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 혼자서 수영장 풀에 가는 건 안돼요!!!!!!! 수많은 남자들이 가만두지 않아요!!!! 그치만 걱정은 안 해요. 무슨 일 있으면 후려갈겨서 끝장내!!!!”
해당 계정은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관련한 정보를 소개하고 참여한 사람들의 트윗글을 리트윗하는 활동 등을 하는데, 종종 앞서와 같이 캐릭터나 작품 관계자에게 말을 거는 콘셉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해당 글은 작중 남주인공 코난(본명 쿠도 신이치, 한국명 남도일)의 상대역인 여주인공 모리 란(한국명 유미란)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글월의 마지막 문장은 란이 가라테의 고수로 극 중에서 웬만한 악역은 말 그대로 박살내는 강한 면모를 지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한데 이 글이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부터 댓글들이 심상찮게 달리기 시작했다. “공식 계정이 선을 넘었다”로 함축되는 반응들은 급기야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코난_공식_사과해’라는 해시태그가 오르는 상황으로 연결됐다. 12시간도 채 안 된 시점에 해당 해시태그로 엮인 트윗 글만 1만 5000개를 넘겼고, ‘#명탐정코난_공식_사과해’로 바뀐 해시태그에도 1만 3000개를 넘는 글이 엮였다. 이번 일이 특이한 건, 문제제기부터 사과를 요구하는 해시태그에 이르는 반응들 대부분이 해당 작품의 원산지(?)인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명탐정 코난’ 공식 계정이 문제가 된 까닭
‘명탐정 코난’은 1994년 첫선을 보인 이래 2020년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연재되고 있는 그야말로 초장기 인기 연재작이다. 고교생 탐정 남도일이 ‘검은 조직’의 약물로 말미암아 만 일곱 살짜리 어린애의 모습으로 변하는 바람에 본래의 정체를 숨기고 소꿉친구의 집에 얹혀살며 검은 조직의 정체를 쫓는 이야기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20~30대 치고 ‘명탐정 코난’을 안 거친 사람을 찾기는 드물다. 추리 장르로서의 묘미는 물론 매력적인 인물 관계, ‘검은 조직’의 정체로 접근해 들어가는 과정의 쫄깃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한 작품이어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팬층이 매우 두터운 편이다. 이런 작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다루는 ‘공식’ 트위터 계정의 내용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공식 트위터 캡처.
사람들이 문제 삼는 내용은 공식 계정의 화자가 작중 여고생인 란 혼자 수영장에 가면 안 된다면서 그 이유를 “수많은 남자들이 가만두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문제 제기자들은 해당 발언이 ‘여자 혼자서 수영장에 간다=여자를 꼬셔 보거나 그 이상의 행위를 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그 여자에게 뭐든 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당연하다는 듯 깔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성희롱, 성차별적이라고 말한다.
지적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하다. 비록 란이 작중 맨몸 무력 순위를 재자면 가히 최상위권에 속할 인물(?)이기는 하나, 설령 대상이 누가 됐든 여성이 혼자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에 가는 게 남성들에게 멋대로 뭔가를 꾀할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보면 명색이 작품의 공식 계정이 캐릭터를 상대로 한 발화로는 부적절하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이번 발화의 대상인 란은 성인도 아닌 여고생 캐릭터다. 작품 바깥에 자리한 운영자라는 실재하는 화자가 남녀 구도에 얽힌 인식선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냈는데 그게 성인 여성에게라도 입 밖에 내선 곤란한 발언이었던 셈이다.
#불편함을 불편해 하지 않기 위해
아이돌 팬들 사이의 공방에서 주로 쓰이던 ‘#○○_사과해’ 해시태그가 만화와 애니메이션 쪽에 등장한 건 그만큼 ‘명탐정 코난’이 다양한 연령대와 분야를 뛰어넘는 넓은 독자·관객층의 어린 시절과 청춘기를 장식한 작품이기 때문일 터다. 한데 이 ‘#코난_공식_사과해’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졸지에 트위터에서는 한일 양국 간, 나아가 성별 간 공방전이 거세게 일어났다.
‘명탐정 코난-비색의 탄환’ 시리즈는 24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코로나19로 인해 개봉 연기됐다.
가볍게는 “저게 뭐가 문제냐”부터 시작해 “불만이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안 보면 되는 것 아니냐” 같은 반응도 있고, 심지어 최근 한국에서 불거진 n번방 사건을 들어 “너희도 n번방 있잖느냐” “한국인들에겐 남자들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게 곧 강간인 것이냐”로 받아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극소수이며, 공식 계정은 이와 관련해 별다른 반응을 더 내놓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문제를 제기한 여성 팬들에게 “나라 망신시키지 마라” “만화일 뿐이지 않느냐”라며 되레 윽박지르는 꼴을 보이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여자 혼자서 수영장에 가는 건 수많은 남자들이 가만히 안 둘 거라서 안 된다는 이 짧디짧은 문장을 한국 여성팬들이 즉각적으로 성희롱, 성차별로 받아들이고 불편함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어서 함께 목소리를 내기 위한 해시태그를 설정함으로써 본인의 추억을 더 훼손하지 않고 싶어 했다.
“대체 뭐가 문제냐”라는 윽박지름이 곧바로 돌아왔지만, 이는 2020년을 살아가는 한국 여성들에게는 “문제다”라 말할 사안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지극히 느리지만 한국 사회 또한 이에 조응해 가는 중이다.
이번 일은 트윗 한 줄로 불거진 촌극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요 몇 년 사이 한국 사회가 일부의 반발과 퇴행에도 불구하고 일본과는 달리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명탐정 코난’이 워낙 오랜 시간 한국에서도 사랑받아 온 작품이기에 이런 짧은 글월에도 격렬한 반응이 나온 셈이지만,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앞으로도 비실사 시각 문화 속에서 비슷한 사례가 보일 때면 맹렬하게 불편해 할 것이다. ‘명탐정 코난’ 애니메이션판이 어떻든, 또 일본이 어떻든 적어도 우리는 이 불편함 앞에서 결정해야 한다. 무엇이 왜 불편한지를 직시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불편해 하는 모습을 불편해 하고 지금까지처럼 가만히 있을 것인지.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