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크라상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3월 30일 SPC 본사 앞에서 부당인사발령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홈페이지 캡처
지난 4일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크라상지회는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에 파리크라상의 부당노동행위를 처벌해달라고 고소했다. 파리크라상 직원들이 민주노총 가입을 이유로 부당한 인사발령을 받았다는 게 고소의 핵심 내용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파리크라상에는 원래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있었는데 일부 조합원들이 여기서 탈퇴한 후 3월 20일 민주노총 소속의 파리크라상지회를 설립했다. 6일 뒤인 26일 사측은 공교롭게도 교육업무를 하던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을 제조 및 영업지원 업무로 인사발령을 냈다. 파리크라상지회는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들은 직무를 그대록 유지하도록 한 것으로 봐서 민주노총에 가입한 조합원에게만 인사 불이익을 준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SPC 관계자는 “기존 교육 업무에서 ‘제조 및 영업지원’ 업무로의 인사이동은 강등이 아니라 같은 업무를 그대로 하는 셈”이라며 “노동자가 인사에 대해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경영자의 판단도 고려해달라”고 밝혔다.
더욱이 SPC그룹은 2017년 파리바게뜨 제빵사 불법파견 문제로 지탄의 대상이 된 후 가까스로 협력사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합의안 이행과 관련해서는 노조와 사측의 갈등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파리크라상에서도 문제가 터진 것이다.
SPC그룹은 허희수 전 SPC그룹 부사장이 2018년 마약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경영에서 영구 배제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그룹 신사업 회의 등에 참석하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허영인 SPC 회장의 차남인 허 전 부사장은 2018년 마약 밀수·흡입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며 회사 측은 허 전 부사장을 경영에서 영구배제하겠다는 강경한 조치를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SPC그룹은 글로벌 식품기업 하인즈와 계약 체결 성과를 허 전 부사장 공으로 돌리는 등 그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3월 허 전 부사장이 신사업과 관련한 회의에 참석하는 등 경영 복귀 움직임이 알려졌다.
SPC 측은 “허희수 전 부사장은 경영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일부 신사업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뿐인데,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인 것 같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신사업과 프로젝트 관련 회의 등에 참석하고 이를 진행한 것에 대해 경영 참여가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에는 허영인 회장이 장남 허진수 SPC그룹 부사장에게 주식을 증여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허 회장은 8일 SPC삼립 지분 40만 주를 허 부사장에게 증여했다. 증여 금액은 8일 종가 기준 265억 원가량이다.
10년 넘게 조용하던 허 회장이 느닷없이 증여를 하자 ‘절세’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행 증여세법에 따르면 주식 증여세는 증여일 전후 2개월간 종가 평균을 바탕으로 산출된다. 코로나19로 최악의 폭락장을 맞았던 최근, 주식을 증여할 경우 절세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SPC 측은 “회장님의 지분 증여는 금액이 크지 않아 특별한 이유가 없고 승계와 연결짓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SPC그룹이 이처럼 안팎으로 시끄러운 데는 ‘3세 승계 작업’이라는 현안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SPC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는 비상장사 파리크라상이 있으며 파리크라상은 밀다원, 에그팜, 에스피씨네트웍스, 에스피씨캐피탈 등 18개 계열사를 지배한다. 경영 승계를 위해선 허 씨 형제가 파리크라상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파리크라상 지분은 허영인 회장이 63.5%, 아내 이미향 씨가 3.6%, 장남 허진수 부사장이 20.2%, 차남 허희수 전 부사장이 12.7%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허 씨 형제는 상장사인 SPC삼립 주식과 파리크라상 주식을 교환하거나 SPC삼립 지분을 현금화해 파리크라상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3세 승계 자금을 마련하려면 SPC삼립 주가 부양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SPC의 노사문제 대응 방식이나 급락장에서 주식 증여에 나서는 모습 등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회사 안팎으로 도덕성 논란이 일 만한 사안이 많은 터라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SPC 오너와 경영진의 마인드 쇄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