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이혼, 치정, 복수에 얽힌 부부의 이야기가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부부의 세계’ 돌풍의 중심에는 김희애가 있다. 사진=JTBC
김희애의 ‘부부의 세계’가 2020년 상반기 방송가 히트작으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화제가 현저히 떨어졌지만 그 틈에서도 ‘부부의 세계’만큼은 유독 빛을 발하고 있다. 방송 8회 만인 4월 18일의 시청률이 20.1%(닐슨코리아)를 기록, 종합편성채널 드라마의 한계를 딛고 20%대 고지에 안착했다. 총 16부작으로 이제 반환점을 돌았을 뿐인데도 시청률이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역대 종편 드라마 기록까지 새로 쓸 준비를 마쳤다. 종전 종편 드라마가 거둔 최고 시청률은 2019년 염정아가 주연한 JTBC ‘스카이 캐슬’이 세운 23.8%이다.
#‘김희애표 격정멜로’ 어김없이 성공
불륜, 이혼, 치정, 복수에 얽힌 부부의 이야기가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부부의 세계’ 돌풍의 중심에는 김희애가 있다. 그가 연기하는 주인공 지선우는 서울 근교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성공한 의사다. 지역 사회의 선망을 받고 아들을 키우면서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얼핏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의 삶에 균열이 시작된 건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채면서다. ‘아내도, 연인도, 사랑한다’는 남편(박해준 분)을 무너뜨리기 위해 남편 친구와의 동침도 서슴지 않은 끝에 이혼에 성공하지만 이내 새 가정을 꾸려 고향으로 돌아온 남편이 일상을 위협하자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첫 회부터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김희애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해 시청자를 빠져들게 만든 ‘부부의 세계’는 드라마로는 파격적인 수준의 베드신과 불륜에 얽힌 남녀의 부적절한 관계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사진=JTBC
드라마의 인기는 여러 지표로도 드러난다. TV 프로그램 화제성을 분석하는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4월 20일 발표한 ‘화제성 지수’(4월 13일~19일)에서 ‘부부의 세계’는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채널을 포함한 드라마 부문 4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김희애 역시 이 기관이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 SNS 언급 등을 토대로 조사한 배우 화제성 부문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그 진가를 증명했다.
김희애는 “처음에는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센 인물이라 걱정됐다”고 밝혔다. 남편을 향한 지극한 사랑, 그 사랑이 배신당한 뒤 폭주하는 애증을 16회 내내 홀로 이끌어 가야 하는 만큼 여느 작품보다 부담은 컸다고 했다. 하지만 부담은 배우에게 곧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소개하는 제작발표회에서 김희애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이야기를 보고, 출연할 수밖에 없는 대본이라고 생각했다”며 “여성적이고 여리면서도 또 너무 무섭다.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런 인물을 ‘죽을 때까지 내가 맡아볼 수 있을까’ 싶어서 보람을 갖고 임했다”고 말했다.
#친구의 남편, 20세 어린 제자…‘배우의 전환점’
김희애가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의 몰입을 이끌고, 공분을 일으키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파격적이고 격정적인 멜로드라마에 나설 때마다 화제 만발이다. 2014년 20세 어린 제자와의 사랑을 그린 JTBC 드라마 ‘밀회’ 역시 반향을 일으켰고, 2007년 김상중, 배종옥과 주연한 SBS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는 시청률이 36.5%까지 치솟았다. 친구의 남편과 불륜에 빠지는 이야기가 시청자의 ‘분노’를 자극해 폭발적인 인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희애가 주연한 이들 드라마는 단순히 높은 시청률과 화제를 블러일으키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 ‘밀회’의 경우 당시 지상파, 케이블채널과 비교해 후속 주자로 출발한 한계가 뚜렷했던 종편 드라마의 가능성을 증명한 계기가 됐다. JTBC가 TV조선, 채널A를 월등히 앞지를 수 있는 결정적인 토대도 마련했다. ‘내 남자의 여자’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당시 방송가에 확산되던 소위 ‘막장’ 드라마의 영역을 비껴가면서 인간의 욕망과 고독에 집중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김희애는 이를 통해 중년의 여배우가 선뜻 도전하기 어려운 변신을 거듭했다. 실제로 19세 차이의 배우 유아인과 예술을 매개로 이뤄지는 운명의 사랑을 그린 ‘밀회’가 대표적이다. 과감한 도전은 성과로 이어졌다. 평범하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자칫 세속적으로 풀어낼 수도 있는 함정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진취적인 인물로 완성해 드라마의 성공은 물론 배우로서도 ‘전기’를 맞았다. 현재 ‘부부의 세계’가 다양한 세대의 시청자로부터 집중적인 입소문을 얻는 배경 역시 김희애가 완성하는 삶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부부의 세계’를 연출하는 모완일 PD는 “어떤 분야에서 일정 부분 이상의 성취를 달성한 사람과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다. 나에게 김희애라는 배우가 그렇다”라며 “김희애가 ‘부부의 세계’를 택해줬다”는 밝혔다. ‘부부의 세계’ 제작발표회 당시의 모완일 PD와 배우 김희애, 박해준. 사진=JTBC
‘부부의 세계’는 영국 BBC가 방송한 드라마 ‘닥터 포스터’ 시즌1·2가 원작이다. 성공한 영국 드라마를 한국 버전으로 옮기면서 제작진은 ‘이견’ 없이 김희애를 주인공으로 택했다. 사랑과 애정, 파국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그 외에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연출을 맡은 모완일 PD는 “어떤 분야에서 일정 부분 이상의 성취를 달성한 사람과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다. 나에게 김희애라는 배우가 그렇다”고 했다. 제작진이 김희애에게 출연 제안을 건넨 게 아니라 “김희애가 ‘부부의 세계’를 택해줬다”는 설명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