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관리사보 자격은 쉽게 말해 아파트 관리소장을 할 수 있는 자격이다.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 또는 승강기가 있거나 중앙집중식 난방방식을 택하는 150세대 이상 공동주택이면 의무적으로 이 주택관리사 자격자를 관리소장으로 앉혀야 한다. 즉 아주 작은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파트에 채용 수요가 있다.
그러다 보니 퇴직 후 제2의 직업을 찾는 중장년층에서 이 자격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시험 응시자들의 연령대도 40대와 50대가 대부분이다. 사회 경험을 갖춘 중장년을 선호하는 기류에 따라 아파트 관리소장은 중년 수험생들에게 선망의 직업이다.
아파트 세대수가 많을수록 급여도 대체로 높아지는 데다 “업무 강도도 다른 전문 직업군에 비해 강하지 않은 편”이라고 주택관리사들은 말한다. 관리 계약 갱신에 대한 부담만 제외하면 나무랄 데 없는 직업이라는 평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취업 경쟁은 치열한 편이다.
주택관리사들의 모임인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꾸준히 주택관리사 시험의 합격자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주택관리사 신규 자격자가 과다 배출돼 기존 자격자들의 취업난과 관련 비리가 발생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관리소장 취업을 위해 아파트 입주자 회장 등에 금품을 건네는 일이 업계에서 공론화된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인사권을 가진 회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크고 작은 부정을 묵인하는 일도 생긴다. 특히 금품을 주고 취업한 경우 그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는 일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주택관리사협회는 국토교통부에 합격자 조절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합격자가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 협회의 입장이다.
반면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수험생들은 취업난이 심화된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게 취업난이 심한데 자기들만 살겠다고 사다리를 걷어찰 셈인가”라고 반발하며 상대평가 도입이 결정된 2016년부터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의 전환은 자격제도의 취지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비판해 왔다.
지난해 1차 시험 접수자는 2만 5745명, 시험 응시자는 1만 9783명에 달했다. 학원가에 따르면 주택관리사 수험생은 3만 명을 훌쩍 넘는 수준이다. 이들 중 일부는 국토교통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등에 합격자 수를 낮춰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주택관리회사들의 모임인 한국주택관리협회도 합격자의 다수 배출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국주택관리협회 김철중 사무총장은 “현재 주택관리업계는 우수한 재원이 필요하다. 우수한 분들이 업계와 현장에 많이 들어와 공동주택 관리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공동주택 입주민들을 위한 길”이라며 진입로를 좁혀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했다.
이처럼 합격자 수를 두고 주장과 요구가 엇갈리는 가운데 국토교통부가 올해 합격자 수를 1700명으로 정하자 수험생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한숨을 돌렸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주택관리사 시설개론 과목의 신명 교수는 “첫 상대평가라 적은 인원이 정해질까봐 수험생들의 걱정이 많았는데 적당한 인원이 정해졌다고 보고 있다”며 “평균 2000명 정도가 매년 합격했는데 1700명이면 수험생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학원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반면 주택관리사협회는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주택관리사협회는 “1000명 이하를 요구했지만 시험위원회에서 급격히 합격자 수를 줄이는 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주택관리사협회 이선미 경기도회장은 “상대평가 원년인데 1700명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수치”라면서 “2018년 762명이 배출됐을 땐 취업 상황이 안정적이었는데 이번 결정은 아쉽다”라고 했다.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는 7일 “합격 인원을 정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다. 법에 규정된 직전 3년간 사업승인계획을 받은 공동주택 단지 수, 주택관리사보 시험 응시 인원, 주택관리사의 취업 현황 등을 고려하고 시험위원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면서 “다른 전문 자격들의 사례까지 살펴보며 최대한 중립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창의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