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건은 강남구 44번 확진자 감염력
서울 강남구 44번 확진자가 3월 27일 밤부터 28일 새벽까지 유흥업소에서 일하면서 현재 확인된 접촉자만 100명이 넘는다. 2차, 3차 접촉자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수도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과연 당시 강남구 44번 확진자에게 감염력이 있었는지 여부다.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유흥업소에서 일을 했다면 대구 신천지 교회를 넘어서는 집단감염이 이뤄질 수도 있다.
‘ㅋㅋ&트렌드’는 지하 1~2층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하 1층의 전용 면적은 202평(668㎡), 지하 2층은 242평(800㎡)이다. 룸이 40여 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정도면 사실상 기업형 유흥업소다. 지난 8일 오후 폐쇄된 유흥업소 입구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애초 보건당국은 강남구 44번 확진자의 동선을 3월 28일부터만 공개했다. 당시만 해도 증상 발현 하루 전부터 감염력이 있다고 보고 동선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강남구 44번 확진자는 가수 윤학(본명 정윤학)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만난 것은 3월 26일이고 의심증상이 나타난 것은 29일이다. 그 사이인 27일 밤부터 28일 새벽 사이에 유흥업소 ‘ㅋㅋ&트렌드’에서 9시간가량 일을 했다.
질병관리본부는 4월 3일부터 감염 가능한 시기를 ‘발병 2일 전’으로 적용해 동선 및 접촉자 조사 범위도 2일 전으로 변경했다. 강남구 44번 확진자는 하루 전인 4월 2일 확진 판정을 받아 발병 하루 전인 3월 28일부터 동선이 공개됐다. 그렇지만 3월 28일 0시부터 4시까지 새벽 시간에 유흥업소에서 일한 사실은 보건당국에 알리지 않았다. 이에 강남구는 강남구 44번 확진자인 36세 여성 이 아무개 씨를 경찰에 고발했다. 역학조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한 혐의(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다.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3월 27일부터 이 씨에게 감염력이 있다고 보고 역학 조사 중이다. 즉, 이 씨가 ‘ㅋㅋ&트렌드’에서 9시간가량 일할 당시 감염력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전문가들도 같은 입장이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 “감염력이 얼마나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WHO(세계보건기구) 역학 조사 기준을 보면 증상이 나타나기 이틀 전부터 감염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3월 29일에 열이 났다면 그 전부터 증상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 (유흥업소에서 일할 당시) 감염력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업소 아닌 미용실에 확진 사실 알린 까닭
이런 까닭에 방역당국은 이 씨의 접촉자로 분류된 117명에 대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10일 현재 아직 이 가운데 확진자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유흥업소에서 일할 당시에도 충분히 감염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개인차는 분명 존재한다. 다행히 당시 이 씨의 전염력이 그리 크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이게 최선의 시나리오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워낙 은밀한 세계인 만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감염이 확산되고 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씨가 확진 판정을 받고 난 뒤 보인 행보다. 감염 우려가 있는 시기에 일했던 업소 ‘ㅋㅋ&트렌드’에 그 사실을 통보하는 게 상식적인데 이 씨는 거기가 아닌 미용실에만 그 사실을 알렸다. 유흥업계 종사자들 역시 ‘ㅋㅋ&트렌드’만큼이나 미용실을 통한 집단감염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강남의 유흥업소 영업사장의 설명이다.
“이 바닥(유흥업계) 소문은 모두 미용실을 통해 퍼진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업소에서 진상이라도 부리면 다음날 바로 소문이 다 난다. 그 매개가 미용실이다. 과거 ‘나가요촌’이라 불리는 동네가 있을 때부터 강남에는 접대여성들을 전문으로 하는 미용실들이 있었다. 저녁 6~7시에 가면 메이크업하고 헤어 세팅하는 애(접대여성)들이 가득 차 있다. 거기서 강남 일대 유흥업계의 각종 소문이 다 퍼진다. 그런데 그게 꼭 소문만 그러하겠나. 바이러스가 퍼질지라도 소문 전파 방식처럼 미용실이 매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용실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면 한두 업소가 아니라 강남 유흥업계 전체로 확산될 수도 있다.”
‘ㅋㅋ&트렌드’ 측이 임직원에게 발송한 메시지에도 유사한 흐름이 감지된다. 업소 측은 이 씨의 감염 사실을 파악하게 된 경위에 대해 “강남구 44번 확진자가 본인의 확진 사실을 확인하고 금요일 자신과 접촉한 미용실 직원에게 알려 강남 일대에 소문이 퍼졌고 이를 우리 업소 직원 분께서 듣게 되어 강남구 44번 확진자에게 직접 통화를 하여 확인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힌 것. 그 미용실을 통해 소문은 강남일대로 퍼졌다. 만약 이 씨가 감염력이 있는 상황에서 미용실을 방문했다면 코로나19 역시 강남일대로 퍼졌을 수 있다.
강남 유흥가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은숙 기자
#교인명부라도 있던 신천지, 유흥업소는…
이 씨가 방역당국의 역학조사 과정에서 직업을 ‘프리랜서’라고 밝힌 부분도 눈길을 끈다. 유흥업계 관계자들은 ‘어느 업소 소속이 아닌 여러 업소를 오가는 프리랜서’라는 의미로 본다면 맞는 표현이라는 반응이다. 이런 까닭에 이 씨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미용실에는 알리고 ‘ㅋㅋ&트렌드’에는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해당 업소 소속으로 매일 출근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오히려 고정적으로 자주 찾는 미용실에 먼저 전화를 하게 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는 설명이다. 요즘은 이런 프리랜서 형태의 접대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한 유흥업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 가게는 상당히 큰 곳이다. 따라서 금요일처럼 손님이 많은 날에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접대여성들도 꽤 와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전반적으로 유흥업소에 손님이 많이 줄었고 문을 닫은 곳도 늘어 프리랜서 형태로 몇몇 잘 되는 가게에 불려가는 접대여성들이 많다. 이쪽이 감염병에 취약한 것은 밀폐된 공간에서 밀접하게 앉아 술을 마신다는 이유 때문이지만 인력 구조가 더 심각하다. 전파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 업소 저 업소 옮겨 다니며 일하는 접대여성들도 많고 매일 업소를 옮겨 다니며 술집을 찾는 손님도 많다. 어떻게 어디까지 확신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2차까지 나가는 술집은 더 위험하다.”
‘ㅋㅋ&트렌드’는 지하 1~2층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하 1층의 전용 면적은 202평(668㎡), 지하 2층은 242평(800㎡)이다. 룸이 40여 개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정도면 사실상 기업형 유흥업소다. 그날 업소를 오고간 손님과 직원이 무려 500여 명이나 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날 누군가에게 코로나19가 감염됐을 경우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업소 측에서 관리하는 단골이나 신용카드로 결제를 한 손님 등 일부는 추적이 가능하지만 그들과 함께 온 일행까지 다 확인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일본 도쿄의 긴자나 롯폰기 등 고급 유흥주점이 주요 감염 경로 가운데 하나로 분류되고 있음에도 방역당국의 역학조사가 어려움을 겪는 것과 같은 이유다.
압수수색까지 해서 손님 명부를 확보한다고 할지라도 제한적인 데다 접대여성을 일일이 확인하는 데에도 한계가 명확하다. 게다가 다른 업소와 미용실 등을 통해 강남 유흥업계 일대로 감염이 확산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칫 강남구 44번 확진자 이 씨로 시작해 유흥업계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이 올 경우 대구 신천지 교회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