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Z는 자국 연안에서 200해리(약 370.4km)까지 수역을 뜻한다. 국제협약에 따라 각국은 EEZ 내에 있는 수산자원 및 광물자원에 대해 독점적인 권리를 가진다. EEZ가 겹치는 경우 협의를 통해 경계를 획정하거나 공동으로 권리를 가지지만 센카쿠 열도처럼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사조산업이 마샬제도공화국의 배타적경제수역을 침범한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 서대문구 사조산업 본사. 사진=고성준 기자
뉴질랜드 공영 라디오 방송국 RNZ(Radio New Zealand)에 따르면 지난 2월 마샬제도 해양자원청은 사조산업의 원양어선 ‘오룡721호’가 마샬제도의 EEZ에서 5차례에 걸쳐 불법 조업한 혐의로 사조산업을 기소했다. 향후 현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 사조산업은 10만~100만 달러(약 1억 2190만~12억 1900만 원)의 벌금을 마샬제도 측에 내야 한다.
뷰 비글러 마샬제도 해양자원청 법률관은 RNZ를 통해 “오룡721호가 마샬제도 EEZ에서 이동 중일 때는 그 경로가 VMS(어선 모니터링 시스템·Vessel Monitoring System)에 직선으로 나타나야만 한다”며 “경로가 직선으로 나타나지 않았고, 이는 선박이 조업을 했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사조산업은 나우루협정당사국(PNA)이 협의한 기준에 따르면 EEZ 내에서 조업을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PNA는 마샬제도를 포함해 나우루, 마이크로네시아, 솔로몬, 투발루, 키리바시, 파푸아뉴기니, 팔라우, 8개국이 EEZ와 관련해 1982년 체결한 협정이다. 반면 마샬제도 해양자원청은 국제연합(UN)이 지정한 선을 기준으로 삼아 오룡721호가 EEZ를 침범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조산업 관계자는 “참치 원양어선에는 횟감 참치를 잡는 독항선과 참치캔용 참치를 잡는 선망선이 있는데 (마샬제도 해양자원청이) 선망선에 대해서는 PNA를 기준으로 삼고 독항선인 오룡721호에 대해서는 유엔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같은 사조산업의 선박인데도 선망선은 PNA 기준, 독항선은 유엔을 기준으로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사조산업 측은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마샬제도 현지 재판에 관여하기는 어렵다. 해양수산부(해수부) 관계자는 “오룡721호가 EEZ에서 조업을 했는지는 우리 자체 법률로 검토할 수 있지만 유엔에 등록된 선을 부정하는 건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우리가 마샬제도 측에 뭐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마샬제도가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정부도 그에 따른 행동을 사조산업에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원양산업발전법에 따르면 해외수역에서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을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상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이후에도 고위험군 선박으로 분류돼 특별 관리를 받는다. 해수부는 이미 부산해양경찰청에 관련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사조산업은 PNA 기준에 따르면 EEZ 내에서 조업을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마샬제도 해양자원청은 유엔이 지정한 선을 기준으로 EEZ를 침범했다고 주장한다. 서울 서대문구 사조산업 본사. 사진=고성준 기자
현지 재판이 시작하기도 전에 해수부가 수사를 의뢰한 이유는 불법어업국 지정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되면 해당 국가 항만에 입항이 거부되거나 수출 등에서 제재 조치를 받을 수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마샬제도 해양자원청은 사조산업의 기소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린 상태다.
환경운동연합은 “국제사회에서는 개별 선박이 행한 불법어업의 책임을 그 선박이 속한 국가에 묻고, 자국의 어선 통제가 불가능한 국가를 불법어업국으로 간주하는 관행이 있다”며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국가 인지도 하락과 함께 수출 불이익 등 실질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미 2013년 유럽연합(EU)은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한 바 있다. 예비 불법어업국 지정 후에도 개선이 되지 않으면 유럽연합 이사회는 해당 국가를 최종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한다. 다행히 한국은 원양산업발전법을 개정하는 등 규제를 강화한 끝에 2015년 예비 불법어업국에서 제외됐다.
2019년 9월에는 미국이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했다. 앞서 2017년 12월, 홍진실업의 원양어선 ‘홍진701호’와 ‘서던오션호’가 남극 수역에서 남극 해양생물자원 보존위원회의 어장 폐쇄 통보를 따르지 않고 조업을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해경 수사 결과 홍진701호는 무혐의를 받았고, 서던오션호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에 미국 정부가 한국의 원양어선 관련법이 미약하다고 판단해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한 것이다. 정부는 2019년 11월 원양사업발전법에 과징금 제도를 신설했고, 미국 정부는 지난 1월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에서 제외했다.
지난 1월 미국이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에서 제외할 당시 정부 관계자는 “불법어업 근절을 통해 수산자원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는 불법어업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불신과 국민들의 우려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는 업계, 시민단체와 함께 불법어업 재발 방지에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불법어업 재발 방지를 언급한 만큼 사조산업이 마샬제도 현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으면 한국 정부도 사조산업에 일정 부분 제재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마샬제도와 다른 법령 해석으로 사조산업을 처리하면 국제적으로 문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불법어업국 지정은 선박이 불법을 저지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가 불법 선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를 본다”며 “마샬제도가 벌을 내리면 우리도 사조산업을 원칙적으로 처리해야 하며 이 내용을 국제사회에 설명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조산업 관계자는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 않았으며 마샬제도 현지 법정에서 각자 증거를 제출하라고 하고 있다”며 “우리는 우리대로 재판을 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