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행’ 케이뱅크 정상화를 위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진=연합뉴스
케이뱅크는 지난 4월 7일 이사회를 열고 5949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고 밝혔다. 보통주 1억 1898만 주의 신주를 발행하고, 현재 지분율에 따라 주주들에게 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실권주(기존 주주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아 남게 되는 주식)가 나오면 주요 주주사가 이를 나눠 인수한다. 주금 납입일은 오는 6월 18일이다.
열흘 뒤인 지난 4월 17일에는 KT가 나섰다. 가지고 있던 케이뱅크 지분 10% 전량을 363억 원에 BC카드로 넘긴다고 공시했다. KT는 BC카드 지분 69.54% 보유한 최대주주다. 모회사 KT가 케이뱅크 2대 주주 지위를 자회사 BC카드로 넘겨 간접적으로 지배하겠다는 복안이다. 실제 KT는 주식 처분 목적이 ‘그룹 금융사업 육성’이라고 했고, BC카드도 별도로 케이뱅크 유상증자에 2624억 원을 투입한 뒤 지분율을 현재 10%에서 34%까지 확대해 최대주주가 되겠다고 밝혔다.
#“플랜 B로는 부족, 플랜C도 동시 가동”
케이뱅크는 2017년 설립된 국내 1호 인터넷은행이다. 금융과 통신을 융합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인터넷은행을 목표로 KT가 주도해 설립됐다. 유상증자와 BC카드의 등판은 각각 케이뱅크와 KT의 영업 정상화 플랜 B와 C로 통한다. ‘베스트 시나리오’로 꼽히던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이 예상을 깨고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플랜 B로 통하는 케이뱅크의 유상증자 결정 직후, 업계에선 이 결정에 대해 KT를 최대주주로 끌어올리는 사전준비 작업으로 해석했다. 앞서 여야가 지난 3월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인터넷은행특례법 개정안을 총선 이후 열릴 임시국회에서 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케이뱅크가 주금 납입일을 두 달 뒤인 6월 중순으로 넉넉하게 잡은 점도 ‘법안 통과⟶KT 최대주주 등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유상증자는 지난해 1월 추진됐다가 실패한 전력이 있다. 또한 KT가 최대주주로 오르는 일은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해야만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앞선 국회 본회의에서 막판에 갑자기 결과가 뒤집어졌던 만큼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무조건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낙관할 수는 없다. 유상증자 재시도 소식에도 금융권 반응이 시큰둥했던 이유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게 KT가 BC카드에 지분 전량을 넘기는 플랜 C다. BC카드는 지체 없이 금융당국에 대주주 적격성 심사 신청 등 공식 절차에도 착수했고, 동시에 가지고 있던 글로벌 브랜드 카드사 마스터카드의 주식 145만 4000주를 4299억 원에 팔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마스터카드 주식은 BC카드 자산 가운데 ‘알짜’로 평가받았다. BC카드는 마스터카드 주식 매각 목적을 차익실현이라고 했지만, 케이뱅크 주식 매입 및 유상증자 참여에 쓰일 가능성이 높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BC카드가 적격성 심사를 신청하는 건 직접 케이뱅크 최대주주에 오르겠다는 의미”라며 “사실상 이번 임시국회에서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통과하면 KT가 대주주에 오르고, 반대로 또 다시 부결되면 BC카드가 케이뱅크의 새로운 주주로 참여하는 방법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꼼수 논란에 유상증자까지 산 넘어 산
플랜 B와 C가 동시에 가동되면서, 케이뱅크 정상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있다. 첫 관문은 BC카드가 받아야 할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다. 인터넷은행 특례법상 지분을 10%, 25%, 33% 이상 초과 보유할 경우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앞서 과거의 담합 혐의로 적격성 심사가 중단됐던 KT와 달리 BC카드는 현행법령 상으로는 대주주로서 결격 사유가 없다. KT의 자회사라고 하더라도 ‘주식을 실제 보유하려는 회사’가 적격성 심사 대상이라는 유권해석도 받아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꼼수’ 논란이다. 이번 플랜 B, C는 사실상 KT가 BC카드를 앞세워 케이뱅크를 간접지배하는 구조라, 자회사를 활용해 법을 회피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카카오뱅크의 대주주였던 한국투자금융지주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대주주 자격을 제한 받은 한국투자증권에 ‘지분 넘기기’에 성공했는데, 여기서 한투증권의 손자회사인 한국투자밸류운용을 우회로로 활용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했던 만큼 KT의 BC카드 활용 방안과 관련해 ‘긍정적인 선례’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최대주주에서 2대주주로 지분을 줄이는 과정이었다. KT와 BC카드는 지분을 늘려 최대주주가 되려는 정 반대의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심사를 하는 금융당국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동시에 BC카드가 최대주주로 오르는 게 인터넷전문은행설립법 취지에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지적도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ICT기업이 금융권에 진입해 시너지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BC카드가 KT 대신 최대주주에 오르게 되면 사실상 ‘금융사와 금융사’의 결합이라 ‘ICT기업 주도의 금융 혁신’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진다.
유상증자도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재 케이뱅크 주주사들은 보통주 기준으로 KT(BC카드, 10%), 우리은행(13.79%), NH투자증권(10%), 케이로스유한회사(9.99%), 한화생명(7.32%), GS리테일(7.2%), 케이지이니시스(5.92%), 다날(5.92%)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금융권에선 계획대로 BC카드가 34%의 지분을 확보하고 주요 주주사인 우리은행, NH투자증권이 적극적으로 증자에 나서도 30%가량의 실권주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주주사들은 낮은 사업성과 리스크 등을 이유로 지난해부터 케이뱅크 유상증자에 소극적이었다. 올해 유상증자 계획 발표 전후로도 반응은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선 증자불발 상황은 물론, 이후 수차례 이어졌던 케이뱅크와 증자 요청 때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각각 내부 경영 점검을 하는 과정이라 케이뱅크에 거금을 투입하는 일은 지난해보다 더 쉽지 않다.
다만 BC카드가 KT 대신 나선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주주사도 있다. 한 주주사 관계자는 “현재 유상증자 등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 내부적으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면서도 “BC카드를 최대주주로 올리는 계획은 사업을 주도하는 KT가 주주단에 케이뱅크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현모 신임 KT 대표이사. 사진=연합뉴스
# KT의 전폭적 지원 필요
금융업계에선 당분간 케이뱅크 정상화를 위해 KT가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케이뱅크가 KT의 주요 요직을 거쳐 BC카드 사장까지 역임한 금융ICT 전문가 이문한 전 사장을 새로운 은행장으로 선임했지만 각종 논란에 휩싸인 케이뱅크의 주주사를 설득하려면 KT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취지다.
구현모 KT 신임 대표이사는 지난 3월 30일 주주총회에서 “금융, 유통, 보안 및 광고 등 성장성 높은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그룹의 지속 성장과 기업 가치 향상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후 임원들에게도 “통신과 미디어 외에 ‘테크핀(Tech-Fin)’을 그룹의 신사업으로 육성하겠다”며 기존 사업은 임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자회사’ 역량 강화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뱅크를 KT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로 두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최근 일련의 과정 등으로 그룹 차원에서 케이뱅크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지를 공식화했다”며 “향후 케이뱅크가 BC카드는 물론 KT가 가진 경쟁력과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