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비밀정원’을 연출한 김인식감독.
[일요신문=광주] 정종인 기자= 일요신문 호남본부는 각계각층의 영역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호남인을 만나 그들의 삶과 의식을 조명하고자 호남인을 기획하고 이를 보도 한다.
이번 호에서는 5·18 죄책감에 시작한 영화‘그녀의 비밀정원’을 연출한 김인식 감독을 만났다. 김인식 감독은 독보적인 미장센과 연출력이 돋보이는 관록의 감독으로 이번 영화에서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드는 연기파 배우 예지원과 함께 지금껏 보지 못했던 수채화 같은 영화를 완성해 화제가 되고 있다.
김인식 감독은 2002년 ‘로드 무비’로 제23회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영화계에 등장해 실험적인 작품을 연출하면서 국·내외 명성을 쌓아다. 오는 22일 개봉을 앞둔 ‘그녀의 비밀정원’은 ‘팔색조 미인’ 예지원의 또 다른 모습과 메가폰을 잡은 김인식 감독의 큰 날개짓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의미를 더한다.
광주가 고향으로 전주고와 전남대를 졸업한 김 감독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현대사의 큰 아픔을 겪은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통해 은유적인 가치를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영화제작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톱스타 김혜수가 열연한 ‘얼굴 없는 미녀’로도 유명한 김 감독을 CGV정읍점에서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랑과 욕망에 대한 과감한 주제와 아름다운 미장센을 통해 독보적인 연출 스타일을 구축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15년 ‘세상 끝의 사랑’으로 돌아온 김인식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심리를 파고드는 밀도 있는 연출과 강렬한 색감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되며 ‘동학농민혁명’과 ‘촛불혁명’을 배경으로 한 다음 작품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집중된다.
‘그녀의 비밀정원’을 통해 독특한 존재감을 이어가는 김 감독은 “영화는 재미있어야 하고 그것은 명백한 진리다”며 “이번 작품 역시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소재로 신선한 충격을 안길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비밀정원’은 두 형제와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의 단순한 치정극이 아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감정의 움직임과 전개가 펼쳐질수록 드러나는 깊은 비밀을 탁월하게 담아냈다. 단순한 것 같지만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게 영화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그녀의 비밀정원’은 놀랍게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게 김 감독의 고백이다.
김 감독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살아오면서 늘 죄책감이 맴돌았다. 그 끔찍한 상황에서 방관했던 자, 투쟁했던 자, 도망갔던 자 등 세 부류의 사람이 화해해 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그러나 영화를 찍어가면서 그는 무척 당황했다. 영화의 초심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는 이 영화를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결과물은 형제를 사랑하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았을 때 김 감독은 보이지 않는 이끌림과 ‘숙명’을 느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광주 5.18 기념탑이 나오는데, 그가 이 영화의 시작이었던 그 존재를 작품의 끝에 숨겨두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김 감독의 작품세계는 ‘마치 책장을 넘길수록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강한 몰입을 선사하는 이야기’처럼 모든 작품이 매혹적인 전개를 통해 관객을 집중시키는 능력을 보여준다.
김 감독은 코로나 여파로 인해 무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개봉하지만 ‘한권의 책을 읽고 화첩을 보는 듯한 영화’이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녀의 비밀정원’의 탄탄한 스토리는 물론 특유의 미장센으로 가득하다.
그가 직접 영화 촬영지인 광주와 전북 정읍의 예술가들을 마주하며 작품을 채워나갔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시각적인 요소는 그의 세밀한 의도가 녹아있으며 하나하나 강한 존재감을 보이면서도 작품에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만들어낸다.
그 누구도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오직 김 감독이 가진 탁월한 능력이다. 정해진 규칙보다는 즉흥 연주를 하듯이 임하는 감독의 연출 스타일 역시 완성된 작품에도 빛을 발하며 다른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롭고도 낯선 감상을 전한다.
김 감독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황정민 주연의 ‘로드 무비’(2002)로 장편 영화 데뷔전을 가졌다. ‘로드무비’는 배우 황정민을 스타덤에 오르게 한 걸작이었다.
당시 파격적인 소재를 진중한 화법과 세련된 영상미를 선보여 제23회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 수상과 각본상 후보, 제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 수상 등 각종 영화제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이와 함께 그는 김혜수 주연의 ‘얼굴 없는 미녀’(2004)를 통해 최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소유하려는 한 남자의 지독한 집착을 정교하고 매혹적으로 그려내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22회 토리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뿐만 아니라 평가단과 관객의 열광적인 극찬을 이끌어내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사로잡았다. 이후 ‘세상 끝의 사랑’(2015)에서는 세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감성적인 스타일과 강렬한 색감으로 그려내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편, ‘그녀의 비밀정원’은 제18회 피렌체한국영화제에 공식 초청될 예정이며 개봉을 앞두고 다양한 매체들로부터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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