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렌터카 훔쳐 사망사고를 낸 10대 엄중 처벌해주세요’라는 청원의 참여 인원이 4월 9일 기준 90만 명이 넘었다. 4월 2일에 올라온 청원이니 일주일 만에 90만 명 넘긴 셈이다. 최근 이처럼 10대가 차량을 절도한 뒤 무면허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4월 7일 전남 여수에서 아찔한 사건이 벌어졌다. 전남 여수경찰서는 차량을 훔쳐 면허 없이 운전한 혐의로 중학생 A 군(16) 등 3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 군 일행은 7일 0시 10분께 목포시 연산동의 한 도로에서 소형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를 훔쳤다. 절도 당시 해당 차량은 문이 잠기지 않은 채 세워져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차량 안에 스마트키가 있어 시동이 걸리자 바로 운전을 시작했다. 이들은 목포에서 출발해 여수까지 150km를 이동했다. 당연히 무면허다.
목포 경찰은 여수경찰서에 공조를 요청했다. 목포에서 여수로 향하던 A 군 일행은 순찰차를 발견하자 차를 돌려 다시 순천 방면으로 도주했지만 결국 새벽 1시 45분께 경찰에 검거됐다. 범행 1시간 30여 분 만이다.
그나마 경찰의 발 빠른 대응으로 A 군 일행이 1시간 30여 분 만에 검거되면서 참사가 빚어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3월 29일에 벌어진 사건은 그렇지 못했다.
3월 29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대전 동구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B 군(18)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중앙선을 침범해 돌진한 차량에 치이는 사고였다. B 군은 올해 대학에 입학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배달대행 일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사고 차량 운전자다. 운전자는 A 군보다 5세 어린 13세 소년 C 군이었다. 사고 당시 차량에는 C 군을 비롯해 무려 8명의 또래 미성년자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3월 28일 서울에 주차돼 있던 렌터카를 훔쳐서 대전까지 차량을 몰고 왔다. 이번에도 절도 차량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절도 차량이 CCTV에 포착된 곳은 대전 동구 성남네거리 부근이었다.
바로 경찰의 추격이 시작됐다. 자신들을 추격하는 경찰 순찰차를 발견한 C 군 일행은 순찰차를 피하려 후진하다 택시와 접촉사고를 냈다. 이후 신호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역주행까지 하는 등 광란의 도주극을 벌였다. 그렇게 도망치다 중앙선까지 침범해 B 군의 오토바이를 치고 말았다.
도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C 군 일행의 차량은 오토바이를 치는 사고를 내고도 200m가량을 더 질주한 뒤 결국 차를 세워 두고 달아났다. 6명이 현장에서 붙잡혔고 도주한 2명 역시 이날 오후 서울에서 검거됐다. 서울에서 붙잡힌 2명은 대구에서 세종시로 달아난 뒤 거기서 다시 차량을 훔쳐 서울로 도망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또 다시 유사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들 모두 형사책임이 면제되는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이기 때문이다. 국민청원이 올라온 까닭이기도 하다. 게다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들의 차량 절도 행각이 더 있었음이 드러나 충격을 더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단독] ‘무면허 절도 차량 사망사고’ 10대 동승자 과거 학폭·절도 의혹).
C 군 일행은 3월 23일 새벽에도 인천 영종도의 한 주유소에서 40만 원을 훔친 뒤 인근 렌터카 회사에서 차량 한 대를 절도했다. 그렇지만 운전이 미숙했던 이들은 차량 운행 도중 인도를 들이받는 사고는 낸 뒤 다시 그 렌터카 회사를 찾아 다른 차량을 훔쳤다.
이틀 뒤인 25일에는 서울 양천구 소재의 렌터카 회사에서 또 다시 차량을 훔쳤고 이 차량을 몰고 다니다 교통사고를 내 경찰에 붙잡혔다. 그렇지만 경찰은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촉법소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28일 차량을 절도해서 대전까지 갔다가 오토바이를 몰던 B 군을 사망케 하는 사고를 낸 것이다. 사고 당시 차량을 운전한 C 군은 소년원에 입소했으나 나머지 7명은 귀가 조치됐다.
문제는 이와 유사한 10대의 차량 무면허 운전 관련 사건사고가 최근 증가 추세라는 점이다. 게다가 대부분 차량을 절도한 뒤 무면허로 운전했다는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신천지 신자(31번째 확진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2월 18일 이후 이런 사건사고가 무려 11건이나 벌어졌다. 채 두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벌어진 일이다.
2월 19일에는 인천 삼산경찰서가 특수절도 및 도로교통법상 무면허운전 혐의로 10대 일당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15세인 2명은 구속했지만 14세인 일당은 촉법소년이라 입건하는 데 그쳤다. 이들은 1월 10일부터 2월 11일까지 강원 원주 등에서 차량 4대를 훔쳐 1000km가량을 무면허로 운전했다. 또한 훔친 차량 4대와 그 외의 차량 4대 등 모두 8대의 차량에서 노트북 등 시가 25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기도 했다.
차량을 훔쳐서 장거리를 이동한 뒤 또 다른 차량을 훔쳐 이동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이어간 이들은 강원 원주, 전북 전주, 인천 부평, 경기 김포 등 전국을 오가며 범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이들은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니었다. SNS를 통해 처음 만났으며 대부분 가출 청소년이었다.
2월 25일에는 인천 강화경찰서가 특수절도 및 도로교통법상 무면허운전 혐의로 고등학생과 중학생 등 2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25일 새벽 0시 30분께 강화군 소재의 한 편의점에서 담배 30갑 등의 금품을 훔쳤다. 이들의 범행 역시 차량 절도에서 시작됐다. 24일 밤 11시 50분 경기도 김포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쏘렌토 차량을 훔친 뒤 편의점에서 절도 행각을 벌인 것이다.
2월 27에는 전남 광양경찰서가 특수절도 등 혐의로 16세 미성년자 등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26일 밤 11시 21분 즈음에 광양시 금호동에서 훔친 차량을 무면허로 운전하다 추격하는 순찰차를 들이받고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한 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이 이들의 도주를 막으려 공포탄 1발과 실탄 3발까지 발사했지만 이들은 경남 하동으로 도주했고 결국 밤 11시 50분께 광양에서 검거됐다.
3월 18일 인천 영종도에서 1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전복돼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인천소방본부 제공
3월 18일에는 인천 영종도에서 1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전복돼 무려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인천 중부경찰서는 10대 청소년 5명을 태운 K5 승용차가 18일 새벽 1시 20분께 인천시 중구 운서동 해안도로에서 방파제를 들이받고 전복됐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뒷좌석에 타고 있던 17세 청소년이 사망하고 동승자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10대들이 무면허로 삼목선착장에서 을왕리해수욕장 방향으로 달리다 운전 미숙으로 방파제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3월 20일 세종경찰서는 19일 오후 9시 30분 세종시 조치원읍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문이 잠겨있지 않은 승용차 2대를 훔쳐 대전까지 몰고 다닌 혐의로 10대 5명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운전자는 14세였다.
피해자가 절도 신고를 하자 경찰은 인근 CCTV와 수배차량 검색시스템(WASS)으로 추적에 나섰고 범행 3시간 뒤 세종시로 들어오는 절도 차량을 발견했다. 이후 3km가량 추격전을 벌여 힘겹게 이들을 검거했다.
3월 22일 새벽 4시께에는 차량이 충남 논산시 소재의 한 금은방 입구를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이번에도 부여 소재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1톤 택배 차량을 훔쳐 운전하다 벌어진 사건이었다. 운전 미숙일 수도 있지만 귀금속 절도를 위해 일부러 사고를 낸 것일 수도 있어 경찰은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이다.
3월 23일에는 광주 동부경찰서가 D 군(14)을 절도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D 군은 3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전남 화순군과 광주 시내에 주차된 차량 3대를 훔치는 등 모두 2680만 원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D 군은 밤늦은 시간에 주차된 차량의 문을 당겨 보다 잠겨 있지 않은 차량을 발견하면 금품을 훔쳤는데 자동차 열쇠가 발견되면 차량까지 훔쳤다. 무면허로 도난 차량을 운전하고 다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3월 25일에도 렌터카를 훔쳐 무면허로 운전하던 10대가 사고를 냈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중학생 2명을 특수절도와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새벽 2시께 렌터카를 훔치고 친구 3명을 불러내 구로구 일대를 무면허로 운전했다. 그렇게 1시간가량 이어진 이들의 무면허 질주는 다른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가 벌어진 뒤에야 중단됐다. 그런데 사고를 당한 차량은 이들 일당 가운데 한 명의 아버지 차량이었다. 그는 아들이 훔친 렌터카로 무면허 질주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추적 중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어서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사고를 낸 직후 도주했지만 결국 새벽 4시 무렵에 경찰에 체포됐다.
3월 26일 부산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26일 새벽 3시 무렵 부산 금정구 소재의 한 화물차 차고지에서 10대 3명이 탄 프라이드 차량이 주차된 트레일러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것. 무면허 상태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이는 없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들이 훔친 차량이 친구 모친의 승용차였다는 점이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10대들의 무면허 범죄가 최근 두 달 사이에 급격하게 증가했다. 요즘 10대들은 각종 게임에서 터득한 방법으로 면허가 없어도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라며 “특히 우범 소년들은 전국구로 다니기 때문에 차가 필요한데, 보통 부모의 차량을 몰래 타거나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훔친다”고 지적했다.
‘렌터카 훔쳐 사망사고를 낸 10대 엄중 처벌해주세요’ 청원을 올린 이는 “당시 렌터카 운전자는 만 14세 미만 형사 미성년자로 촉법소년에 해당해 형사처분 대신 보호처분을 받을 것이라고 경찰이 소명하였습니다”라며 “사람을 죽인 끔찍한 청소년들의 범죄입니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 또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가해자 청소년들을 꼭 엄중히 처벌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촉법소년에 해당되는 만 14세 미만 청소년들의 연이은 범죄에 90만 명 넘는 국민들의 동참으로 그 심각성을 공감하고 있다. 분명 우리 사회에 심도 있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 같은 범죄 예방을 위해 김복준 연구위원은 “차주들이 차 문을 열어두고 내리는 실수를 안해야 한다. 또한 부모가 스페어 키 관리만 잘해도 이런 문제를 많이 줄일 수 있다”며 “문제는 렌터카 업체다. 비대면 렌터카 업체의 경우 별도의 통제 장치가 없어 차량관리다 안 된다. 사무실 안에는 차키와 차량 번호가 친절하게 적혀 있어 사무실만 침입하면 차를 10대라도 훔쳐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