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총선 시계는 ‘기승전·이낙연’으로 통한다. 우회로는 없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를 거치지 않는 포스트 총선 이슈는 단연코 없다. 주어진 시간은 최대 넉 달이다. 늦어도 오는 8월 말 ‘선당권·후대권이냐, 대권 직행이냐’가 결정된다.
선택은 두 가지다. 플랜A는 단독 드리블로 직진하는 안이다. 이른바 ‘문재인 모델’이다. 러닝메이트를 앞세워 ‘당권·대권 분리’인 플랜B를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플랜B 핵심은 친문(친문재인)계 또는 낙선한 김부겸 의원과의 전략적 연대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선자가 4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숭인동 인근에서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100% 나온다고 본다.” 친문(친문재인)계 한 관계자가 이 당선자의 당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 던진 말이다. 이 당선자의 최전방 공격수 도전에 베팅한 셈이다. 서울 종로에 출마한 이 당선자는 황교안(40.0%)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의 맞대결에서 58.4%로 압승했다. 동시에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 87년 체제 이후 전례 없는 범여권 180석 석권의 대승을 이끌었다.
당의 다른 관계자는 “이낙연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지…”라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권 접수 후 대권 직행’인 문재인 모델을 따를 것이란 전망에도 한 표를 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2·8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오른 지 2년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 당선자는 선거 승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당내 역할론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국난 극복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구체적인 언급을 삼갔다. 다만 당내 인사들이 이 당선자의 순차 도전(당권→대권) 가능성에 베팅한 이유로는 ‘NY(이낙연)계 구축’이 꼽힌다. 당권을 통해 당내 입지를 다진 뒤 대선 행보에 나설 것이란 얘기다.
이 당선자는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당내 공천 과정에서 실속은커녕 자기 사람 하나 챙기지 못했다. 이남재 전 전남지사 정무특보와 우기종 전 전남부지사, 지용호 전 국무총리실 정무실장 등은 끝내 낙천됐다. 다만 이 당선자가 총선 과정에서 현역 의원을 비롯해 고민정 이탄희 당선자 등 40여 명의 후원회장을 맡은 만큼, 향후 당내 역학 관계에 따라 새로운 NY계가 결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 당선자의 약한 당내 위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창당 과정에서도 철저히 배제됐다. 친노(친노무현) 좌장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 복심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위성정당 창당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자, 당 안팎에선 ‘이낙연 거수기’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이 당선자는 이와 관련해 “관여할 위치가 아니었다”고 했지만, ‘이낙연 패싱’을 일삼는 당 주류와의 간극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NY계 매파(강경파)들이 단독 드리블을 외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총선 대승 파죽지세를 발판 삼아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당내 지지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NY계의 당권 플랜은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일부 측근들은 지난해부터 내·외곽에서 이 당선자의 당권 플랜에 군불을 땠다.
NY계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 팽팽했지만, 최근에는 전대 출마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도 “전대에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 당선자도) 도전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외곽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DJ) 가신그룹인 동교동계가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이낙연 대세론’ 작업을 진행했다. 정대철·권노갑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김부겸 의원. 사진=이종현 기자
이들은 4월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힘을 보탤 때”라며 민주당 복당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선 즉각 “논의된 바 없다”며 선 긋기에 나섰다. 특히 동교동계는 이해찬 대표 측과 상의 없이 복당 기자회견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일각에선 ‘이해찬 vs 이낙연’ 갈등의 도화선이 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제기됐다.
민주당은 4월 4일 ‘무소속 후보 복당을 불허한다’는 논평을 냈다. 당 내부에선 옛 국민의당 인사들을 겨냥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20대 총선 때 국민의당 간판으로 배지를 단 김경진·이용주 의원 등은 무소속 당선 뒤 민주당 입당 의사를 밝혔다. 권노갑·정대철 전 의원 등도 당시 친문계와 결별하고 안철수 전 대표 지지를 선언했다. NY계에 대한 당 주류의 경계심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이 당선자의 ‘단독 출마냐, 전략적 연대냐’에 따라 민주당 8월 전당대회 구도도 출렁일 전망이다. 관전 포인트는 당 주류와 비주류의 미묘한 기류 차이다. 친문계에선 이 당선자의 순차 출마에 베팅을 거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반면 비문계 내부에선 전략적 연대설이 끊이지 않는다. 당권 도전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낙마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눈여겨볼 대목은 ‘총선 전후의 플랜B 변화’다. 애초 총선 전 플랜B는 김부겸 의원과의 전략적 연대에 그쳤다. 하지만 김 의원이 낙선하자, 친문계와의 전략적 연대설로 확장됐다. 친문을 잡아야 당내 구심점을 확보할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와 함께 ‘김부겸 낙선’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로 작용해서다. 비주류 한 관계자는 총선 전 이 당선자의 당권 도전과 관련해 “당 내부에는 김 의원을 지원하고 대선으로 직행해야 한다는 기류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의원 향후 스탠스는 이 당선자의 포스트 문재인 플랜의 방향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낙선한 김 의원 행보는 크게 ‘당권 패싱’, ‘당권 도전’으로 나뉜다. 대구 수성갑에 재도전한 김 의원은 39.3% 득표율에 그치면서 주호영(59.8%)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대패했다. ‘리틀 노무현’의 꿈이 지역주의 벽에 부딪힌 셈이다.
김 의원의 포스트 플랜인 ‘국회의원 5선→민주당 당 대표→대권 도전’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낙선의 반사작용으로 차기 당권 플랜을 강하게 띄울 수도 있다. 이 경우 당권·대권 분리 규정으로 ‘7개월짜리 당수’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 당선자가 김 의원을 물밑 지원한다는 게 ‘이낙연·김부겸’ 전략적 연대설의 핵심이다.
문제는 교통정리다. 이들의 전략적 연대설의 전제조건은 ‘당권 김부겸·대권 이낙연’의 역할 분담이다. 전략적 연대를 고리로 ‘이면계약’을 하든 ‘암묵적 합의’를 하든 어떤 식으로든 주고받기식의 거래는 불가피하다. ‘당권 김부겸·대권 이낙연’ 플랜이 가동되면, 김 의원의 대전 도전은 차차기로 미뤄진다. ‘이낙연·김부겸’의 전략적 연대설을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총선 후 친문계와의 전략적 연대설이 급부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차기 당권 주자인 당 주류 인사는 친노(친노무현)계 이광재(강원 원주갑) 당선자와 4선 고지에 오른 친문계 홍영표(인천 부평을), 우원식(서울 노원을), 낙선한 최재성(서울 송파을) 의원 등이 꼽힌다. 이 중 홍영표·우원식 의원 등은 총선 기간에도 같은 당 후보의 지원 유세를 통해 사실상 전당대회 작업을 위한 세몰이를 했다. 이 당선자가 친문계와 손을 잡을 경우 세력과 대중성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실익 면에선 최상의 시나리오로 꼽힌다.
그러나 딜레마도 있다. 전략적 연대에 나선 ‘이낙연·친문계’의 지속 가능성이다. 그간 정치권 안팎에선 이 당선자의 대세론이 거세질수록 “이낙연은 친문계의 페이스메이커” 등의 말이 흘러나왔다. 통합당 한 당직자는 “이낙연이 여권 잠룡이라면, 측근들이 줄줄이 낙천됐겠느냐”라며 “어차피 팽 당할 운명”이라고 말했다. 차기 대선 직전 친문계가 ‘이낙연 고사 작전’에 나설 것이란 시나리오도 이 지점과 맞닿아있다.
여당 차기 당권에는 이 당선자와 친문계 이외에도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송영길(인천 계양을) 의원 등이 유력한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송 의원은 이번 총선을 통해 5선 고지에 올랐다. 다만 86그룹의 핵심인 이인영(구로갑)·우상호(서대문갑) 의원 등과의 교통정리 문제는 남았다. 이 당선자가 플랜A를 택하면 ‘이낙연 vs 친문계 vs 86그룹’ 구도가, 플랜B로 선회하면 ‘이낙연·친문계 연대 후보 vs 86그룹’ 구도가 펼쳐질 전망이다. 그야말로 이낙연의 시간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