같은 여의도 문법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 튀어나오면서 총선발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용 위성정당과 친조국·반검찰을 앞세운 열린민주당의 총선 후 스탠스, 미래통합당의 총선 성적 등에 따라 정계개편의 모습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권의 시나리오 A는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경우다.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더시민)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130석 이상과 20석가량을 각각 획득하면, 열린민주당을 빼고도 과반 의석은 확보된다. 열린민주당까지 두 자릿수 의석수를 가져가면 이른바 ‘친문(친문재인) 성향의 정당’은 공룡 정당으로 격상한다.
이 경우 민주당은 차기 국회의장직을 시작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추천권을 일거에 장악할 수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총선을 일주일 앞둔 4월 8일 광주를 찾아 “민주당이 제1당이 못 되면 통합당에 국회의장도 빼앗기고, 공수처와 검찰 개혁도 다 물거품이 돼 버린다”고 잘라 말했다. 이른바 ‘조국 대전’이 포스트 총선의 신호탄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여당 전략에는 정의당을 비롯해 소수 정당 협조 없이도 국정을 원활히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깔렸다. 지난해 여의도를 뒤흔들었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 민주당은 때때로 ‘4+1’ 공조에 끌려 다니면서 주도권을 내줬다. 여권 한 관계자는 “4+1 협의체 없이 단독 과반을 통해 국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기류가 당시부터 많았다”고 전했다.
민주당과 더시민이 제1당과 제3당 지위를 획득한다면, 공수처장뿐 아니라 ‘야당 몫 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 위원 1명’도 사실상 민주당이 차지한다. 공수처 설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 추천위 총 7명의 면면은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정당 교섭단체(여권) 추천자 2명, 이외(야권) 교섭단체 추천자 2명이다. 추천위의 의결정족수는 위원 7명 중 6명 찬성이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미래통합당 당사에서 열린 서울 현장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총선 승리를 다짐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외(야권) 교섭단체 추천자 2명 중 1명은 제1야당 몫이다. 관건은 남은 한 자리다. 더시민과 미래한국당, 열린민주당 중 누가 제3당이 되느냐에 따라 공수처의 운명이 갈린다. 여권으로선 더시민이 제3당에 등극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미래한국당이 제3당 지위를 획득한다면, 공수처장은 장기간 공백 상태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사상 초유의 페이퍼 정당이 출현한 이면에는 조국 대전을 둘러싼 셈법이 깔린 셈이다.
바꿔 말하면 민주당과 더시민,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공수처장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을 마무리할 때까지 ‘두 집 살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후 더시민 비례대표들은 자기 정당으로 돌아갈 예정이지만, 더시민은 해산 대신 21대 국회 내내 당 골격은 남기기로 했다. 최배근 더시민 공동대표는 “비례대표 승계 문제도 있다”며 “당의 구조물은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권 시나리오 B는 민주당이 제1당을 하되 열린민주당이 더시민을 제치고 제3당으로 올라서는 경우다. 열린우리당이 제3세력 돌풍을 일으킨다면, 민주당과의 합당은 물 건너간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의원 5명만 배출해도 수억 원대의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며 “합당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원내 교섭단체(20석) 이상 정당에는 총액의 50%를 균등 배분하고, 5∼20석 미만에는 총액의 5%씩을 분할해 지급한다. 정운천 의원의 막판 합류로 5석을 채운 미래한국당은 2월 4일 5억 7143만 2000원의 올해 1분기 경상보조금을 지급받은 바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열린민주당과의 합당 가능성에 대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친문(친문재인) 적자를 둘러싼 ‘제로섬 게임 시즌 2’다. 원내에 진입한 열린민주당의 제1 목표는 ‘기승전·검찰 개혁’이다. 열린민주당은 창당 초반부터 “조국 사태는 검찰의 쿠데타”라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총선판에 소환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칼로 불리는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들은 주가조작 의혹에 휩싸인 윤석열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씨 등을 고발했다. 열린민주당 한 관계자는 “검찰의 최종 목표는 친문 몰락이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진짜가 나타났다’는 총선 슬로건을 내건 열린민주당이 ‘두 자릿수 의석수’를 달성할 경우 민주당은 위기론에 바짝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가속 페달을 밟는 열린민주당의 존재로 정책과 국면전환의 완급 조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악의 여당 시나리오’는 민주당의 단독 과반 실패다. 이 경우 정국 주도권은 통합당으로 넘어간다. 범진보진영 내부 권력암투에서도 열린민주당에 공간을 내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빠르게 레임덕(권력누수)에 빠지면서 당·청 갈등이 진보진영 전반으로 확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발 정계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통합당의 고민도 깊다. 통합당 시나리오 A는 역시 ‘단독 과반’이다. 통합당이 135석, 미래한국당이 15석 안팎을 차지하면 과반에 도달한다. 이 경우 통합당은 문 대통령의 남은 기간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 수 있다. 2차 추가경정예산을 전제로 한 긴급재난지원금의 운명도 통합당 손아귀에 넘어간다. 막판 역전승을 이뤄낸 황 대표는 차기 대선 가도에 날개를 단다. 구원 등판한 김종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도 대선 역할론을 부여받는다.
통합당 시나리오 B는 ‘단독 과반에 미달한 제1당’이다. 여기엔 통합당이 제1당, 미래한국당이 제3당을 차지한다는 전제가 깔렸다. 일단 공수처 정국에선 양당은 범야권과 마찬가지로 두 집 살림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측과 물밑 작업을 통해 범보수연대에 다시 시동을 걸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황교안·안철수·김종인’ 조합이 탄생할 수도 있는 셈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필연적인 범보수진영 내 권력다툼은 통합당의 약한 고리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제1당 탈환 실패’다. 그야말로 잃어버린 8년의 문은 열린다. 제3당마저 더시민에 뺏긴다면, 범보수진영은 총선발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급격히 빠진다. 패잔병인 황 대표는 2선 후퇴가 불가피하다. 선거의 달인 김종인 위원장 역할도 막을 내린다. 통합당은 총선 다음 날부터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조기 전당대회 시기를 놓고 전 계파가 극심한 권력 암투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최악 땐 다시 보수 분열로 분당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년 뒤 대선도 사실상 걷어차는 셈이다. 총선발 정계개편의 희생양은 곧 드러난다. 선택은 국민의 몫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