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서울 강남갑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태구민(태영호) 후보가 강남구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돼 소감을 말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래통합당의 태구민(태영호) 당선자는 북한에서 평양국제관계대학을 나와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외무성 유럽국 부국장 등을 지내며 북한대사관 내 서열 2위까지 올랐던 ‘북한 엘리트’ 출신이다. 2016년 한국으로 귀순해 4년 만에 탈북민 출신 최초로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당초 태구민 당선자의 강남갑 공천을 두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국가적 망신”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통합당이 서울에서 전멸에 가까운 결과를 얻었지만 태 당선자는 ‘보수의 텃밭’ 강남갑에서 58.4% 득표율로 승리했다. 태 당선자는 당선이 확실시 되자 강남구 선거사무실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대한민국은 나의 조국이고, 강남은 나의 고향”이라며 “분단 70여 년 동안 한 번도 북한 출신 의원이 지역구에서 선출된 적 없는데, 나는 이것이 남북 간 주민들 사이에 화해와 화합, 통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산 해운대을에서 당선된 통합당 김미애 당선자는 ‘여공 출신 싱글맘 변호사’라는 이색 타이틀로 관심을 모았다. 어부와 해녀의 딸로 태어난 김미애 당선자는 14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고등학교 1학년인 17세에 학업을 중단, 해운대구 반여동의 한 방직공장에서 여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현재 선거사무실 위치가 바로 그 공장 인근으로 알려졌다.
4·15 총선 부산 해운대을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김미애 당선인이 부산 수영구 미래통합당 부산시당사에서 개표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당선자는 “17세 여공이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건 기회의 평등과 공정 경쟁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3년 동안 공정의 가치는 사라졌다”며 “사회적 약자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을 대변해 온 김미애가 공정의 가치를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고졸 신화’로 유명한 민주당 양향자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최다선을 노리는 6선의 천정배 민생당 후보를 꺾으며 ‘다윗과 골리앗’ 신화를 다시 썼다.
양향자 후보는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으로 입사, 유리천장을 뚫고 2014년 상무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출신 여성 임원이었다. 이를 인정받아 2016년 1월 민주당 ‘문재인 키즈’로 영입돼 정계에 입문했다. 같은 해 4월 20대 총선에서 천 후보에 고배를 마셨지만, 이후 민주당 여성 최고위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등을 거치며 정치적 보폭을 넓혀왔다. 이러한 입지를 통해 양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75.8%의 득표율을 보이며 19.5%의 천 후보를 압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에서 문상모 민주당 후보를 여유롭게 제치고 승리한 통합당의 서일준 당선자는 말단 공무원에서 국회 입성까지 신화를 썼다. 서일준 당선자는 1987년 거제군청(현 거제시청)에서 9급 공무원으로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7급 공무원이던 1995년 서울시청으로 전출돼 ‘9급 출신 촌놈’이라고 무시도 당했지만, 서울시와 서초구청에서 시정참여 마일리지 제도, CCTV통합관제센터 등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의 성과를 내 인정받았다.
이를 통해 서 당선자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근무를 시작, 총무비서관실 총무인사팀장(3급)을 마지막으로 2013년 거제시 부시장으로 다시 거제로 돌아간다. 이후 경남도 안전건설국장, 문화관광체육국장을 거쳐,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거제시장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다시 선출직에 도전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경기 의정부갑에서 당선된 민주당 오영환 당선자도 소방복을 벗고 금배지를 달게 됐다. 그는 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특수구조대에서 일한 소방관 출신으로, 약 10년간 2000번 넘게 출동한 경력이 있다.
당초 오 당선자가 의정부갑에 전략공천될 때만 해도 당선 가능성에 의구심이 짙었다. 통합당 후보뿐 아니라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 씨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3파전 양상을 띠었기 때문. 하지만 개표 결과 53%의 득표율로 두 후보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이로써 오 당선자는 32세의 나이로 이번 총선 지역구 최연소 의원 기록을 세웠다.
4·15 총선 경기 광명갑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당선인. 사진=박은숙 기자
스포츠계에서도 처음 국회에 발을 들이는 당선자를 배출했다. 한국 여자핸드볼 감동 실화를 다룬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주인공인 임오경 전 서울시청 감독이 이번 총선에서 ‘우생순’을 다시 한번 연출했다. 민주당 경기 광명갑 후보로 출마해 47.6%의 득표율로 당선된 것.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사례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문대성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 이후 처음이다.
임오경 당선자는 한국 여자핸드볼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고교 2학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은메달을 이끌었다. 결혼과 출산으로 대표팀을 떠났다가 8년 만에 돌아온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유럽의 텃세와 불리한 판정을 극복하고 은메달을 목에 걸어 감동 스토리를 썼다. 선수와 지도자로서 일본무대를 평정한 임 당선자는 2008년 여성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실업팀 서울시청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임 당선자는 “그간 제가 흘린 땀방울이 정직하게 금메달로 드러났듯 국회와 광명에서도 제가 흘린 땀방울을 통해 광명 발전의 성과로 가져오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민주당에는 실업팀 농구선수 출신으로 4선에 성공한 김영주 의원도 있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18번으로 당선된 이용 당선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윤성빈의 금메달을 이끌어내며 또 하나의 ‘비인기종목 신화’를 낳았다.
같은 임기에 ‘한 집안 두 배지’가 나온 사례도 생겼다. 부산진갑의 통합당 서병수 전 부산시장과 울산 울주 서범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이다. 과거 부자나 형제 등 혈연지간에 지역구를 물려받는 사례는 있어도 형제가 나란히 국회에 입성한 것은 처음이다.
형인 서병수 당선자는 16~19대까지 4선 국회의원 및 부산시장까지 두루 지낸 비교적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정치인이다. 반면 형보다 11살 아래 동생인 서범수 당선자는 경찰 출신으로 정치는 이번 총선이 처음이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경찰에 몸담은 특이한 이력으로 경찰청 교통국장, 울산지방경찰청장, 경찰대 학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14번으로 나와 당선됐다. 이로써 김 전 대통령과 세 아들 김홍일·홍업 전 의원에 이어 김홍걸 상임의장까지 ‘국회의원 4부자’라는 기록이 세워지게 됐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