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Mnet ‘프로듀스48’(연출 안준영) 제작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은 도대체 조작이 왜, 어떻게 진행됐으며 어디까지 알았느냐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흔히 안준영 PD가 메인 PD인 만큼 사건을 주도했을 것이라고 추측돼 왔다. 그런데 일요신문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안준영 PD가 아닌 김용범 CP가 주도해서 벌어졌다고 파악된다.
제작진이 본격적으로 조작을 시작한 건 시즌 3부터다. 프로듀스 시즌3는 서바이벌에서 생존한 멤버들로 아이즈원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고 대성공을 거뒀다. 2월 조작 논란을 딛고 컴백한 걸그룹 아이즈원의 정규 1집 ‘블룸아이즈’(BLOOM*IZ)는 앨범 발매 하루 만에 18만 4000장을 기록해 역대 걸그룹 발매 첫 주 판매량(초동) 기록을 경신하는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종전 걸그룹 초동 1위는 트와이스가 2019년 9월 미니 8집 ‘필 스페셜’로 세운 15만 4000장이었다.
이런 엄청난 성공 뒤에 조작이라는 그늘이 있었던 셈이다. 김용범 CP와 안준영 PD는 어떻게 조작이라는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일까. 온라인 사전투표 결과가 그 단초가 됐다. 일요신문이 제작진, 기획사 관계자, 수사기관 등을 취재해 파악된 조작의 실체는 이렇다.
프로듀스 시리즈에 투입됐던 제작진들은 프로듀스 시즌3이 특히 부담스러웠다고 입을 모은다. 강다니엘 등 초특급 스타를 배출한 시즌2에 이어 비슷한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지 압박감이 상당했다고 한다. 이런 압박감은 시즌 내내 이어진다.
2018년 8월 31일은 프로듀스 시즌3 대망의 마지막 방송 날이었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남은 참가자도 100명에서 약 20명으로 줄어 있었다. 여기서 온라인 사전투표와 생방송 문자투표가 합쳐져 마지막 멤버 11명을 뽑는 과정만 남아 있었다.
조작이 있던 날은 생방송을 하루, 이틀 남겨둔 날로 알려졌다. 그날은 온라인 사전투표가 마감을 앞두고 있었거나 마감이 된 상황이었다. 김용범 CP는 온라인 사전투표 결과를 보고 받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김 CP는 안준영 PD와 이 아무개 PD를 불러 모은다. 엠넷 건물 회의실에 모인 이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결과다. 이렇게 멤버가 구성돼선 안 된다”라고 하면서 이들에게 멤버를 다시 짜야 한다고 말한다.
김 CP는 사전 투표 결과표를 보면서 조작을 해서 순위를 정하기로 한다. 김 CP 주도로 멤버 중 한 명을 지목하고 ‘어떤 이유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이에 나머지 PD들도 동의하면 순위 안에 넣는 방식이었다. 또는 김 CP가 ‘너는 누구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나’라고 물어보면 안 PD 등이 ‘누구는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답하면서 멤버를 추려나가는 방식이었다.
‘국민 프로듀서가 뽑는 멤버’라는 프로그램 기본 설정과는 달리 PD들이 마음대로 정했다. 당연히 포함됐어야 할 생방송 문자 투표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온라인 사전투표와 생방송 문자투표가 결합된 진짜 순위는 수사기관에서 맞춰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실제 순위는 수사기관이 처음 알게 됐던 셈이다.
그렇다면 안준영 PD가 받은 접대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까. 여기에는 많은 제작진이나 기획사 관계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한 제작진은 “방송가가 일반 회사보다는 윗사람의 명령에 아랫사람도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윗사람이 결정한 걸 넘어설 수는 없다”면서 “안 PD가 접대를 받은 게 어느 정도 영향은 끼칠 수 있겠지만 절대적인 권한이 김용범 CP에게 있었던 만큼 김 CP가 ‘NO’ 하는데 안 PD가 바꿀 수는 없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일각에서는 일본 멤버가 너무 많이 들어가 조작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이 아니라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다. 일본 멤버가 순위 조작에 원인이 되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봐서도 일본 멤버가 손해나 이득을 받은 게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최종 조작 멤버 선택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것은 ‘누구를 넣어야 완벽한 그룹을 만들 수 있을까’였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왜 조작을 한 걸까. 4월 7일 재판 증인신문에서 안준영 PD 측 지인이자 기획사 대표는 “안준영 PD에게 왜 그랬느냐고 하니 ‘최고가 되고 싶어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 주변 사람들과 출연진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더라”라고 답했다.
만약 프로그램이 잘되더라도 안 PD는 메인 PD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가가 오른다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김용범 CP는 왜 그래야 했을까. 일각에서는 안 PD나 김 CP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도 만만치 않은 요인이 됐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특히 김 CP는 시즌2 성공 이후 수억 원대 인센티브를 받았다고 한다. 시즌3도 성공해야 그만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조작 직전 보고 받은 온라인 사전 투표 그대로 최종 멤버가 된다면 시즌2만큼의 폭발적 성공을 달성하지 못했으리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작의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프로듀스’ 사태는 시즌4 마지막회 생방송 문자투표 수의 조작이 의심된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경찰 조사 끝에 김용범 CP와 안준영 PD가 시즌 조작을 시인하면서 파장이 일었고, ‘프로듀스’ 시즌4를 통해 탄생한 프로젝트 그룹 엑스원은 결국 해체했다. 결국 어떤 이유에서든 지나친 욕심 탓에 모든 걸 잃어버렸고 데뷔 그룹, 그리고 이제 막 꽃 피우려던 그룹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건 분명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