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대첩’ 주인공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4월 16일 당선인사를 하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선인과 4월 15일 대표직 사퇴를 발표하는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사진=최준필·이종현 기자
잠룡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출사표를 던졌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를 여유 있게 제압하고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다. 이 전 총리는 5만 4902표(58.3%)를 얻어 3만 7594표(39.9%)를 얻은 황 대표를 1만 7308표 차이로 제압했다. ‘종로대첩’은 다소 싱거운 결과로 막을 내렸다. 보수 진영 유력 대권주자를 제압한 이 전 총리 ‘대망론’엔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종로에서 참패한 황 대표는 정치생명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황 대표는 4월 15일 선거상황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당이 국민께 믿음을 드리지 못했다”면서 “대표인 제 불찰이다.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가겠다”는 말과 함께 대표직을 내려놨다. 황 대표는 “앞으로도 나라를 위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탤 길을 찾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상황실을 떠났다.
21대 총선에서 가장 관심도가 높았던 지역구 중 하나였던 서울 광진을에서도 한 잠룡의 날개가 꺾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다. 광진을은 지역구가 생긴 이래 보수 진영이 한 번도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통곡의 벽’으로 여겨져 왔다. 오 전 시장은 2019년 초부터 활발한 지역활동을 펼치며 ‘통곡의 벽을 넘겠다’는 의지를 표현해 왔다. 하지만 오 전 시장 도전은 ‘정치 신예’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선전에 막혔다.
고 전 대변인은 5만 4210표(50.3%)를 얻어 지역구 내 과반 지지를 얻었다. 5만 1464표(47.8%)를 받은 오 전 시장을 2746표 차이로 꺾었다. 고 전 대변인은 4월 16일 새벽 당선을 확정 지은 뒤 “이제 앞으로 광진 주민 모두의 의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선거 승리는) 저 혼자만의 승리가 아닌 우리 모두의 승리”라는 소감을 밝혔다. 광진을에서 패한 오 전 시장은 20~21대 총선에서 연이어 패하면서 향후 정치적 입지가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여야 잠룡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왼쪽)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사진=이종현·임준선 기자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정치 신예’에게 일격을 맞았다. 서울 동작을에서 5선을 노렸던 나 전 원내대표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판사 더비’에서 8381표 차로 무릎을 꿇었다.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긴 했지만 민주당 소속 몇몇 잠룡은 영남에서 쓴맛을 봤다. 대구 수성갑 출마와 함께 ‘대권 도전’을 선언했던 김부겸 후보는 미래통합당 주호영 후보에게 3만 1556표 차 완패를 당했다. 부산 부산진갑 지역구에서 서병수 전 부산시장과 맞붙은 김영춘 후보는 3750표 차로 국회 재입성에 실패했다. 서 전 시장은 5만 2037표(48.5%)를 얻으며 4만 8287표(45.0%)에 그친 김 후보를 제압했다.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을 지역에 출사표를 던진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접전 끝에 나동연 미래통합당 후보를 제치고 21대 국회에 연착륙했다. 김 후보는 나 후보를 1523표 차이로 꺾고 문재인 정부의 심장이라 불리는 지역구를 수성했다. 기존 지역구인 경기 김포갑을 두고 경남 양산을에서 힘겨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 후보는 “이번 선거를 바탕으로 여권 잠룡 대열에 합류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져 여의도 생환에 성공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윤상현 의원. 사진=연합뉴스
통합당은 ‘무소속의 난’도 뼈아프게 다가온다. 공천에 불복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4인방이 모두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구 수성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이인선 미래통합당 후보를 2850표 차로 꺾고 여의도 귀환에 성공했다.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20대 국회 현역 의원 강석진 미래통합당 후보를 꺾었다.
인천 동·미추홀을은 ‘무소속의 난’의 화룡점정을 했다는 평이다.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윤상현 후보는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초접전 끝에 171표 차 승리를 거머쥐었다. 21대 총선 최소 표차였다. 윤 후보는 4만 6493표(40.5%)를 얻었고, 남 후보는 4만 6322표(40.4%)를 얻었다. 무소속으로 4선에 성공한 윤 후보는 20대 총선에 이어 2회 연속 무소속 당선이란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강원 강릉에선 권성동 후보가 ‘무소속의 난’ 대미를 장식했다. 권 후보는 4만 9618표(40.8%)를 얻어 4만 7088표(38.7%)를 얻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이로써 권 후보는 ‘무소속 페널티’를 극복하고 5선에 골인했다. 강릉에서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은 ‘박근혜 정부 행정자치부 장관’ 홍윤식 후보는 1만 3704표(11.2%)에 그치며 낙선했다.
21대 총선에서 민생당 중진 의원들은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사진 왼쪽부터 정동영, 박지원, 천정배 민생당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호남에선 민생당 중진 의원들이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우수수 낙선했다. ‘정치 9단’이라 불리던 박지원 민생당 후보는 전남 목포 지역구에서 4만 7528표(37.3%)를 얻는 데 그치며 5선에 실패했다. 목포에선 더불어민주당 정치 신예 김원이 후보가 6만 2065표(48.7%)를 얻어 당선됐다. 김 후보는 박지원 민생당 후보와 윤소하 정의당 후보 등 현역 의원 2명을 한꺼번에 제압하고 초선 배지를 거머쥐는 저력을 선보였다.
시련의 계절을 맞이한 민생당 중진 의원은 박지원 후보뿐 아니다. 정동영(4선) 천정배(6선) 박주선(4선) 유성엽(3선) 황주홍(재선) 등 중진 의원들이 호남에서 패배했다. 민생당은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득표율 2.7%에 그치며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원내교섭단체로 선거를 치른 민생당은 순식간에 원외정당으로 전락하며 소멸 위기에 처했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돌풍’에 가로막혀 호남에서 참패했던 더불어민주당은 대대적인 물갈이를 바탕으로 호남 탈환에 성공했다. 21대 총선 첫 당선자와 최대 표차 당선자 역시 호남에서 나왔다.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월 15일 오후 9시가 조금 지난 시점 당선을 확정 지었다. 이 후보는 8만 6315표를 얻어 81.9%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했다. 2위 김선우 무소속 후보와의 표차는 무려 7만 4026표였다.
최대표차 당선자가 나온 지역구는 광주 북구을이었다. 광주 북구을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0만 8229표(78.8%)를 얻어 1만 5281표(11.1%)를 얻은 최경환 민생당 후보를 9만 2948표 차이로 완파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