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 높였던 호텔롯데 연내 상장설
호텔롯데는 롯데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이다. 현재 롯데그룹 지배구조는 ‘총수일가→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지주→롯데그룹 계열사’로 이어진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그룹의 정점에 있고 별도로 롯데건설, 롯데케미칼, 롯데물산 등 주요 계열사 지분도 다수 보유하고 있는데, 일본 롯데홀딩스가 호텔롯데를 지배한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를 상장한 뒤 롯데지주와 합병하거나 호텔롯데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떼어내 지주사로 가져오는 등의 방식으로 ‘완전한 지주사 체제’를 완성시킨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지난 수년 사이 한국과 일본 롯데 경영진의 지지를 받고 ‘원톱’으로 올라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지배력도 더욱 공고해진다. 상장사는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주주가 지분을 보유할 수 있어 ‘일본 기업’ 이미지도 희석시킬 수 있다. 롯데그룹은 2015년 호텔롯데 상장을 추진했다. 그러나 롯데 ‘형제의 난’으로 시작된 경영 비리 사건과 국정농단 사건, 사드 도입 후폭풍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전면 중단됐다.
호텔롯데 상장은 롯데그룹의 ‘뉴롯데’ 전략을 위해 풀어야 할 마지막 퍼즐로 통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일요신문DB
2019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본격적으로 사드 후폭풍에서 벗어나면서 중국 관광객 방한이 늘어났고, 호텔롯데가 전년보다 높은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동빈 회장이 국정농단 관련 재판 3심에서 집행유예가 확정되면서 ‘오너 리스크’도 해소됐다. 2015년 상장 추진 당시보다 기업가치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일제히 호텔롯데 주가를 올려잡고 2020년 실적 개선폭에 따라 상장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비슷한 시기 신동빈 회장이 부임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의 쇄신인사를 단행한 것도 시장의 기대감을 더욱 키웠다. 계열사 대표 22명을 교체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핵심 인물을 전진배치했다. 호텔&서비스BU장을 맡아왔던 송용덕 부회장을 롯데지주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했고 그의 자리에는 그룹 ‘재무통’ 이봉철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을 선임했다. 두 CEO(최고경영자)는 각각 2015년 롯데 지배구조 개편 추진 당시 호텔롯데 상장을 중심으로 한 계획을 내놓거나 관련 작업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룹 차원에서 호텔롯데 상장 검토에 나선 듯한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올해 초까지 증권가에서 ‘호텔롯데 연내 상장설’이 돌았던 이유다. 복수의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업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호텔롯데를 2020년 IPO(기업공개·상장) 시장의 ‘대어급’ 기업으로 분류해 IPO 파트를 중심으로 롯데그룹 움직임에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롯데그룹이 적극적으로 관련 정보를 취합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 IB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지난 수년 사이 보였던 모습보다는 적극적이었지만 시장 상황이나 분위기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2019년 실적만으로는 제대로 된 기업가치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업계 일부 시각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내년에도 호텔롯데 상장은 안갯속
롯데그룹이 상장을 두고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이, 올해 초 코로나19가 확산됐다. 호텔롯데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면세 사업부문의 수익이 크게 하락했고, 최근 한국기업평가는 이를 근거로 호텔롯데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올렸다.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예고한 셈이다. 한기평은 면세업계 실적 악화가 최소 올해 6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반기부터 회복된다고 가정해도 올해 면세업계 매출은 2019년보다 2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월 매출 감소폭이 예상보다 크거나 코로나19 사태가 더 길어지면 전체 매출 감소폭은 30%를 넘어설 수 있다고도 관측했다.
롯데그룹은 2015년 호텔롯데 상장 추진 당시 기업가치를 15조 원 안팎으로 추산했다. 기업가치 책정 기준은 현금창출능력으로 삼았는데, 여기서 면세 사업이 다른 사업과 비교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호텔롯데는 면세, 호텔, 월드, 리조트 사업으로 나뉜다. 면세사업의 가치는 다른 사업보다 2배 이상 높게 책정됐다.
2015년 당시나 실적이 회복되기 시작하던 2019년에는 이 같은 방식이 유리하다. 그러나 최근과 같이 면세 사업이 흔들리면 호텔롯데 몸값도 큰 폭으로 고꾸라진다. 실제 IB업계에선 현재 호텔롯데의 기업가치는 10조 원이 채 안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사업에서도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한 축인 호텔 사업 역시 면세 사업과 분위기가 다르지 않다. 호텔롯데는 해외 사업 확대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계획이었으나 브레이크가 걸렸다. 오는 6월 예정이었던 미국 시애틀 호텔 오픈을 결국 연기했고, 미국 뉴욕 맨해튼의 롯데뉴욕팰리스 운영도 최소한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호텔롯데 상장은 불투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적 회복 추이와 기업가치 수준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고, 이후 상장 준비에만 6개월가량이 걸린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실적과 기업가치 개선이 이뤄지면 적극적으로 상장을 추진한다는 기존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면서도 “다만 시장 상황이나 시기적으로나 올해 상장은 물론 한동안 구체적으로 일정과 계획 등을 검토하는 일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롯데그룹, 계열사 상장 방향 재조정?
시장에선 롯데그룹이 계열사 상장 계획을 일부 수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금융투자업계에선 롯데그룹이 호텔롯데를 후순위에 두고 다른 계열사를 먼저 상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타격이 없거나 비교적 적은 계열사가 꼽힌다. 편의점 사업을 하는 코리아세븐과 외식 사업을 하는 롯데지알에스 등이다.
최근 단행된 롯데물산 유상감자도 호텔롯데 ‘후순위 상장’ 전망에 힘을 싣는다. 롯데물산은 지난 4월 6일 보통주 594만 4888주를 소각했다고 밝혔다. 감자 총액은 3344억 원이다. 롯데물산의 주주는 일본 롯데홀딩스(56.99%), 호텔롯데(31.13%), 기타(11.88%)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지분율대로 감자에 참여하면 일본 롯데홀딩스가 1906억 원을, 호텔롯데가 1041억 원을 확보하게 된다.
롯데물산은 공식적으로 주당 가격을 올리고 주주 이익 극대화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롯데물산은 상장사도 아니고 주주 구성이 단순한 편이라 돌연 주식수를 줄인 것을 두고 시장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호텔롯데 상장의 또 다른 목적에는 일본 롯데 주주들의 투자금 회수도 있다”며 “이번 롯데물산 유상감자로 일본 롯데 주주들은 일부 투자금을 회수했고 호텔롯데도 자금을 수혈 받게 됐다. 호텔롯데 상장을 서둘러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