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당초 현산은 공시를 통해 지난 4월 7일 아시아나항공에 신주인수계약 2조 1771억 원 중 1조 4664억 원을 1차 유상증자 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27일 갑작스레 유상증자 일정을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날’이라고 변경하며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인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하반기와 상황이 크게 달라지면서 일부에서는 ‘인수 포기설’까지 나왔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4437억 원, 부채비율은 1386.7%. 최악의 경영실적이 인수 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아시아나항공의 시가 총액은 4월 8일 기준 7824억 원으로 현산이 제시한 인수가 2조 5000억 원의 3 분의 1 수준이다. 같은 날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3505원으로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난해 11월 12일 6580원에서 절반으로 떨어졌다. 인수가 대비 기업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하는 미래에셋대우가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입 요구)’로 유동성 위기 의혹에 휩싸이면서 ‘인수 무산’ 이야기까지 나왔다. 다만 미래에셋대우 측은 “당사의 현금성 자산은 약 5조 원 수준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며 사실을 부인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해 4월 23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총 1조 6000억 원의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자금 지원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7 대 3 비율로 분담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지원금은 인수자인 현산이 갚아야 할 몫이다. 현산은 1조 4664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이뤄지면 산업은행이 발행한 5000억 원의 영구채를 우선 상환키로 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의 실적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부채비율이 높아졌다. 현산 입장에서 5000억 원의 영구채를 먼저 상환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산과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결정적인 ‘키’를 산업은행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IB업계에 따르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지난달 말 회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의 협상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 현산 측은 “인수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답했고, 산업은행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현산이 현재 산업은행에 요구사항을 제시했다”며 “산업은행이 최근 항공업의 사정을 잘 알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만큼 현산과 ‘딜’도 받아들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KDB산업은행의 지원 여부에 따라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이종현 기자
산업은행 입장에서도 이제 와서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멈추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최대한 현산에 인수되는 방안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부담은 상당하다. 최근 산업은행은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과 저비용항공사(LCC)들에 지원을 약속했다. 쌍용자동차도 지원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금융권 일부에서는 다른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원은 이제 시작했고 장기전이기에 산업은행의 사정이 당장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라면서도 “산업은행의 지원 여부는 정부 결정에 따르는 것이어서 사실상 결정권은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 가능성도 여전하다. 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를 포기하면 계약 파기에 대한 위약금으로 인수금액의 10%인 2500억 원을 물어야 한다. 2500억 원이 당장은 손해로 작용하겠지만 향후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를 위해 투입해야 할 자금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지금 인수 포기가 오히려 이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도와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의 인력 구조가 대한항공 대비 나쁜 편이고 비행기 노후화도 심해 새로운 비행기를 마련하는 데도 큰 부담이 따른다”며 “아시아나항공의 캐시플로(현금유동성)가 1조 원 이상인데, 현산이 1조 원을 투자한다고 해서 흑자가 될 구조도 아닌데다 지난해 ‘일본 불매’ 운동에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아시아나항공의 불확실성이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