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에서 김혜준이 분한 중전 계비 조씨는 ‘K 장녀의 한’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김혜준이 보여준 K장녀의 한
권력의 정점에 선 아버지와 날선 대립을 완벽히 소화해 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의 중전은 올 상반기 드라마판에서 가장 인상적인 악녀 캐릭터로 꼽힌다. 시즌1에서는 그의 속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겉과 속을 온전히 보여준 시즌2에서 완벽한 반전에 성공했다. 이 같은 반전과 배우 김혜준(25)의 더 성숙해진 연기가 어우러지면서 “시즌2의 주인공은 중전이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배우도 스스로 이제까지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고 마음이 가는 캐릭터로 중전 계비 조씨를 꼽았다. 앞서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김혜준은 “당시 유교 사회에서는 중전이 당해온 (여성 차별) 일들이 너무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런 사상에 부딪치고 또 이에 반하는 욕망을 분출하는 캐릭터가 이제까지 없었다. 아마 그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셨을 것”이라며 중전의 인기에 대해 설명했다(관련기사 [인터뷰] ‘킹덤2’ 김혜준 “중전 퇴장 너무 아쉬워 바짓가랑이 잡고 싶었어요”).
‘킹덤’ 속 계비 조씨는 세도가의 딸로 태어났음에도 단순히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해 왔다. 이에 대한 울분은 딸인 자신을 이용하려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와 그토록 자신을 무시해 온 세상을 거머쥐려는 욕망으로 나타난다. 권력을 위해 나라마저 망가뜨리는 악녀의 욕망의 밑바닥에 ‘K(Korea) 장녀의 한’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이례적인 공감이 쏟아졌다. 이처럼 드라마의 여성 팬들이 악녀에게 자신을 직접적으로 투영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도 ‘킹덤’이 보여준 또 하나의 신기한 현상이란 평을 받았다.
데뷔 4년차인 한소희는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김희애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사진=JTBC 제공
#‘얄미운데 끌리네’ 김희애에 밀리지 않는 한소희
최근 드라마판 안팎을 뜨겁게 달구는 작품은 ‘19금 격정멜로’, JTBC의 드라마 ‘부부의 세계’다. 흠 잡을 데 없는 김희애의 송곳 같은 연기도 그렇지만, 그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밀리지 않는 내연녀 여다경 역의 한소희(26)는 드라마 데뷔 4년차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관록을 보여준다.
길지 않은 연기 경력 속에서도 한소희는 유독 ‘악녀’ 역할을 많이 맡아 왔다. 2017년 MBC 드라마 ‘돈꽃’에서 장부천의 내연녀 윤서원 역을, 2018년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에서는 경국지색 세자빈 김소혜로 분했다. 특히 ‘백일의 낭군님’에서는 ‘희대의 욕망녀’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섬뜩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목받은 바 있다.
악녀로는 네 번째, 내연녀로는 두 번째 역할인 ‘부부의 세계’ 속 여다경은 단 4화 만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본처와 내연녀, 틀에 박힌 설정일 수 있지만 ‘그’ 김희애에게도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은 그를 마냥 미워만 할 수 없는 악녀로 받아들이게 한다.
다만 강렬한 인상과 달리 한소희 본인은 악녀 연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앞서 ‘백일의 낭군님’ 종영 인터뷰에서 그는 “(연기할 때) 인상만 쓰고 있으니 힘들다. 제 성격이 원래 그렇지 않아서 제 성격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맡는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며 “이제는 사랑받는 역할도 하고 싶고, 사랑이 좀 이뤄지면 좋겠다”고 슬프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호소를 했다.
KBS2 드라마 ‘우아한 모녀’ 속 홍세라 역의 오채이는 ‘사이다 악녀’라는 별칭을 받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KBS2 제공
#악녀 역사 새로 쓴 ‘사이다’ 오채이
KBS2 일일드라마 ‘우아한 모녀’ 속 홍세라 역의 오채이(26)는 악녀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행동과 발언마다 답답한 상황을 뚫어주는 ‘사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선역과 악역의 구분이 뚜렷한 드라마에서 악역의 배경이 풀릴 때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설정이 주어지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그러나 홍세라처럼 뒷이야기가 풀린 동시에, 극 중 갈등을 불러일으킨 ‘원흉’을 향해 시원한 한 마디를 던지는 악녀는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이 작품은 오채이의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최고 시청률 18.8%를 기록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작품에서 최명길과 차예련 등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주연의 자리에 오른 것을 넘어, 인상적인 캐릭터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킨 셈이다. 여기에 더해 악녀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풀어줬다며 호평까지 이어졌으니 신인으로서는 이보다 더 완벽한 ‘스타트’가 없을 것이다.
앞서 ‘우아한 모녀’ 종영 인터뷰를 통해 오채이는 “세라가 악역이긴 했지만 짠한 모습이 있다”며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캐릭터에 대한 공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이유 있는 악녀’라는 설정에 작품 중후반부터 몰아친 ‘사이다 발언’이 더해지면서 대중의 동정과 옹호를 한몸에 받는 ‘사이다 악녀’로 자리 잡았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