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2’는 고작 ‘6부작’이다. 게다가 회당 러닝타임도 50분 남짓이다. 국내 드라마가 회당 통상 60∼90분간 편성되는 것을 고려할 때, ‘킹덤2’는 그와 비교해 분량이 3분의 1 정도다. 사진=‘킹덤2’ 포스터
코로나19의 여파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올스톱’된 상반기 가장 눈에 띄는 콘텐츠는 단연 넷플릭스 ‘킹덤2’다. 2019년 시즌1이 공개된 데 이어 약 1년 만에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킹덤2’는 한층 높은 완성도와 탄탄한 스토리로 한국을 넘어 전세계 팬들을 ‘K-좀비’에 열광케 했다.
그런데 ‘킹덤2’는 고작 ‘6부작’이다. 게다가 회당 러닝타임도 50분 남짓이다. 국내 드라마가 회당 통상 60∼90분간 편성되는 것을 고려할 때, ‘킹덤2’는 그와 비교해 분량이 3분의 1 정도다. 시즌1 역시 6부작이었고, 6부가 동시에 공개돼 연속극 형태로 전개되며 뒤로 갈수록 기대치가 상승해 대중이 열광하는 효과를 노리지도 않았다.
혹자는 이렇게 항변할 수 있다. “‘킹덤2’는 회당 30억 원에 육박하는 제작비가 투입됐고, 주지훈, 배두나, 류승룡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고, 편성의 압박이 덜하니 여유 있게 촬영하며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이런 이들을 위해 이번에는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제시한다. 이 드라마는 12부작이다. 게다가 ‘주 1회’ 방송된다. 연속극의 특성상 월화극은 화요일, 수목극은 목요일 시청률이 더 높은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런 메리트를 포기했다. 그 결과는 어떨까?
3월 12일 전국 시청률 6.3%(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한 이후 4월 9일 11.3%까지 단 한 차례로 하락하지 않고 상승세를 보였다. 그리고 주연 배우 4명을 제외하면 여주인공 채송화 역을 맡은 전미도를 비롯해 대다수 출연진이 신인 혹은 무명 배우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맞춤옷을 입은 듯한 연기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전작인 ‘응답하라’ 시리즈를 비롯해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에서 신인 배우들을 과감히 기용해 성공을 일군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판단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결국 16부작 편성이 ‘흥행을 위한 방정식’이라는 계산은 허상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16부작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이야기를 늘리는 과정에서 극의 밀도가 떨어지고, 시청률 역시 하락하고 만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유명 예능 프로그램들은 주 1회 방송되지만 그 인기를 유지한다.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연속극의 특성상 주 2회를 고집하고 있지만, 이 역시 성공을 위한 절대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 이미 ‘킹덤2’나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입증됐다”고 꼬집었다.
#왜 16부작을 고집하나
여기에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일단 배우들이 이를 원한다.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을 맡은 스타들은 작품 활동이 잦지 않다. 1년에 드라마 1∼2편, 혹은 드라마 1편과 영화 1편 정도에 참여한다. 16부작 드라마 한 편의 촬영 기간이 6개월 안팎인 것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판단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출연료를 회차 기준으로 받기 때문에 그들의 개런티는 통상 16부작 기준으로 책정돼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는 12부작이다. 게다가 ‘주 1회’ 방송된다. 연속극의 특성상 월화극은 화요일, 수목극은 목요일 시청률이 더 높은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런 메리트를 포기했다. 사진=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공식 홈페이지
유력 배우들을 다수 보유한 매니지먼트 대표는 “회차가 짧은 드라마에 참여하면 향후 스케줄 구성에 애를 먹는다. 게다가 연간 매출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16부작이 이미 오랜 경험을 통해 약속된 황금비율이라 할 수 있다”며 “배우들도 성패를 가늠하기 힘든 작품을 여러 편 고르는 것보다는 성공 확률이 높은 16부작 1편으로 승부를 걸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는 방송사와 제작사 역시 같은 입장이다. 신작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기획·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초기 투자비용이 높다는 의미다. 그래서 방송사는 제작사와 계약을 맺을 때 기획·개발비 일부를 인정해 지급한다. 그런데 드라마 당 회차가 줄어 1년 단위로 편성해야 하는 드라마 편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1년에 1편 정도의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사 입장에서도 16부작 드라마를 공급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대다수 작품이 10회 안팎으로 편성된다. 이를 공개한 후 성공을 거두면 시즌제로 다음 이야기를 풀어가는 식이다. 미국 CBS ‘CSI’는 16시즌까지 이어졌고, 미국 HBO ‘왕좌의 게임’은 시즌8까지 제작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국내 드라마가 넷플릭스에 잇따라 소개되고, 케이블채널을 중심으로 16부작이라는 틀을 깬 작품들이 연이어 편성되며 점차 이 공식에도 균열이 가는 모양새다.
아울러 단막극을 비롯해 짧은 회차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방송 중인 KBS 2TV 4부작 ‘계약우정’은 2% 저조한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이 외에도 각 지상파 방송사에서 제작한 단막극과 4∼6부작 드라마 중 성공을 거둔 사례는 드물다. 이를 두고 단순히 ‘드라마 길이’를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각 방송사들이 짧은 드라마를 ‘땜질용’ 정도로 생각하며 큰 힘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초래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한 중견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회차가 짧은 드라마에는 스타들도 출연을 꺼리기 때문에 제작비도 적게 투입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라며 “하지만 한국 드라마 시장의 체질 개선을 16부작 중심으로 운영되는 틀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