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시즌 KBO 리그 개막 로드맵의 윤곽이 나왔다. KBO는 지난 7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10개 구단 단장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긴급실행위원회를 열고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향후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그 결과 한 차례 미뤄졌던 팀간 교류 연습경기를 4월 21일부터 시작하고 5월 초 시즌을 개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올스타브레이크를 없애는 대신, 팀당 144경기를 모두 소화하겠다는 복안도 있다.
때마침 5월은 주말 3연전의 첫날인 금요일부터 1일이 시작된다. 사회적 분위기가 빠르게 좋아진다면, 5월 시작과 함께 프로야구가 개막한다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 14일 서울 양재동 캠코타워에서 개최된 긴급이사회에서도 5월 1일을 유력한 개막일로 내정했다. 다만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기간이 끝나는 19일 이후 방침을 지켜보기 위해 21일 재차 이사회를 열고 개막일을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지난 14일 KBO는 긴급이사회를 열고 개막 등 주요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 사진=연합뉴스
#‘5월 1일 개막, 144경기 소화’가 베스트 시나리오
KBO는 3월 31일 긴급실행위원회에서 정규시즌 개막을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늦추기로 결의했다. 3월 28일이었던 개막일을 4월 중순으로 미룬 뒤 다시 4월 20일 이후까지 늦춘 데 이은 세 번째 개막 연기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고 4월 6일로 예정됐던 전국 초·중·고교 개학까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자 KBO도 사회적 흐름에 발을 맞춰야 했다.
일주일 뒤 열린 실행위원회에서는 4월 내 개막안을 아예 지웠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방침을 2주 연장한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개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대신 점점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점을 고려해 5월 초 개막은 강행하는 데 뜻을 모았다. 팀당 144경기를 치르고 11월 안에 포스트시즌을 마치려면, 5월 초 개막이 필수적이라서다.
가장 중요한 준비 단계가 다른 구단과 연습경기다. 모든 팀은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귀국한 뒤 한 달가량 상대적으로 긴장감이 떨어지는 자체 청백전으로 실전 감각을 유지해왔다. 4월 21일부터 다른 팀과 평가전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시범경기가 취소됐고, 지역이 가까운 일부 구단과 대결만 가능하지만, 사실상 ‘훈련’이나 다름없는 동료들과 약식 경기보다 훨씬 경기 감각을 끌어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연습경기는 당일 이동을 원칙으로 하고, 팀당 4경기씩 총 20경기를 관중 없이 치를 예정이다. 당초 20게임 모두 오후 2시 시작하는 낮경기로 계획했지만, 각 팀에 일정을 통보한 뒤 ‘야간 연습경기(오후 6시 시작)로 치르기를 원하는 팀은 KBO에 이메일로 따로 요청해달라’고 알리자 많은 구단이 변경 의사를 전해왔다. 그 결과 연습경기 첫날인 21일 창원 NC-롯데전과 22일 수원 KT-LG전, 23일 부산 롯데-삼성전과 24일 부산 롯데-NC전을 포함해 전체 경기의 절반인 10경기가 야간경기로 바뀌었다.
특히 연습경기 마지막 이틀인 25일 토요일과 27일 월요일에는 총 3경기씩 야간에 치른다. 많은 구단이 개막에 앞서 정규시즌 야간경기(오후 6시 30분 시작) 적응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라서다. 이미 롯데, KT, 한화, 삼성 등은 자체 청백전을 야간경기로 치르면서 하루의 사이클을 야간경기에 맞추기 시작했다.
4월 21일 이사회에서 정규시즌 개막일이 확정되면, 개막 사흘 전까지는 모든 연습경기를 종료할 계획이다. 5월 1일 개막 가능성을 고려해 일단 4월 27일까지로 연습경기 스케줄을 짰다. 예상 개막 시점인 5월 1일보다 정규시즌 개막일이 미뤄지면 연습경기 일정을 추가 편성해 실전 공백을 메운다는 계산이다.
예정대로 5월 1일 개막을 하면, 팀당 144경기를 위해 더블헤더와 월요일 경기를 고루 편성할 계획이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리는 경기가 취소되면 다음 날 더블헤더를 진행하고, 일요일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 월요일로 밀리는 방식이다. 다만 5월 초에 개막해도 한동안 관중석은 텅 빈 채 선수들만 그라운드에서 뛴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코로나19를 둘러싼 상황이 급격하게 좋아지지 않는 한, 개막전은 무관중으로 치를 가능성이 크다”며 “처음에는 무관중으로 시작하고 10%씩 점차 관중 비율을 늘려가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구단 청백전에 나선 심판들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스트시즌 중립경기를 위한 고척스카이돔 11월 대관도 완료됐다. 국내에 단 하나뿐인 돔구장이 ‘11월 가을야구’의 구세주가 된 셈이다. 혹여 시즌 개막이 다시 연기되거나 시즌 도중에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포스트시즌 일정에 차질이 생길 우려는 없어졌다.
KBO는 정규시즌 개막이 연기된 직후부터 한국시리즈가 11월 말까지 진행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11월 30일까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용도’로 고척돔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 서울시설공단과 협의해왔다.
11월 10일 이후 실외 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면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커지고, 12월 1일부터는 공식 비활동기간으로 분류되는 터라 11월 말일까지는 모든 일정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을 해서다.
고척돔은 비시즌마다 대형 가수들의 콘서트장으로 종종 활용되기 때문에 일찌감치 허가를 받아두지 않으면 11월 장소 대관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개막 일정이 정해지기도 전에 장소 섭외부터 시작한 이유다.
수도권 A 구단 고위 관계자는 “실행위원회가 11월 포스트시즌 개최지를 검토한 결과, 추위나 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장소가 고척돔밖에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며 “일단 10월 안에 리그를 끝내는 게 목표지만, 선수단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리그가 2주 이상 중단될 가능성을 대비해 KBO가 고척돔 추가 대관을 추진했다”고 했다.
역대 가장 늦은 시기까지 포스트시즌이 이어진 해는 2018년이다.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가 그해 11월 12일 6차전을 끝으로 종료됐다. KBO 리그가 팀당 144경기 체제로 확대된 뒤 처음으로 시즌 도중 리그가 중단(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출전)된 시기였다.
이 점을 고려해 KBO는 고척돔 중립경기의 기준점을 11월 15일로 잡았다. ‘한 시리즈의 경기일 혹은 경기일 사이 이동일에 11월 15일이 포함될 경우, 시리즈 전체를 고척돔 중립경기로 치른다’는 게 골자다. 만약 5월 초 개막한 뒤 리그가 2주 넘게 중단돼 일정이 밀린다면,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가 모두 고척돔 한 곳에서만 열릴 수도 있다. 또 향후 개막 연기 혹은 리그 중단으로 경기 수를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국시리즈 7차전을 11월 30일로 못 박고 앞선 일정을 시뮬레이션 해 전체 일정과 경기 수를 결정한다.
물론 결정 과정에서 작은 우려가 하나 있었다. 고척돔을 홈구장으로 쓰는 키움 히어로즈가 플레이오프 혹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면, 가장 중요한 시리즈의 전 경기를 홈에서 치르는 혜택을 얻는다. 키움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단 한 시즌(2017년)을 제외하고 모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지난 시즌 준우승을 했고, 올해 역시 우승 후보 가운데 한 팀으로 꼽힌다. 자칫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그러나 지방 B 구단 고위 관계자는 “한국에 돔구장이 하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며 “실외 홈구장에서 경기를 강행하는 것보다 원정 돔구장에서 경기하는 게 선수들에게도 더 낫다. 올해 같은 특수 상황에서 굳이 그 정도로 문제를 삼을 구단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단 그 경우 KBO는 상대 팀도 키움처럼 시리즈 내내 최대한 동일한 환경에서 경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경기 중 홈팀과 원정팀의 변동과 무관하게 키움이 시리즈 내내 1루 쪽 더그아웃과 라커룸을 사용하고, 상대 팀 역시 더그아웃 변동 없이 익숙한 3루 쪽에 계속 머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키움이 플레이오프 전에 탈락해 원정 두 팀이 고척돔에서 맞붙을 경우 추후 상세한 내용을 협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B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키움 선수들이 쓰던 홈 더그아웃 및 라커룸 사용, 홈과 원정 관련 경기 운영 방식, 현장 광고와 관련한 문제 등에 대해 KBO와 양 구단이 세부적인 내용을 조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기장에서 침 뱉으면 안 돼!” 코로나19 상시 대응 매뉴얼
그동안 KBO와 10개 구단들의 코로나19 관련 대응은 이미 다른 나라 리그로부터 ‘모범 사례’로 극찬을 받아왔다. 한 구단에서만 선수 3명이 무더기로 확진 판정을 받아 일대 혼란을 낳기도 했던 일본 프로야구와 달리, KBO리그에선 아직 단 한 명의 확진 선수도 나오지 않았다. ‘2020시즌 완주’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구단이 아주 작은 위험 하나도 제거해가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2군 선수 한 명이 체온 검사에서 발열 증세만 보여도 코로나19 진단 검사 결과와 관계없이 야구장 전체를 폐쇄하고 방역 작업을 할 정도다.
KBO가 지난 3월 중순 배포한 ‘코로나19 관련 통합 매뉴얼’ 역시 전 구단이 철저히 지키고 있다. 예방의학 전문가를 포함한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가 정부 기관 지침을 기본으로 각 분야별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직접 수립한 매뉴얼이다. 코로나19에 대한 기본 정보와 예방수칙, 유증상 및 확진 환자 발생 시 대응 지침, 야구장 취재 가이드라인, 야구 종목의 특성과 장소 등을 고려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기본 지침 등이 세부적으로 담겨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KBO는 다가오는 개막과 4월 21일 시작되는 팀간 연습경기에 앞서 이 내용들을 업데이트한 ‘통합 매뉴얼 2판’을 17일 각 구단에 배포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야구장에서 직·간접적 접촉과 교류를 하게 되는 만큼, ‘선수단 및 리그 관계자, 야구팬의 건강을 최우선 원칙으로 고려하고, 정부기관의 지침을 준수해 감염병 예방 및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기본 방침을 더 철저히 강조하기 위해서다.
선수단과 관계자들에게 전달한 상세한 예방수칙은 이렇다. △손씻기, 기침 예절, 마스크 사용법 등 감염병 국민 예방수칙 준수 △경기장, 숙소, 라커룸, 버스 등 공동 이용 공간 출입 시 체온 검사 및 손 소독제 사용 △타인과 근접한 접촉 자제(사회적 거리두기) △대면 최소화 식사 방식 권장(일렬, 지그재그, 조별 식사 등) 및 선수단·관계자 회식 자제 △선수 간 라커룸, 샤워실, 벤치 등에서 안전거리(2m) 간격 유지하여 근접한 접촉 방지 △경기·훈련 시간 외 마스크 반드시 착용 △선수단과 프런트, 심판위원과 기록위원을 비롯한 야구 관계자 공간과 동선을 분리해 최대한 접촉 자제 △선수 숙소는 일 1회 이상 소독 △프런트 직원은 근무 시 마스크 반드시 착용 △구장 방문자는 입장 시 체온 검사 및 손 소독제 사용 △각 구장 방문 일지 관리 등이다.
야구장에서 일하는 직종별 추가 예방 지침도 나왔다.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훈련 보조요원은 △매일 기상 직후 1회, 경기장 출발 직전 1회(원정팀은 버스 탑승 직전) 발열 검사를 하고 △그라운드와 더그아웃을 제외한 모든 구역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게 된다. 라커룸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더그아웃과 라커룸, 불펜, 식당 등에 손 소독제를 상시 배치해 수시 사용을 권장할 예정이다.
이뿐만 아니다. △경기 중 맨손으로 하는 하이파이브와 악수를 자제하고 △경기 중 침을 뱉어서도 안 되며 △수건과 샤워용품을 비롯한 공용물품 사용도 자제해야 한다. 심판위원 역시 경기 중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판정을 맡는다. 트레이너와 구단 버스 기사, 선수단과 동행하는 프런트 직원들 역시 항상 마스크를 써야 하고, 선수단과 접촉해야 하는 상황에선 라텍스나 니트릴 소재 위생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생겼다. 구단 내 다른 프런트와 직접 접촉도 자제해야 한다.
볼보이와 볼걸, 배트보이와 배트걸, 비디오 판독요원 같은 그라운드 내 인력도 경기 중 마스크와 위생장갑을 필수 착용하고, 특히 경기 사용구와 비디오 판독 헤드셋과 같은 경기 운영 물품은 타인이 접촉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지침이 떨어졌다. 야구장 시설 관리요원, 그라운드 키퍼, 경호·미화·케이터링을 비롯한 구장 내 기타 관계자들 역시 경기장 방문 일지를 필수 작성하고 선수단과 완전히 분리된 동선으로 움직이게 된다.
혹여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이는 선수가 나오면 연습경기 시작 전과 후에 따라 다른 방침을 적용한다. 연습경기 전에는 유증상자 A와 2차 접촉을 한 선수단과 직원 모두 A의 진단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예방 차원에서 자택 대기하는 게 원칙이다. 음성 판정시에는 자가 격리를 해제하고 정상 활동을 재개할 수 있지만, 양성 판정이 나오면 A가 방문했던 시설을 최소 2일간 폐쇄하고 접촉자 모두 14일간 자가 격리한다.
반면 연습경기 시작 후 유증상자 B가 발생하면 일단 B만 격리해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게 되고, 검사 결과 확진 판정이 나오면 정부에서 파견된 역학 조사관의 판단에 따라 접촉자를 분류하고 이들에 한해 14일간 자가 격리 조처를 한다. 해당 야구장 역시 최소 2일간 폐쇄된다. 만약 비디오 판독센터 운영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아 판독실이 폐쇄될 땐 방송사 화면으로만 현장 판독을 하거나, KBO 경기운영위원과 심판팀장, 대기심이 심판실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향후 관중 입장이 가능해지더라도 야구팬들 역시 일정 기간 야구 관람 문화의 변화는 감수해야 할 듯하다. 일단 마스크 미착용자 및 발열 증상자는 입장이 불가하고, 입장 게이트에 많은 인파가 한 번에 몰리지 않도록 현장 진행요원이 조치한다. 확진자 발생 시 주변에 앉았던 다른 관중을 특정할 수 있도록 경기 입장권 보관 역시 권고할 계획이다.
또 크게 노래를 부르거나 어깨동무를 하는 응원법은 비말 감염과 접촉 감염의 위험을 고려해 자제 요청할 계획이고, 컵에 캔맥주를 직접 따라 마시는 즐거움도 한동안은 누릴 수 없다. ‘야구의 봄’은 코앞까지 왔지만, 아직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할 시기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