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고척스카이돔에서 X1 멤버들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X1은 조작 논란으로 결국 해체를 선택한다. 사진=고성준 기자
데뷔 앨범으로 하프(Half) 밀리언셀러에 등극한 신인 그룹은 X1이 최초다. X1은 하프 밀리언을 찍으며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비상했지만 사실 출발부터 잡음은 존재했다. 데뷔와 맞물려 프로듀스 시리즈 전체를 두고 경찰이 수사에 돌입했다. X1은 이렇게 데뷔와 동시에 프로듀스 시즌4 조작 논란이 터지면서 지상파 음악방송 출연이 불발됐다. 그럼에도 초동 판매량이 말해주듯 인기는 대단했다. 인기는 엄청났지만 조작이 발각되면서 결국 지난 1월 X1은 해체된다.
초동 판매량으로만 따져 봤을 때 역대 ‘프로듀스 그룹’ 가운데 X1이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정상적으로 데뷔했다면 오디션 프로그램 그룹 중에서 역대 최고 인기도 가능했을 수 있다. 특히 X1은 다른 프로듀스 그룹(1~2년 계약)과 달리 5년 계약으로 묶어뒀다. 인기를 장기적으로 끌어갈 수도 있었던 셈이다.
화제의 그룹이었던 X1은 어떻게 조작됐을까. 일요신문이 관련기사(“멤버가 이러면 안돼” 프로듀스3 ‘아이즈원’ 조작의 시작)를 통해 보도한 대로 제작진은 프로듀스 시즌3 멤버를 조작했다. 당시 걸리지 않고 데뷔했던 아이즈원이 잘됐기 때문인지 시즌3을 기점으로 PD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과거 인위적인 조작을 꺼려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대놓고 조금씩 혹은 과하게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몇 주에 한 번씩 대규모 탈락이 발생한다. 이런 방출이 있는 회차에서 멤버 한두 명을 바꿔치기했다. 이를 위해 김용범 CP(책임프로듀서)와 안준영 PD와 이 아무개 PD는 투표 전에 만나 탈락자를 골라냈다.
시즌3에서는 최종 투표 직전 조작 모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시즌4 때는 꽤 자주 비공개 탈락 결정 모임을 가졌다.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진 걸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김용범 CP와 PD들은 시즌4 중간 투표에서 노래를 못해서, 춤을 못 춰서, 너무 겉돌아서 등의 이유로 일부 출연자의 인위적 방출을 결정했다. 물론 탈락자 수십 명 가운데 2~3명을 PD들이 골라냈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 프로듀서가 결정한다’고 한 슬로건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프로듀스 X 101 최종 문자투표가 이뤄지는 생방송 2~3일 전 김용범 CP가 다시 PD들을 불러 모았다. 시즌3 조작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날 누구를 데뷔조에 넣고 뺄지를 결정했다. 시즌3 때는 온라인 사전투표를 보고 결정했지만, 시즌4 때는 사전투표조차 반영을 하지 않고 조작했다.
김용범 CP와 다른 PD들은 멤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룹의 밸런스를 중시했다고 전해진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이들은 ‘아무개가 메인 보컬, 혹은 랩 등 특정 포지션을 맡으면 그룹으로서 확장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이런 기준으로 순위를 정해나갔다. 그래서 시즌3와 마찬가지로 문자투표 결과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그 결과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7494.442’는 어떻게 나온 숫자일까. ‘7494.442’는 프로듀스 시즌4 최종회 문자투표에서 일정하게 나온 상수다. 문자투표 결과는 먼저 연습생에 각 계수가 정해져 있고 상수로 정해둔 7494.442를 곱해 나온 수를 반올림해 나온 결과다. 모든 등수가 이 숫자로 나눠서 떨어지거나 일의 자리에서 반올림한 결과였다. 그래서 이렇게 일정한 배율이 나오기 때문에 20등과 18등의 표를 더하면 10등의 결과가 나오거나 20등과 17등의 표를 더하면 9등의 결과가 나오는 식이 된다.
프로듀스 시즌4 투표 조작 분석글. 몇 개 등수 표를 합치면 또 다른 등수의 표가 나온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만약 여기서 끝자리 숫자를 조금 더하거나 빼거나 했다면 이런 상수가 있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조작도 밝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투표 결과가 이렇게 모두 딱 떨어질 확률은 로또 1등에 9번 연속 당첨될 확률과 같다고 한다.
당시 순위 조작을 실행한 당사자는 핵심 3인방 회의에서 막내였던 이 아무개 PD였다. 김 CP, 안 PD 등과 함께 순위를 정하고 나면 이 아무개 PD는 엑셀로 대략 가중치를 정하고 이를 문자로 그대로 나눴다. 이 득표수가 분석되리란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프로듀스 시리즈에 참가했던 한 기획사 관계자에 따르면 “아마 세세한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프로듀스 시리즈를 곁에서만 봐도 제작진은 며칠간 밤을 샌 상태라 거의 좀비 상태였다. 특히 최종회 직전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때쯤 되면 정상적인 정신 상태라고 보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김용범 CP나 안준영 PD는 득표수 조작 방식조차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듀스 제작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김 CP와 안 PD는 나중에서야 조작 방법이 단순하게 일정 상수에 계수를 곱한 것을 알고 자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조작에 뛰어들었던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압박감이다. 또 다른 제작진은 “아무래도 시즌2가 워낙 파급력이 컸다보니 시즌3을 성공하고도 기대를 다 못 채웠던 느낌이었다. 특히 시즌4는 같은 남자 아이돌 그룹인 시즌2보다 잘 돼야 한다는 압박이 회사 전체에 강하게 작용했다. 당시 엠넷(Mnet)에서 자체 제작하는 간판 프로그램도 프로듀스 시리즈 외에는 딱히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례적으로 계약 기간이 5년인 만큼 최고의 멤버를 선발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이유는 인센티브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조작 지휘와 최종 결정은 김용범 CP가 내렸던 것으로 확인돼 안 PD가 받은 접대와는 관련이 적다. 또한 안준영 PD가 접대받은 액수는 수사기관 측과 안 PD 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대략 몇 년에 걸쳐 적게는 3000만 원에서 많게는 4000만 원대로 알려졌다. 그런데 방송가에서는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프로그램과 방송사마다 다르겠지만 CP와 메인 PD에게 몇 억 원대의 인센티브가 나온다고 한다.
방송 관계자들은 “안준영 PD가 접대받았다는 금액이 3000만~4000만 원인데, 매우 큰돈이긴 하지만 시즌당 1000만 원꼴이다. 복수의 관계자들에게 접대 받은 액수인 만큼 한 기획사에서 받은 돈은 몇 백만 원 수준이다. 이 돈 때문에 몇억 원에 달하는 인센티브를 잃을 각오로 함량 미달 연습생을 붙였겠느냐”고 입을 모은다. 종합해 보면 그룹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는 데 따른 내부 압박감에다 인센티브가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실제 순위를 모른 채 조작한 멤버와 수사기관에서 맞춰본 문자투표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실제 순위와 PD들이 임의로 정한 멤버 가운데 뒤바뀐 멤버는 2명 정도로 파악된다. 또 다른 방송계 관계자는 “엄청난 물의를 빚고 팬들 마음에 큰 상처를 냈으며 데뷔했던 그룹은 해체, CP와 PD는 구속까지 됐다. 그런데 심지어 실제 결과와 차이도 크지 않다면 이들이 무엇을 위해 조작했는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고 꼬집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