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아시아나항공에게 1조 7000억 원을 지원해주면서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최악의 경영난, 결국 정부 추가 지원
4월 22일 아시아나항공은 산은과 수은이 1조 7000억 원을 ‘마이너스 통장’ 방식의 한도대출로 지원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이달 만기인 대출 1조 1000억 원도 만기가 연장됐다. 이번 지원은 HDC가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속도를 낼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산은 관계자는 “인수·합병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아나가 영업 악화 및 시장자금 조달 차질 등 극심한 경영 애로를 겪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채권단에서 1조 7000억 원을 지원키로 했다”면서 “HDC 측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지원을 요청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항공업계가 최악의 경영난에 직면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매달 항공기 임차 비용 등 고정비만 2000억~3000억 원에 달하는데 운항률은 7.6%까지 떨어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산은과 수은이 지원해준 1조 6000억 원을 모두 소진했다. 손실과 부채도 급증했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영업손실은 4400억 원, 당기순손실은 8000억 원을 웃돌았다. 부채비율은 2018년 649.3%에서 작년 1386.7%로 2배 넘게 치솟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HDC는 계획했던 인수 일정을 미뤘다. 당초 HDC는 공시를 통해 지난 4월 7일 아시아나항공에 신주인수계약 2조 1771억 원 중 1조 4664억 원을 1차 유상증자 참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 3월 27일 유상증자 일정을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날’로 변경하며 일정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4월 7일 아시아나항공은 차입금 상환 및 운영 자금을 위해 3000억 원의 단기 차입금 증액을 결정했다.
시장에선 계약금 2500억 원을 손해 보더라도 HDC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산은 측에서 추가 지원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유동성에 문제가 생겨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까지 이어지면 8600여 명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 임직원의 안정성이 흔들린다. 3조 4400억 원에 이르는 차입금도 부실화되기 때문이다.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부채가 많아서 그냥 준다고 해도 인수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계약금을 포기하는 것이 손해라고 볼 수 없다”며 “산은도 인수 포기를 지켜만 볼 수 없는 상황이라 HDC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HDC의 요구를 산은에서 어느 정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몽규 회장의 결정만 남아”
기업결합심사는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4월 21일 미국 정부가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신청한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기업결합승인을 신청한 해외 6개국 가운데 러시아 한 곳만 남게 됐다.
하지만 HDC의 자금 조달은 현재 완료된 상황이 아니다. HDC는 사모사채 1700억 원, 유상증자 3200억 원, 은행 차입금 3400억 원, ABL(자산담보부대출) 3750억 원 등 1조 2000억 원 상당은 조달 완료했다. 나머지 8000억 원을 회사채 3000억 원, 은행 차입금 3300억 원, 현금 1700억 원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지만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나머지 자금 8000억 중 현금만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며 “회사채 발행 일정이 계속 연기되고 있고 HDC에서 은행 차입금의 이자율을 3%대로 요구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어 “자금 조달을 미뤄놓고 협상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인수 완료 시점도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제 정몽규 회장의 결정만이 남았다”고 말했다.
HDC 관계자는 “사안이 민감한 만큼 구체적인 답변을 주기는 어렵지만 인수가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고만 언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