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이 3월 3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안철수 대표의 4·15 총선 선거 전략은 상당히 특이했다는 평이다. 그는 4월 1일부터 천리길 국토대종주 ‘희망과 통합의 달리기’에 나섰다. 유럽 유학 시절 갈고 닦은 달리기 실력을 선거 운동에 접목시킨 셈이다. 그는 처가가 있는 전라남도 여수를 시작점으로 삼았다. 이후 전국 400여km를 달리며 국민 속으로 들어가 유세를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의 전략은 초반에 ‘신선함’으로 어필했다. 주인공의 달리기로 세상에 감동을 준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비유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한국갤럽이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비례대표 정당 투표 의향을 조사한 결과, 국민의당은 5% 지지율이 나왔다. 다른 비례대표용 정당인 미래한국당(23%) 더불어시민당(21%) 열린민주당(10%)에 비해 한참 뒤쳐진 결과였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난 2월 국민의당 창당을 하며 정치 복귀에 신호탄을 쏜 안 대표가 또다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저조한 지지율과 연이은 측근 이탈로 최대 위기에 놓인 바 있다. 급기야 총선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 전용 정당으로 나서는 초강수를 뒀지만 전망은 밝지 않았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극적으로 기사회생할 기회를 잡았다. 바로 지난 3월 코로나19가 심하게 확산된 대구 의료봉사에 직접 나서면서부터다.
그가 봉사에 처음 나섰을 때만 해도 진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됐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차 반응이 터져 나오는 양상이 나타났다. 의사 출신인 그의 이력도 한몫했다. 보름간의 의료 봉사 동안 지지율은 소폭 반등했다. 무엇보다 대구 현장에서 그가 최선을 다한다는 미담도 흘러나오면서 TK(대구·경북) 지역에서 인기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국민 속으로 들어가면서 극적인 반전 기회를 잡은 것”이라며 “대구 의료봉사는 ‘신의 한수’였다”라고 말했다.
대구 봉사를 거치며 ‘TK 양자’로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관측을 자산으로 들고 중앙에 복귀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됐다. 그는 TK 인사를 비례대표 앞 순번에 배치하겠다고 공언하며 TK가 보내는 지지에 호응했다. 그리고 최종 26명의 비례대표 명단이 나왔는데, 또다른 변수가 터졌다. 당선권에 ‘측근’들을 전진 배치하면서 ‘사천’ 논란에 직면한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이 3월 3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비례대표 1번은 최연숙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간호부원장으로 그의 봉사 활동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인물을 세웠다. 이후 측근인 이태규 전 의원(2번) 권은희 의원(3번) 김도식 대표비서실장(6번)을 당선권에 전진 배치시켰다. 이 시기 국민의당 내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현실적으로 ‘6번’까지 당선권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당선권 절반을 측근 인사로 채운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TK에서 벌어놨던 정치적 자산을 비례 공천을 거치며 소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과거 안 대표 측근이었던 한 정치권 인사는 “안 대표가 그나마 남은 측근을 배려하는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긴 하지만 현역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을 최전방에 배치하는 것은 누가 봐도 혁신 공천과는 거리가 먼 행보”라며 “안 대표에게 기대감을 걸었던 시각들이 ‘그럼 그렇지’로 다시 귀결된 핵심적인 이유가 비례대표 공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 지지율이 여러 여론조사에서 5%대, 답보 상태에 머무는 이유 중 하나가 비례대표 공천으로 인한 실망감이 반영됐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안 대표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기존 정당들과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했다. 대표적으로 선거지원금 440억 원을 반납해 그 재원으로 투표 참가자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하자는 제안과 코로나19 사태를 감안해 투표 기간을 연장하자는 제안이 그나마 여론의 관심을 끌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로 총선 공식 방송 토론회에도 초청을 받지 못하는 ‘굴욕’을 맛봐야만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거대 양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에 이어 새로 난립한 비례정당들과의 경쟁을 거쳐야 하는 국민의당으로선 힘겨운 싸움이 불가피했다. 다만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아직까지 희망을 걸고 있는 분위기다. 당 핵심 관계자는 “아직 무당층 25% 정도가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20대 총선 당시에도 국민의당 지지율은 터무니없이 낮았고 비관적인 전망이 난무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녹색 돌풍’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충분히 승산 있는 싸움”이라고 내다봤다.
20%대 지지율을 목표로 내건 가운데 10~15%의 지지율만 달성해도 ‘성공’을 거둔 것이란 내부 관측도 나온다. 총선 성적표는 안 대표의 ‘대권’ 가도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되는 사안이기도 하다. 만약 현재의 상황이 이어진다면 최대 3석으로 대권 행보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목표치를 최대한 달성한다면 6~10석이라는 지분을 갖고 동력을 다소 확보할 수 있다.
안 대표 총선 이후 행보에 대해 보수 진영인 미래통합당과 손을 잡느냐의 여부는 이러한 맥락에서 최대 관심사다. 대권을 위해 세를 불려야 하는 상황에서 ‘독자행보’는 한계가 있다는 관측이다. 그간 통합당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재차 거절했던 안 대표는 지난 3월의 미래한국당의 통합 및 대표직 제의도 뿌리치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총선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무엇보다 통합당으로 향한 과거 안철수계 인사들의 생환 여부가 관건이다. 만약 이들이 살아 돌아온다면 안 대표와 통합당 간 ‘화학적 결합’에 일조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통합당에 합류해 지역구 공천을 받은 한 안철수계 인사는 “안 대표와 헤어질 때 얼굴을 붉힌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살아 돌아와서 안 대표에게 힘이 되어주겠다는 나름 명분이 있었다. 안 대표를 통합당에 모셔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통합당에서 공천을 받은 옛 안철수계 인사들은 김삼화(서울 중랑갑) 김수민(청주 청원) 김중로(세종 갑) 이동섭(서울 노원을) 김근식(서울 송파병) 김영환(경기 고양병) 문병호(서울 영등포갑) 등이 있다.
통합당 ‘구원 투수’로 나선 김종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과 안 대표의 옛 인연도 통합당과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2017년 대선 당시 두 사람은 ‘반(反)문재인’ 전선에 함께 선 바 있다. 안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김 위원장이 정부 구성 전권을 갖는다는 ‘개혁 공동정부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총선 이후 ‘안철수 등판론’이 힘을 얻기 위해선 통합당의 총선 패배, 국민의당 선전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는 전망도 나온다. 통합당 한 핵심 관계자는 “총선 후 당내 세력이 춘추전국시대로 흐르고 마땅한 대권 주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중도와 TK 지지세 확보한 안 대표와 손을 잡고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다”며 “하지만 통합당의 총선 대승과 국민의당의 위축이 맞물린다면 안 대표의 경쟁력은 거기까지라는 냉정한 평가가 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