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는 소속팀 마이너리거들을 챙기며 미국에서도 ‘기부천사’로 거듭났다. 사진=이영미 기자
#‘기부 천사’ 코리안 메이저리거
한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던 3월 5일,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3·토론토 블루제이스)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억 원을 기부했다. 류현진 측은 성금을 기부하며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대구·경북지역 의료진과 코로나 예방에 자원이 필요한 전국 각지 국민들에게 잘 쓰이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류현진의 기부는 추신수(38·텍사스 레인저스)한테로 이어졌다. 3월 11일 추신수는 코로나19 극복 성금으로 2억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지부에 맡겼다. 추신수는 “곁에서 함께 못하고, 직접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대구 시민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는 뜻을 함께 담았다.
추신수는 기부를 위한 기부가 아니라 자신의 성금이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도움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던 대구를 기부 지역으로 정했고, 그곳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의료진들의 방호복 등 의료 물품 지원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이뿐만이 아니다.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마이너리그 선수들 191명한테도 손을 내밀었다.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생활고를 걱정한 그는 1인당 1000달러씩 모두 19만 1000달러(약 2억 3000만 원)를 구단에 보냈고, 구단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주급을 지급할 때 추신수가 보낸 1000달러를 보태 선수들 통장에 입금했다는 후문이다(관련기사 ‘선행의 선순환’ 추신수 “야구는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냐”).
추신수의 이런 행동은 다른 메이저리그 선수들한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에이스 저스틴 벌랜더가 2개월 동안 지급되는 28만 6500달러(약 3억 5000만 원)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나섰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브라이스 하퍼는 코로나19 극복 성금으로 50만 달러(6억 475만 원)를 내놓았다.
메이저리그 신인 김광현은 오랜기간 가족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사진=이영미 기자
#“그럼에도 모두 힘내시길!”
메이저리그 ‘루키’로 시범경기 동안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은 스프링캠프 훈련지였던 플로리다 주피터를 떠나 현재 세인트루이스에 머물고 있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다고 해서 홈구장인 부시스타디움을 이용하는 건 아니다. 그는 베테랑 애덤 웨인라이트와 캐치볼 파트너를 이루며 개인 훈련을 이어가고 있는데 훈련장, 야구장이 폐쇄된 터라 훈련 여건이 썩 좋지만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광현은 주피터에서 기자를 만났을 때 한국에 머물고 있는 가족들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호소하면서도 자신보다 더 힘들게 지낼 사람들을 떠올렸다.
“나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코로나19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다 같이 힘내서 좋은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 (야구선수니까) 야구장에서 (그분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는데 야구가 중단돼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열심히 준비해서 시즌 시작하게 되면 꼭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
추신수는 훈련지였던 애리조나를 떠나 자신의 집이 있는 사우스레이크로 돌아갔다. 지난해 새로 지은 집에는 웨이트트레이닝룸과 타격 훈련할 수 있는 배팅케이지 등을 만들어놨는데 이걸 야구 시즌인 4월에 이용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고 한다.
야구하면서 처음 경험하는 4월의 오프시즌이 추신수한테는 어떻게 다가올까.
“말 그대로 오프시즌 때 훈련하는 것처럼 프로그램을 짜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 야구가 개막될지, 그 전에 언제 소집될지 알 수 없으므로 당장이라도 경기에 나갈 수 있게끔 몸을 만들어 놔야 한다. 모든 선수가 그렇겠지만 갑자기 스케줄 없는 삶을 사는 게 쉽지만은 않다. 2월이면 스프링캠프가 소집되고, 3월 말이면 시즌이 개막되면서 매일 경기에 나서는 생활이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약속된 스케줄이 존재하지 않는다. 야구 경기를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 속에서 함께 뛰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었는지를 절감하는 중이다. 코로나19를 통해 가장 평범한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걸 배우게 된 것 같다.”
추신수는 최근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한국이 코로나19에 대응을 잘한 이유로 모든 한국인들이 코로나19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이 밖에 돌아다닌다면서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면 지금은 집에 있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모두가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한다”면서 “다 같이 책임감을 느끼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만삭의 아내와 플로리다에 남아 있는 류현진은 여전히 김병곤 트레이닝 코치와 함께 개인 훈련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는 얼마 전 플로리다의 한 마트를 찾았다가 휴지와 물티슈가 쌓여 있던 진열대가 텅텅 비어있는 걸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훈련을 이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훈련을 중단할 수는 없는 일. 류현진은 자신보다 다른 선수들, 그리고 한국 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을 이어가는 건 솔직히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모든 선수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터라 매일 긍정적인 심리로 이 상황들을 이겨내려고 노력 중이다. 한국의 많은 분들도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을 통해 코로나19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들었다. 기운 잃지 마시고 더욱 힘내서 이 위기를 잘 이겨내길 바란다.”
#도움을 주는 손길들
최근 류현진은 이전까지 있었던 플로리다 클리어워터의 임시 거주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이사한 집의 주인은 LA 다저스 시절 인연을 맺었던 포수 러셀 마틴이다. 현재 캐나다에서 가족들과 함께 머물고 있는 러셀 마틴은 아내의 출산을 앞둔 류현진에게 자신의 플로리다 집에 머물 것을 권유했고, 남한테 신세 지는 게 불편했던 류현진은 처음 마틴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다 만삭의 아내를 위해 결국 마틴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구장이 있는 캐나다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적자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한 상태다. 아내의 출산이 임박한 상황에서 류현진은 캐나다로 갈 수도 없었고, 자신의 집이 있는 LA로 돌아가기도 어려웠다. LA가 있는 캘리포니아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플로리다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류현진한테 배터리의 인연을 맺은 러셀 마틴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지난해 러셀 마틴과 배터리를 이루며 좋은 성적을 올린 류현진은 야구 외에 마틴과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며 그의 배려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코로나19로 인해 야구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훈훈한 스토리가 쌓이고 있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