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자산운용이 200억 원 넘는 돈을 투자한 A 사의 주소지. 사진=최훈민 기자
김광우 전 전무는 2019년 1월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46) 등과 공모해 수원여객운수 자금 약 161억 원을 횡령한 뒤 자취를 감췄다. 수원여객운수 인수 자금 대부분은 라임자산운용 돈이었다. 김 전 전무는 라임 사태의 중심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42)이 수원여객운수에 심은 자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관련기사 대학 때 절친? 라임 이종필-수원여객 김광우 ‘연결고리’ 추적).
뉴시스 등 보도에 따르면 김광우 전 전무는 우선 미국령 괌으로 도주했다. 그런 뒤 베트남으로 이동해 중국 비자를 발급받고 중국 칭다오로 넘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동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전해졌다. 중국에서 머문 지 29일 지난 2019년 3월 17일 그는 마카오로 향했다. 방문 비자로 중국 체류 기한 한도는 30일이다.
마카오 직항 비행기가 없었던 탓에 김광우 전 전무는 칭다오에서 항저우로 이동했다. 항저우에서 김 전 전무는 자신의 여권이 무효화 조치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한국에서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장이 접수돼 수사당국이 국제공조로 김 전 전무를 뒤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카오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김 전 전무가 가지고 있었던 중국 비자가 인터폴 수배가 내려지기 전에 만들어진 덕이었다.
김광우 전 전무는 마카오 공항엔 도착했지만 입국을 거부당해 공항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공항 보안구역인 CIQ(Customs Immigration Quarantine)에 17일간 머물렀다. 당시 마카오 정부는 항공사에 공문을 보내 김 전 전무를 다시 출발국인 중국으로 데려가라고 요구했다. 또한 한국 영사관에도 협조 요청을 했다.
이 사이 김광우 전 전무는 김봉현 전 회장 등의 도움을 받아 전세기를 타고 캄보디아로 다시 도주했다고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김 전 전무가 한국에서 괌으로, 마카오에서 캄보디아로 도피할 때 라임자산운용이 거액을 투자했던 부동산 시행사 메트로폴리탄 김 아무개 회장의 ‘전세기’ 동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김 전 전무는 그 뒤 캄보디아에서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다. 2019년 6월 김 전 전무는 칭다오에서 열린 한인 행사에서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김광우 전 전무 주요 도피처가 라임 사태 핵심 세력의 과거 투자처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김 전 전무는 괌 건설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돼 있었다. 메리츠종금증권에서 김 전 전무와 함께 근무했던 한 금융권 인사는 “김 전 전무는 자신이 건설 프로젝트 때문에 괌에 오래 있었다는 말을 무용담처럼 자주 했다”고 했다. 2018년 하반기 메리츠종금증권은 다른 금융기관들과 함께 괌 리저널 메디컬 시티에 약 2873억 원에 달하는 2억 7500만 달러를 투자한 바 있다.
앞서의 금융권 인사에 따르면 김광우 전 전무가 메리츠종금증권 시절 관리했던 부서는 베트남 부동산 개발업체 대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고 한다. 베트남과 함께 김광우 전 전무의 도피처였던 캄보디아도 라임자산운용과 관계가 깊다. 금융감독원이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회계 실사 자료에 따르면 라임자산운용은 캄보디아 코홍(Kohong) 복합 리조트 개발 사업에 1279억 원을 투자했다.
김광우 전 전무가 최근까지 머물렀다고 나타난 중국 칭다오 관련 정보도 발견됐다. 회계 실사 자료에는 라임자산운용이 메트로폴리탄에 총 2075억 원을 투자했다고 나왔다. 이 가운데 205억 원이 흘러간 곳은 2018년 12월 설립된 A 사로 추정된다. A 사 대표는 이종필 전 부사장의 대신증권 동료였다고 알려졌다.
A 사 주소지를 찾았지만 회사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고시원과 식당, PC방이 전부였다. 사진=최훈민 기자
2019년 3월 라임자산운용이 칭다오맥주 판권 획득을 하겠다며 끌어 모아 A 사로 투자한 것으로 보이는 자금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실사 결과 이 투자 사업은 중단됐다고 밝혀졌다. 일요신문은 4월 22일 A 사 주소지를 찾았다. 지하 1층은 PC방, 1층과 2층은 고깃집이었다. 3층부터는 고시원이었다. A 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칭다오맥주의 한국 판권은 애초 획득하기 어려운 영업권이었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한국에서 칭다오맥주 판권을 가진 수입주류 유통기업 비어케이가 쌓아 놓은 업력 때문이다. 비어케이 관계자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03년부터 칭다오맥주유한공사와 칭다오맥주의 국내 독점 공급 및 판매, 마케팅에 대한 계약을 이어오고 있다. 20년 가까운 관계란 얘기다.
애초 라임자산운용이 파고들 틈새는 거의 없었다. 라임자산운용이 칭다오맥주 판권을 획득하겠다며 돈을 모으던 시기 비어케이는 칭다오맥주로 한국 수입맥주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칭다오맥주의 수출법인 칭다오브루어리인터내셔널 대표인 프랭클린 마(44)는 2019년 5월 한국을 방문해 “우리는 한국 파트너인 비어케이와 아주 잘 가고 있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애초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계획으로 200억 원이 넘는 돈을 가로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권에서는 김 전 전무를 비롯한 라임 세력의 다음 행선지로 필리핀을 꼽았다. 이들을 잘 아는 또 다른 금융권 인사는 “이들의 움직임을 잘 보면 과거 투자를 했던 곳이 대부분이다. 아직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필리핀 세부의 리조트”라고 했다. 라임자산운용이 메트로폴리탄에 투자한 돈 가운데 247억 원은 필리핀 세부에 있는 이슬라리조트로 향했다고 알려졌다. 이곳은 2018년 8월 한인이 연루된 총격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수사당국은 수사망을 조여가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이 2월 19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그룹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 조사도 진행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검찰은 메트로폴리탄이 라임자산운용 투자를 받은 경위와 잠적한 김 아무개 회장의 횡령 혐의 등을 수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회장에 대한 인터폴 수배도 요청해 둔 상태라고 했다.
한편, 이들 핵심 세력의 도피 자금 출처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외국으로 송금된 금액이 도피 자금화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라임 사태의 핵심 세력이 이와 같이 도피 행각을 벌일 수 있는 건 외국으로 빼돌린 자금 덕”이라며 “국외 사업을 펼치려 했던 메트로폴리탄과 A 사의 국외 송금 내역을 잘 파악하면 이들의 도주를 돕는 후원자를 색출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라임 사태란? 173개 펀드 1조 6000억대 환매 중단 라임 사태란 라임자산운용이 2019년 하반기 운용하던 펀드의 손실이 커지자 펀드 환매를 중단한 사건을 이른다. 펀드 상품은 자산운용사 등이 설계한 펀드를 은행이나 증권사 등이 대리 영업해 개인이나 법인의 돈을 끌어오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개인이나 법인이 은행과 증권사 등을 거쳐 일정 금액을 투자하면 그 금액은 자산운용사로 보내져 대량 투자를 일으킨다. 자산운용사가 펀드 환매를 중단하면 투자자는 돈을 돌려받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고객에게 미래 손실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불완전 판매가 종종 발생했다. 라임 사태 최대 피해자는 60대 이상 고령층으로 나타나 사태의 심각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라임자산운용은 지난해 중반 기준 펀드 290개를 운용하며 최대 5조 9000억 원을 굴려온 자산운용사다. 2019년 말 기준 환매가 중단된 펀드는 총 173개다. 173개 펀드로 투자된 금액은 계좌 총 4616개에서 나온 1조 6679억 원. 이 가운데 개인 계좌는 4035개, 투자액은 9943억 원으로 파악됐다. 개인 계좌당 투자된 2억 4641만 원이 환매 중단된 셈이다. 개인 투자자의 46%가 60대 이상이었다. 개인 투자액 규모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신한금융투자, 하나은행, 대신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등 순으로 나타났다. 최훈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