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신과 함께–인연 편’ 이래 잠시 주춤하던 만화 원작 영화도 지난해 ‘시동’ ‘롱 리브 더 킹’에 이어 올해 ‘해치지 않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목록을 불려 가고 있다. 이젠 국내에서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드라마나 영화를 거론하기 위해 수년 전 기억을 뒤적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만화, OSMU의 첨병에서 IP 사업의 핵심축으로
근 몇 년 사이에 OSMU(원 소스 멀티 유스) 대신 유행어처럼 돌아다니는 표현이 IP 사업이다. 흔히 인터넷 프로토콜(Internet Protocol) 주소를 가리키는 이 표현은 근래 들어서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의 준말로서 더 회자되고 있다. IP는 저작권에 산업재산권(공업재산권)을 모두 포괄한 개념이다.
만화는 이 흐름에서 중요한 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상황은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 사실상 광고 시장의 시식 상품이나 다름없던 웹툰이 스마트폰용 콘텐츠의 필요성과 함께 소액 결제와 광고 수익 분배 등을 통해 내실을 다진 데 이어, 웹툰을 서비스하는 업체들도 작가와 타 업체 사이에서 콘텐츠 제공자(CP)로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데 그치던 걸 넘어 권리를 확보하고 직접 콘텐츠를 활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카카오는 초반 실패를 딛고 스마트폰 콘텐츠 플랫폼으로 확실하게 발돋움한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드라마 방영과 연결한 이벤트를 꾀하는 등 드라마 시청자를 웹툰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2016년 다음 웹툰에 연재됐던 ‘이태원 클라쓰’ 원작의 역주행은 만화를 영상으로 제작하면서 2차적 저작물 작성권 판매에서 끝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웹툰 플랫폼 규모 1위를 달리고 있는 네이버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비교적 영상화에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네이버도 ‘마음의 소리’의 드라마화에 이어 ‘신과 함께’의 영화판이 흥행하자 아예 영상 제작사(스튜디오N)를 차렸다.
‘이태원 클라쓰’ 카카오페이지 홍보이미지.
그렇다고 만화가 완전히 혼자서 IP 사업모델의 주역으로 올라선 건 아니다. 오히려 무섭게 치고 올라온 웹소설의 역할이 만화에도 영향을 끼칠 태세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김비서는 왜 그럴까’(tvN)는 웹툰이 아닌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데, 인터넷 소설 커뮤니티에서 연재됐던 작품이 카카오페이지에 재연재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웹툰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드라마 제작으로 연결 지은 데 이어 웹소설 원작까지 역주행 흥행시킨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한때 만화가 OSMU의 첨병으로서 개인 단위에선 좀 클 법한 계약금(2015년 기준 작품당 3000만~1억 원 안팎)을 기대하고 작가들 사이에서도 영상화에 어울릴 만한 연출과 소재를 찾으려고 다소 무리하던 시기와는 좀 다르다. 싼값에 쓸 만하다라는 인식에 머무르기보다 웹소설과 더불어 콘텐츠 비즈니스의 한 축으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상의 영향력과 파급력을 만화라는 단일 콘텐츠가 따라갈 수 없다는 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마블은 이제 만화 업체가 아니다. 만화 왕국 일본도 사실은 박리다매 전략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결국 연재 잡지를 카탈로그화한 상태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전략을 오랜 시간 써 왔다. 우리나라 만화의 현재 헤게모니를 쥔 웹툰도 비로소 작가 개인이 아닌 산업 차원에서 부각될 정도로 영상화와의 연결이 활황세를 타기 시작한 셈이다.
게다가 웹툰 서비스 업체들이 직접 움직이는 점은 만화가 단지 ‘싸서’ 접근하던 것과는 달리 알고서 접근한다는 면이 강하다. 네이버는 자사 연재작 특징에 좀 더 맞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서기도 했는데, 첫 작품인 ‘신의 탑’(SIU)은 한미일 합작으로 해외에 늘어난 한국 웹툰 독자들까지 포괄하는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콘텐츠의 원천 소스를 필요로 하는 창구도 더더욱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넷플릭스는 이미 다음 웹툰 연재작 ‘좋아하면 울리는’에 이어 네이버 연재작 ‘스위트홈’을 오리지널로 제작하고 있다. 일단 영화 또는 지상파 TV 채널을 노리지 않으면 안 되던 때와 달리 지금은 조금 더 작품에 맞는 창구를 찾을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나고 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웹소설, 만화, 드라마 이미지.
#만화의 영상화, 실패율을 줄이려면?
한데 그 어떤 때보다 긍정적인 신호가 많이 보이는 지금 약간의 우려가 든다. 이 화제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모든 만화의 영상화가 수작과 명작일 수만은 없는 이상 평작과 망작은 필연적으로 나오게 돼 있다. 망작의 수를 줄여가며 평작 이상을 계속 만들어내야 향후 더 큰 기획과 더 나은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만화와 영상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흔히 만화가 영상화가 용이한 이유를 영상 연출을 위한 설계도라 할 콘티 역할을 만화가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만화의 프레임은 아무리 영상적 연출을 해도 영상의 프레임과 크기도 다르고 칸과 칸의 배치와 독자의 시간을 제어하는 기술면에서도 상당히 다르며 내용을 전달하는 감각도 완전히 다르다.
이를 감안하지 않은 채 우격다짐으로 제작했다가 실패한 사례는 이제 옆 나라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실사판 영상까지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이 쌓여 있다. 일본은 실사판 영화에서 유독 고정 팬층이 사리탑을 쌓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나라마다의 문화 차이와 감성 차이를 감안하면 기본 품질이나 작품에 관한 태도라는 면에서는 우리나라도 만만찮다. 모두가 ‘미생’(tvN) 정도로 원작 팬과 드라마 팬을 공히 만족시키는 수준이면 얼마나 좋을까만, ‘치즈 인 더 트랩’(tvN) ‘밤을 걷는 선비’(MBC)와 같이 원작을 향한 존중이라곤 보이지 않는 수준의 결과물들이 나올 위험도 얼마든지 상존해 있다.
나쁜 사례가 쌓이면 대중의 관심은 금방 식는다. 이젠 정말로 만화와 영상이 소설과 더불어 ‘함께 가는’ 체제가 확고해지고 있고, 그렇게 더욱 나아갈 것이라고 보면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영상 업계가 원작이 되는 만화에 대해 지금보다 한층 더 높은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하겠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