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이 추진되지만 난항을 겪는 모양새다. 4월 16일 국회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통합당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은 심재철 원내대표는 4월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총선 이후 당 진로와 관련해 최고위원회와 당내 의견 수렴 결과를 바탕으로 김 전 위원장에게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공식 요청했고, (김 전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김종인 비대위 체제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심재철 권한대행은 ‘김종인 비대위’를 적극 추진한 바 있다. 앞서 당내 전체 의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돌린 결과 김종인 전 위원장을 비대위원장직에 앉혀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게 나와서다. 심 권한대행 주재로 돌린 조사에서 당 소속 현역의원 92명, 당선인 84명이 참여해 김종인 비대위 찬성이 43%, 조기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31%로 집계됐다.
김 전 위원장 영입까지 난관은 상당했다. 심 권한대행은 4월 22일 김 전 위원장과의 회동을 추진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전화통화를 하는데 그쳤다. 23일의 경우 심 권한대행이 김 전 위원장과의 저녁 회동을 하려고 했으나 불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난항을 겪은 배경으로는 당내 ‘김종인 비대위’와 관련한 반발 기류가 흐르는 것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위원장 측은 당내 불만 정리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봤다. 그가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더라도, 당은 소속 현역 의원과 지역별 당원 등이 참여하는 상임 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열어 비대위 출범 추인을 받아야 공식화된다. 4년 전 새누리당(통합당 전신) 시절 비대위 출범이 상임 전국위에서 성원 미달로 무산된 사례가 있어 더욱 조심스러운 셈이다.
만약 김종인 비대위가 전국 상임위에서 추인이 불발된다면 시작부터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김 전 위원장 측 관계자는 “당에서 김종인 비대위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조금 더 나와야 했다”며 “그것이 안된 상황에서 무작정 수락해봐야 그림이 좋지 않고 위험 부담도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통합당 최고위는 상임 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를 다음 주에 개최하기로 의결했다. 비대위 기간에 대해서는 당헌 96조 6항을 들어 ‘비상상황이 종료된 후 소집된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이 선출된 때까지’로 정했다.
김종인 비대위를 향한 당내 반발 목소리는 비대위 ‘성격’에 대한 이견이 핵심으로 자리 잡은 바 있다. 김 전 위원장 측은 2022년 대선까지 주도권을 잡고 끌고 갈 ‘전권’ 비대위를 원하지만 당내에서는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때문에 이 같은 잡음이 계속될 경우 비대위 체제로 접어들더라도 내홍이 식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의 전권 구상은 그의 발언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는 4월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조기 전당대회가 전제된다면 비대위원장을 할 수가 없다“며 ‘무기한 전권’을 비대위원장 수락 조건으로 제시했다. 또 ”대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는 준비까지는 해줘야 한다“며 ‘킹메이커’ 역할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시사했다.
당내에서는 김 전 위원장 구상을 두고 경계 심리가 작용하는 양상이다. 3선 고지에 오른 조해진 당선자(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는 “이런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21대 84명의 당선자가 당을 스스로 다스리거나 개혁할 능력이 없는 정치적 무능력자, 정치적 금치산자들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낙선한 김선동 의원(서울 도봉구을) 역시 “훈장님 모셔다 학생들이 회초리 맞는 방식보다는 이제 한번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쇄신이 된다”며 비판 대열에 섰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권 잠룡과 다선 의원들 움직임이다. 당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에 견제구를 날리는 모양새다. 대구 수성을에서 생환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무리 당이 망가졌기로서니 기한 없는 무제한 권한을 달라는 것은 당을 너무 얕보는 처사”라며 “차라리 ‘헤쳐모여’ 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지적했다. 5선을 달성한 조경태 최고위원(부산 사하구을)은 전당대회 전까지 당을 이끄는 ‘관리형 비대위’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래통합당 심재철 당대표 권한대행(왼쪽)과 조경태 최고위원. 사진=박은숙 기자
다만 재선급 의원 사이에서는 김종인 비대위에 손을 들어주고 있어 대조적이다. 재선에 성공한 통합당 초선 의원 19명 중 15명은 4월 23일 국회에서 회동해 최고위의 ‘김종인 비대위’ 결정에 일단 힘을 실어주자고 의견을 모았다. 주최자인 김성원 의원(경기 동두천·연천)은 “빨리 비대위 체제로 개편해 당의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국민이 다가설 수 있는 당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더는 분란을 만들기보다 협력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다선급이 대권 및 당권에 방점을 찍고 행보에 나섰다면, 재선급에서는 당의 체질 개선에 무게를 두고 결정을 내린 것으로 읽힌다. 재선급의 이 같은 움직임이 당내에서 퍼져나갈 경우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할 여건은 갖춰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김종인 비대위 출범은 어쩔 수 없는 수순으로, 결국 주도권을 잡고 갈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우세하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파문으로 공석이 된 부산시장 자리는 내년 4월에 재보궐 선거를 치른다. 적어도 내년 4월까지는 비대위를 끌고 가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내년은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이기에 대선 후보 경선을 위해선 김종인 비대위의 역할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예상도 나온다.
다만 김종인 비대위가 출범해 쇄신 강도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당 체질 개선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통합당 역대 비대위 중 가장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의 경우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과 19대 총선 공천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력 대선주자도, 공천권도 없는 상황에서 쇄신을 도모해야 한다. 당 안팎에서 비대위를 향해 ‘흔들기’ 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한 셈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의 연륜과 경험, 어떤 대선주자를 키우는가가 이번 비대위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위원장 측에서는 “걱정 없다”는 반응이다. 한 측근 인사는 “현재 영남당으로 전락한 통합당을 전면적으로 다 바꾸기 위해 김 전 위원장 나름의 구상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당의 메커니즘을 이미 경험했고 꿰뚫고 있기 때문에 상황마다 전략적 한 수, 한 수를 두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