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이 열렸다. 사건 발생 30년 만이다. 법정 앞에 선 장동익 씨. 사진=진실탐사그룹 셜록 제공
부산고법 형사1부(이흥구 부장판사)는 4월 9일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재심 변론기일을 열었다. 법원 인사이동과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두 차례 연기된 끝에 열린 첫 번째 재심 기일이다.
법원은 재심을 열기 전까지 상당히 엄격한 심리를 거친다. 재심을 청구한 쪽의 이유를 듣고 재심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한다. 본격적인 재심은 이 절차가 끝난 뒤에 열린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는 7개월 동안 총 6차례 진행됐고, 지난 1월 6일 부산고등법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문관)는 “재심 사유가 충분하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번 재심 재판에선 당시 사건의 발단부터 이후 과정, 결과 전반이 다뤄진다. 낙동강 2인조가 어떻게 용의선상에 올라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수사를 받고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는지는 물론, 진범은 누구인지도 이번 재심에서 가려지게 된다. 앞선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리에선 과거 수사 경찰의 고문과 폭행 등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행위가 중심으로 다뤄졌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번 재심 재판에서 총 15명의 증인을 신청했다. 사건의 원인과 과정, 결과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인물들이다. 당시 수사를 진행한 경찰관들과 검사부터 낙동강 2인조가 수사와 재판을 거치는 과정에서 유리하거나 불리한 진술을 했던 사건 관계자들, 법의학, 안과 전문의 등이 포함됐다. 다만 진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이미 사망해 대신 그의 사건 전후 행적을 설명해 줄 주변 인물이 증인으로 신청됐다.
이에 대해 재판부와 검찰은 한 목소리를 냈다. 재판부는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이 법정에 출석할 수 있고, 사건과 관계가 있다면 모두 법정에 불러 심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도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사건의 실체를 전반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재심 청구인 측의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도 “많은 분들에 대한 증인 신청을 했는데, 검찰 역시 재심 청구인 측과 같은 의견”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심문할 증인이 많은 만큼 당분간 특별기일을 열고 집중 심리를 하기로 했다. 증인들이 대거 출석할 재심 두 번째 재판은 오는 5월 25일 열린다.
#‘사과, 용서, 위로’...무죄 판단만큼 중요한 것
“재심 청구인들의 최종 목표는 무죄를 받는 것입니다. 다만 이들은 마땅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 받지 못한 채 무려 30년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재심 청구인들은 자신이 왜, 어떤 이유로 이런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를 재심 법정에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박준영 변호사는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말할 때면 늘 이렇게 강조한다. 그는 재심이 단순히 유무죄를 다시 가리는 데 그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지연된 정의를 바로 세우고 실체적 진실을 발견한다는 식의 거창한 의미도 담지 않는다. 사건 속 감춰져 있던 진실을 법정에서 확인하는 일은 오랜 시간 고통을 겪은 재심 청구인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지금의 사법부와 변호인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라는 게 박 변호사의 생각이다.
재심 청구인 장동익 씨와 최인철 씨는 자신들이 겪은 일에 대해 제대로 알기를 원하고 있다. 특히 장 씨는 시각 장애를 갖고 있어 과거 수사, 재판 과정에서 기록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불러주는 대로 듣기만 하다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재심 법정이 아니면 장 씨는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는 과거 수사 경찰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사과를 한다면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과도, 용서도 역시 재심 법정에서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박준영 변호사는 “과거 잘못된 일들을 바로 잡고 재심 청구인들이 무죄 판단을 받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법정에서 사과와 용서, 위로는 물론 현재의 형사사법제도와 관련한 고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재심은 당사자들은 물론 국내 형사사법절차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재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재심 개시를 결정한 재판부는 재심 개시 결정문에서 소회를 밝히며 “만약 사건 원본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재심 사유가 인정될 수 있었을까 하는 고민이 든다”고 언급했다. 재판부는 형사사법 절차에서 낙동강변 살인사건과 같은 인권침해가 발생한 경우, 재심을 위해선 청구인들이 직접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기록이 폐기되면 사실상 입증이 불가능해지는 점을 지적하며 ‘증거보존’과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증명’에 대한 입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부산 사상구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밭에 차를 세우고 데이트를 하던 남녀가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가 1년 10개월 뒤 장 씨, 최 씨가 다른 사건에 휘말려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이들은 해당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이후 지속적으로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물고문과 폭행 등을 견딜 수 없어 허위로 살인에 대한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은 이들의 ‘허위자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1993년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두 사람은 복역한 지 21년 만인 2013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고, 2년 뒤인 2019년 4월,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재조사한 뒤 당시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고 결론 내렸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