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성추행 사실을 밝히고 사퇴 기자회견을 연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엘레베이터를 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등 문지르고, 손 스치고” 평소 부적절한 신체접촉
오거돈 전 시장이 4월 23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오 전 시장은 “참으로 죄스러운 말씀을 드리게 됐다. 저는 오늘부로 부산시장직을 사퇴하고자 한다”며 “350만 부산시민 여러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송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한 사람에게 5분, 5분 정도의 짧은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였다. 이것이 해서는 안 될 강제 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어떤 말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며 성추행 사실을 밝혔다. 손바닥을 펼쳐 5분을 두 번 언급하며 강조하기도 했다. 기자회견문을 통해 입장 전달을 마친 오 전 시장은 서둘러 자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오후 피해자도 부산성폭력 상담소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는 “오 전 시장의 기자회견 일부 문구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그곳에서 발생한 일에 경중을 따질 수 없다. 그것은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다.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등의 표현으로 되레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를 염려해 오 전 시장의 입장문 내용을 사전에 확인하겠다는 의사도 수차례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오거돈 전 시장과 피해자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사건은 4월 7일 전후 오 전 시장의 집무실에서 벌어졌다. 오 전 시장은 수행비서를 통해 ‘업무상 호출’이라며 피해자를 집무실로 부른 뒤 성추행했다.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아닌, 처음부터 의도된 계획적 범행이 아니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오 전 시장은 피해자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달라”며 호출했다고 한다. 범행을 저지른 뒤에는 측근을 통해 피해자를 회유하려고도 했으나 결국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에 부산시 공무원 사회도 충격에 빠졌다. 그런데 부산시 직원들은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평소에도 오거돈 전 시장의 신체접촉이 과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과거 오 전 시장 밑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격려차원’이라며 직원들 등을 문지른다든지, 서류 받을 때 손을 스치는 등의 신체접촉이 과했다는 소문이 있긴 했다”고 말했다.
현 부산시청 직원 역시 “나는 물론이고 동료들도 기자회견 직전까지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오거돈 시장이 사퇴하는지 등을 전혀 몰랐다”라며 “‘전혀 몰랐다’는 말은 (부산)시청 안에서도 어떠한 이야기가 공유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거돈 전 시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정무라인 핵심인사들과만 긴밀하게 소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퇴 소식은 당일까지도 소수의 보좌진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거돈 부산시장 관련 윤호중 사무총장이 대국민사과 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부산시는 경악…행정 공백 불가피
부산시는 충격에 빠졌다. 오 전 시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기자회견 이후, 부산시청 안팎에서는 행정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해 신공항 재검토 등 지금껏 오 전 시장의 진두지휘 아래 추진해오던 부산시의 각종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겠느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산시청 공무원은 “어떠한 낌새도 없었기에 아직까지 어안이 벙벙한 상태”라며 “일상적인 업무 수행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오 전 시장이 추진하던 굵직한 사업들은 실무 행정을 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공무원으로서 시민들에게 죄송할 뿐”이라고 말했다.
부산 시민들도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시 해운대구에 거주하는 김 아무개 씨(34)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오거돈 전 시장을 뽑았는데 크게 실망했다. 이런 상황이 진정한 의미의 사표가 아닐까 싶다. 시장 한 명의 부도덕한 행위로 피해자는 물론 350만 부산 시민 전체가 피해를 봤다. 아직 코로나19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제 부산은 당장 방역 총책임자도 없다”고 한탄했다.
오 전 시장이 사퇴함에 따라 ‘오거돈 라인’이었던 핵심 정무라인도 사직한다. 부산시에 따르면 현재 오 전 시장을 보좌하는 직원은 15명이다. 더불어민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출신의 박성훈 경제부시장과 장형철 정책수석보좌관, 신진구 대외협력보좌관을 포함해 5급 6명, 6급 3명, 7급 3명 등이다.
별정직 공무원에 해당하는 이들은 고용주격인 지자체장의 임기가 만료되면 지방행정직 인사규정상 자동으로 면직 처리된다. 이에 따라 지난헤 12월 20일 경제부시장으로 임용되었던 박성훈 경제부시장도 4개월 만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됐다. 다만 전문임기제로 채용된 장형철 정책수석보좌관과 신진구 대외협력보좌관은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기존 임기대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부산시장직은 1년 가까이 공석이 될 예정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의 보궐선거는 매년 4월 첫째 주 수요일에 진행된다’는 공직선거법 제35조 1항에 따라 차기 부산시장은 2021년 4월 7일 결정된다. 이에 대해 부산시 관계자는 22일 “변성완 행정부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시정 공백을 메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오 전 시장이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데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있다. 부산 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부산 경찰은 오거돈 전 시장에 대해 조만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혐의로 수사에 나설 예정이다.
한편 오 전 시장과 핵심 정무라인은 4월 23일 이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경찰은 24일 사건 수사를 위해 오 전 시장의 행방 파악에 나섰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