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일요신문 DB
육영재단은 1969년 4월 설립과 인가가 동시에 진행됐다. 설립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다. 영부인이 설립한 공익재단인 까닭에, 인가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육영재단은 육영재단 유치원, 근화원(예절교육 시설), 과학교실 등 어린이 교육과 관련한 목적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목적사업의 엔진 역할을 하는 것은 공익재단 보유 기본재산이다. 육영재단 기본재산 대부분은 부동산 자산이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육영재단의 기본재산은 재단 부지와 건물 등 부동산 자산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육영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시 광진구 소재 4만 평에 이르는 부지 및 어린이회관, 예술회관 건물에서 나오는 수익은 목적사업을 하는 데 활용된다.
육영재단 어린이재단 전경. 사진=이동섭 기자
육영재단이 서울시 광진구에 소유한 부지는 약 13만 2000㎡(4만 평) 규모다. 어린이대공원과 붙어 있는 부지로 부동산 업계에선 알짜배기로 꼽힌다. 부지 내엔 어린이회관과 려움웨딩 예식장, 근화원 등 건물이 있다. 나머지 부지에선 계절 특성을 살린 어린이 오락시설이 운영된다. 눈썰매장과 야외수영장이 대표적이다.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이른바 ‘놀고 있는 땅’의 면적도 넓다. 부동산 업계는 육영재단이 소유한 부지의 잠재가치가 천문학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광진구 소재 주상복합건물 ‘스타시티’와 육영재단 소유 부지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면서 “건국대학교 야구장 부지를 개발한 스타시티는 당시 5000억 원 규모 수익을 창출했다. (이보다 훨씬 넓은) 육영재단 소유 부지를 개발했을 때 창출할 수 있는 수익 규모는 조 단위”라고 했다.
육영재단은 여러 차례 남매들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1990년대엔 ‘박근혜-박근령 1차 남매의 난’이 일어났다. 2007년엔 ‘박근령-박지만 2차 남매의 난’으로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2차 남매의 난 당시 재단 사무실에 조직폭력배 200여 명이 동원되는 대규모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차 남매의 난은 박근령 전 이사장의 재단 운영비 횡령·착복이 발각되면서 박지만 EG 회장이 승리한 모양새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림자는 있었다. 육영재단은 2009년부터 임시 이사체제에 돌입했다. 재단이 ‘인사권’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임시이사제가 시행되기 전 마지막 이사장이었던 조수연 씨가 여전히 등기부등 상 육영재단 대표이사로 기재돼 있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임시 이사제 시행에 따라 육영재단은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이사 선임을 승인받아야 한다. 서울동부지방법원 관계자는 육영재단 이사 선임 과정과 관련해 “재단을 법정 관리하는 것처럼 직권으로 이사를 선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재단에서 이사 선임을 신청해 후보자를 제시하면 소명 과정을 거쳐 허가하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이사 선임 자체는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후보는 육영재단 측이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면 육영재단 이사 후보 선정 과정에 입김을 행사하는 ‘실세’는 누구일까. 육영재단 내·외부에선 “아직까진 특수관계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특수관계인이란 공익법인 설립자의 직계 가족을 일컫는다. 육영재단 특수관계인으론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박지만 EG 회장 등이 있다. 육영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특수관계인은 재단 이사진 전체 인원 5분의 1을 추천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만 EG 회장. 사진=연합뉴스
육영재단 실세로 가장 빈번하게 지목되는 이름은 박지만 EG 회장이다. 육영재단 내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는 “사실상 재단 운영에 깊숙이 관계된 특수관계인은 박지만 EG 회장”이라고 귀띔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육영재단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힘들 것이란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1982년 육영재단 3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던 박 전 대통령은 1990년 11월 최태민 당시 육영재단 고문이사의 비리를 둘러싸고 형제들과 운영권 다툼을 벌였다. 최태민 고문이사는 ‘국정농단 사태’ 중심에 있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부친이다.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났고, 뒤이어 박근령 전 이사장이 취임했다. 박 전 이사장은 앞서 언급한 ‘2차 남매의 난’ 이후 육영재단을 떠났다.
재단과 특수관계인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에 대해 육영재단 고위 관계자는 “박근령 전 이사장은 (육영재단과) 전혀 관련이 없고 연락이 안 된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저기(구치소) 가 있는데 재단에 어떻게 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박지만 회장은 자신의 사업을 하느라 힘들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자신의 모친이 만든 재단이니 신경은 쓰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육영재단 대표이사다. 2018년 9월 12일 이진호 전 안양부시장이 육영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 전 부시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기수는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박지만 EG 회장(육사 37기)과 비슷한 시기에 육사에 재학했던 동기 혹은 선·후배로 추정된다. 이 전 부시장은 1988년 공직에 입문해 안양시 동안구청장, 오산·광주·광명 부시장, 경기도 교통도로국장 등을 거친 인물로 알려졌다.
육영재단 관계자는 4월 10일 통화에서 “이진호 대표이사는 육사 36~37기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4월 2일 일요신문과 만나 “현 대표이사와 박지만 회장이 서로 사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육영재단 내·외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진호 대표이사는 취임 이후 재단 목적사업 활성화를 통한 재정 안정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는 후문이다. 2020년 들어 육영재단에 주차장 자동화시스템이 도입된 것도 기본재산을 활용한 수익 창출의 일환이다.
그렇다면 육영재단의 정상화는 언제쯤 가능할까. 현재로선 시기를 단정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육영재단 관계자는 “임시이사 체제를 벗어나는 것에 대한 결정은 서울시교육청이 내릴 일”이라면서 “수익 발생이 잘되고, 차상위계층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목적사업이 잘되면 (서울시교육청이) 결정을 해줄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공익재단의 경우 기본재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의 70% 이상이 목적사업에 투입돼야 하는데, 육영재단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육영재단 소유 건물들이 낡은 편이다. 건물 개보수만 해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육영재단엔 변화가 거의 없었다”면서 “현재 관선이사들이 할 수 있는 부분도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 걸린 육영수 여사의 사진. 사진=이동섭 기자
육영재단 측은 보유한 부지 개발 사업으로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2009년 이후 육영재단은 꾸준히 개발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재단법인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재산을 까먹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재단을 계속 운영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육영재단은 자꾸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 그게 리스크가 상당히 크다”고 했다. 또 “서울시교육청이 볼 때는 육영재단이 하고 싶어 하는 사업들에 기본재산을 까먹을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새로운 사업 인가가 나지 않는 이유”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가 부지 개발 추진에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도 있다. 전직 육영재단 관계자는 “현재 육영재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거의 무관하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러나 육영재단은 육영수 여사가 설립했다는 상징성이 존재하는 까닭에 전 정권 랜드마크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육영재단이 뭔가를 하려고 하면, 현 정권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할 것이 불 보듯 빤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사진=이동섭 기자
최근 육영재단도 코로나19 확산으로 핵심 목적사업인 유치원 운영에 차질이 생겼다. 육영재단은 원생들의 교육비를 환불해줘야 하는 입장이다. 반면 유치원 교사를 비롯한 임직원들 임금은 원래대로 지급해야 한다. 근화원과 과학교실 등 육영재단이 운영하는 목적사업 시설에도 단체 방문객이 뚝 끊겼다. 재단이 진행하는 목적사업 대부분이 사실상 ‘영업 중단’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런 대형 악재가 발생하기에 앞선 3월엔 유치원 교사들 임금 협상 과정을 두고도 잡음이 나왔다. 육영재단 유치원은 사립 유치원이지만 공립 유치원 운영 방침을 거의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치원 교사들 임금엔 공립 유치원의 호봉제가 적용된다. 그런데 3월 중순쯤 육영재단 내부에선 “재단 수뇌부가 일방적으로 유치원 교사들의 임금 동결을 추진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반발이 거세지자 육영재단은 유치원 교사 임금 동결안을 철회하고 기존 호봉제에 따라 임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육영재단 고위 관계자는 “유치원만 임직원 임금을 올리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면서 “재단 간부급들과 재단 직원들 임금의 경우엔 오히려 삭감해야 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관리자로서 그런 말이 밖으로 나간 것 자체에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시기가 참 어려운 시기인데, 각자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둘리와 하니의 고향’ 육영재단의 역사 아기 공룡 둘리. 사진=연합뉴스 육영재단은 설립 초기 한국 어린이 사업을 주도한 공익재단이다. 1967년부터 1987년까지 발행된 아동 월간지 ‘어깨동무’와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미취학 아동 월간지로 인기를 끌었던 ‘꿈나라’ 발행사가 육영재단이었다. ‘아기 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 등 유명 국산 만화의 산실이었던 잡지 ‘보물섬’ 역시 육영재단의 핵심 사업이었다. ‘보물섬’은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발행됐다. 보물섬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잡지 전체를 만화로 채우는 파격을 시도했다. 육영재단 초대 이사장은 곽상훈 전 국회의장이다. 그는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수행하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통일주체국민회의 운영위원장 등 요직을 겸했다. 1980년 1월 10일 곽 전 의장이 향년 83세로 작고한 뒤 그의 유고에 따라 최세경 전 민주공화당 의원이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물려받는다. 2년 뒤 최 전 의원은 이사장직에서 물러난다. 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90년까지 8년 동안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맡았다. 1990년 최태민 당시 육영재단 고문이사 비리를 둘러싼 ‘1차 남매의 난’ 발발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난다. 이후엔 박근령 전 이사장이 1990년부터 2008년까지 19년 동안 육영재단 운영권을 쥐었다. ‘2차 남매의 난’ 이후 박근령 전 이사장의 장기집권 체제는 막을 내렸다. 2009년 조수연 씨가 5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육영재단은 임시이사체제에 돌입했다. 조 씨는 자연스레 이사장직을 상실했다. 2009년 임시이사 체제로 개편된 뒤 2020년까지 육영재단은 법원에 이사 선임을 승인받는 형식으로 재단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황금기 시절과 비교했을 때 육영재단의 몸집은 상당히 줄어든 모양새다. 이동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