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가 코로나19라는 직격탄을 맞았지만 취항을 준비하고 있는 신생 항공사는 뒤에서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인천국제공항은 한산하다. 사진=고성준 기자
2019년 3월 국토부에 항공운송사업자 면허를 받은 신생 항공사는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플라이강원, 세 곳이다. 이 가운데 취항한 곳은 플라이강원 한 곳뿐이다. 플라이강원은 2019년 11월 운항을 시작했다.
플라이강원은 취항한 지 140여 일 만에 코로나19를 맞이하며 울상이다. 정부의 긴급 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KDB산업은행이 과거 3년 동안의 경영 실적을 요구하고 있어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165억 원 유상증자로 현금 유동성에 숨통을 틔울 계획이다. 254명 전 직원 유급 휴직 등 자구안을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는 보통 취항 한 달 전쯤 끝내는 운항증명(AOC)을 준비하는 단계다. 즉,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는 아직 비행기를 띄우지 않은 상태다. 예상치 못한 추가 지출이 없어 운영에 어려움이 거의 없다고 전해진다. 코로나19 국면을 비껴간 셈이다. 두 회사가 뒤에서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고 알려진 이유다.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는 경영권을 두고 내부 다툼을 벌이면서 AOC 진행이 늦어졌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분쟁이 현재 호재로 작용하는 셈이다.
청주공항을 거점으로 하는 에어로케이는 2월 180인승 A320기종을 이미 들여온 상태다. 3월을 목표로 준비했던 AOC가 기약 없이 미뤄지긴 했지만 아직 취항을 하지 않은 상태라 재정에 큰 타격이 없다. 더군다나 같이 청주공항을 주요 거점으로 활용하던 이스타항공이 완전 자본잠식에 들어간 동시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에어로케이 지주사인 에어로케이홀딩스 관계자는 “자금은 충분하다. AOC가 조금 미뤄져서 인건비와 리스 비용이 예정보다 더 들어가긴 하지만 큰 타격이 될 정도는 아니”라며 “주주들의 동요도 없다. 유상증자를 따로 할 계획도 없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여객기가 멈춰서있다. 사진=연합뉴스
에어프레미아는 코로나19 국면과 가장 멀리 떨어진 항공사다. 에어프레미아는 아직 비행기도 들여오기 전이다. 오는 7월 말이나 8월 초에 보잉 787 드림라이너 기종을 들여올 계획이다. 11월에 AOC를 거쳐 12월쯤 취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직원이 120여 명 있고, 150여 명의 기내 승무원 또한 예정대로 오는 5월 안에 채용할 예정이다. 계획에 있던 5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도 오는 10월쯤 진행한다.
에어프레미아 관계자는 “항공업계가 불황이 되면 우리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아직 잘 판단하긴 어렵다”면서도 “현재까진 우리에겐 타격이 있을 게 없다. 비행기도 들여오기 전이고 취항도 안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신생 항공사들이 뒤에서 업황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기존 LCC를 비롯해 아시아나항공까지 ‘초불황’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양새다. 2019년 말 기준 금융감독원 자료를 살펴봤을 때, 이스타항공은 당기순손실 909억 원을 기록하며 완전자본잠식(자본총계가 마이너스를 기록) 상태가 됐다. 이스타항공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632억 원이다. 에어서울도 마찬가지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갔다. 당기순손실 91억 원으로 자본총계 마이너스 29억 원이 됐다.
에어부산 역시 부실한 재무구조를 보이며 자본잠식에 빠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9년 729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고, 라임자산운용 펀드 손실 등이 겹치며 460억 원 정도의 사내 유보금을 거의 소진했다고 전해진다. 재무 전문가들에 따르면 에어부산은 560억 원 이상의 손실을 올해 기록할 경우 부분 자본잠식(유보금이 바닥나고 납입자본금이 잠식되기 시작)에 접어들 것으로 분석된다.
LCC뿐만 아니라 대형 항공사(FSC)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시아나항공은 자본잠식에 빠졌다. 2019년 말 기준 부채비율이 1386%까지 늘어나며 30%에 자본잠식률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운항이 80% 가까이 줄면서 자본잠식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항공사 입장에선 자본잠식 상태를 해결하는 문제는 생사가 달린 문제다. 항공사업법에 따르면 자본잠식률 50% 초과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되면 국토부 장관에게 재무구조 개선명령을 받을 수 있다. 개선명령을 받은 뒤에도 자본잠식률 50% 초과 상태가 2년 이상 이어지면 면허를 취소당하거나 6개월 동안 사업 정지 명령을 받을 수 있다.
자본잠식이 계속되면 면허가 박탈될 수도 있다. 이스타항공, 에어서울은 완전 자본잠식에 들어섰고, 다른 항공사도 자본잠식을 우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산업은행은 3월 티웨이항공 60억 원, 에어서울 200억 원, 에어부산 300억 원, 제주항공 300억 원, 진에어 300억 원 등 5개 LCC에 긴급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항공업계는 정부의 ‘통 큰’ 긴급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신생 항공사가 취항과 동시에 업계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느냐는 코로나19가 얼마나 이어질지에 달렸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업 경영을 연구하는 한 교수는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가 자금력을 얼마나 확보해뒀는가 하는 문제와 코로나19가 얼마나 지속될지가 관건”이라며 “지금 있는 LCC들이 코로나19를 버틴 뒤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면 신생 항공사가 경쟁력에서 밀릴 수도 있다. 정부의 긴급 지원도 변수다.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어로케이나 에어프레미아가 자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스타항공이나 에어서울 같은 LCC를 인수하면 또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인수한 항공사가 면허권을 잃는다고 해도 기존 항공사가 면허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공기 등 인프라를 합칠 수 있다. 항공업계 불황으로 항공사 인수 가격이 더욱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제주항공은 2020년 3월 이스타항공의 지주회사인 이스타항공홀딩스 지분 51.7%를 545억 원에 인수했다. 2019년 12월에 합의했던 695억 원보다 150억 원 낮아진 가격이다.
에어프레미아와 에어로케이는 다른 LCC 인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고 전해진다. 에어프레미아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현재 기존 LCC 인수에 관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건 없다”면서도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나중에 인수한다는 이사회 의결이 날 수도 있다”고 답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