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2020 KBO리그가 시작된다. 그러나 당분간 무관중 경기로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박정훈 기자
어린이날 경기는 KBO 리그 개막 이래 늘 최고의 흥행 카드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수많은 어린이 팬이 야구장을 찾아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 좋아하는 선수들과 어울려 다채로운 이벤트를 즐기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역대 최초로 전국 야구장이 ‘어린이 없는’ 어린이날을 맞이해야 한다. 관중석이 텅 빈 채 올해의 야구를 시작해야 한다. 개막 초반 안전한 리그 운영을 위해 무관중 경기를 진행하기로 결정해서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아직은 관중 입장에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언제쯤 가능하게 될지 시기를 논하기도 이르다”며 “코로나19 추가 확진자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경계를 늦출 순 없다. 향후 위협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판단하면 (관람석의) 10%씩 점진적으로 관중 입장을 허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왜 개막일을 5월 5일로 정했나
KBO는 적절한 리그 개막 시점을 상의하기 위해 한 달여 동안 매주 화요일 실행위원회와 이사회를 번갈아 열었다. 개막일 결정에 KBO와 10개 구단이 최우선으로 고려한 부분은 ‘선수단의 안전’과 ‘각 구단의 형평성’이다. 기본적으로 ‘5월 초 개막’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정한 뒤에는 첫째 주 금요일인 1일과 어린이날인 5일, 어버이날이자 둘째 주 금요일인 8일, 세 가지 옵션을 놓고 장단점을 꼼꼼히 살폈다.
처음에는 그중 가장 빠른 5월 1일 개막 안이 힘을 얻었지만, 최종적으로 어린이날 개막이 선택됐다. 고척스카이돔을 11월 말까지 포스트시즌 중립경기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전체 일정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겨서다. 또 중앙방역대책본부가 4월 30일 부처님오신날을 시작으로 5월 1일 노동절, 2~3일 주말, 5일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황금연휴’ 기간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류 총장은 “5월 5일에 개막을 해도 한국시리즈를 11월 안에 종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나흘이라도 개막을 늦춘다면 KBO와 구단이 선수단 안전을 위해 준비할 시간, 선수단이 정규시즌 개막을 대비할 시간을 더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장의 뜻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3월 말 입국한 키움 히어로즈,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KT 위즈, 한화 이글스 외국인 선수들은 2주 자가격리 기간을 거친 터라 실외 훈련으로 몸을 만들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특히 불펜 피칭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투수들은 실전을 통해 투구 수를 끌어 올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가장 중요한 원투펀치가 초반 한두 차례 로테이션을 걸러야 한다”는 해당 구단 감독들의 볼멘소리가 잇달았다. 그러나 개막일이 미뤄지면서 이들에게 시간도 늘어났고, 각 팀의 팀 간 교류전 수도 4경기에서 6경기로 늘었다. “연습경기를 더 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도 자연스럽게 해결된 셈이다.
개막을 앞두고 그간 금지됐던 팀간 연습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144경기 체제는 유지, 리그 중단되면 축소
다만 7월 열릴 예정이던 올스타전은 기존 방침대로 취소된다. 올스타 브레이크를 없애야 개막 연기로 인한 일정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시즌도 준플레이오프에 한해 3선승제를 2선승제로 축소했다. 11월 2일 정규시즌 종료 후 4일부터 포스트시즌에 돌입하고 11월 15일 이후에 시작하거나 이 날짜가 포함되는 시리즈는 모두 고척돔에서 중립경기로 치른다. 한국시리즈 종료일은 11월 28일로 계획하고 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팀당 경기 수는 일단 144경기 체제로 유지한다. 다만 시즌 중 확진자가 발생해 리그가 중단될 경우 경기 수를 단계별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단, 리그를 중단해야 하는 확진자의 범위는 선수단 그리고 현장에서 선수들과 호흡하는 사람들로 한정했다. 관중 가운데 확진자가 나오면 이틀간 야구장을 폐쇄하고 방역한다.
류 총장은 “팀당 144경기로 시작은 하되, 선수단 내 확진자가 나오면 2~3주가량 리그가 중단될 수 있어 경기 수를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여러 변수가 있다 보니 향후 경기 수가 어떻게 확정될지는 알 수 없다. 나중에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 긴급이사회를 열어 다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정이 뒤로 밀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시즌 중 우천 취소 시에는 더블헤더(혹서기인 7월과 8월 제외)와 월요일 경기를 강행한다.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을 고려해 더블헤더와 월요일 경기 시에는 연장전을 치르지 않는다. 또 더블헤더가 열릴 때는 일시적으로 엔트리를 한 명 추가하고, 3연전 체제가 2연전 체제로 바뀌는 시점부터는 팀별로 5인씩 추가되는 확대 엔트리를 앞당겨 시행하기로 했다.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비롯한 각종 일정 변경은 추후 KBO 실행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육성선수의 정식선수 등록만 개막 다음 날인 5월 6일부터 가능하다.
류 총장은 “개막까지 남은 시간이 더 생긴 만큼 팀간 연습경기를 5월 1일까지 추가 편성했다”며 “각 구단에 배포한 ‘코로나19 대응 매뉴얼’ 업데이트 버전은 모두 KBO가 강력하게 권고하는 내용이다. 공식 페널티는 없지만, 선수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국은 프로야구를 한다’ KBO 개막이 부러운 미 언론들
KBO리그가 대만 프로야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막일을 확정했다는 소식에 외신도 들썩였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현저히 감소한 한국과 달리 미국과 일본은 여전히 위기의 한복판에 있어 개막일을 특정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특히 많은 미국 외신은 “한국이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훌륭하게 통제해 프로야구 개막까지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뉴욕포스트’는 “KBO가 4월 21일 정규시즌 개막일을 확정한 동시에 팀간 연습경기도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이라 무관중 경기로 시즌을 치르기로 결정했다”며 “KBO리그는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 이은 세계 세 번째 수준의 리그다. 한국은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산 문제에 가장 잘 대처한 국가답게 프로야구를 포함한 경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또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에 나선 심판들의 사진과 함께 선수들에게 경기 중 침 뱉는 행위와 맨손 하이파이브 등을 금지한 KBO의 대응 매뉴얼 등을 상세히 전했다.
‘야후스포츠’도 “야구가 공식적으로 돌아왔다”며 한국의 프로야구 개막 결정을 알린 뒤 “4월 이후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한국과 달리 미국은 여전히 코로나19 확산 문제가 심각하지만, KBO리그의 개막은 메이저리그 개막을 결정하는 데 좋은 지표가 될 것”이라고 썼다.
‘CBS스포츠’는 “야구 마니아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바로 KBO 리그가 곧 개막한다는 것”이라며 “KBO 리그에서 가장 강한 팀은 두산 베어스로 알려져 있고,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와 타자는 각각 KIA 타이거즈 양현종과 NC 다이노스 양의지다”라고 소개했다. 또 “양현종과 키움 내야수 김하성이 올 시즌 뒤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다”며 “외국인 선수 가운데는 댄 스트레일리(롯데 자이언츠), 에런 알테어(NC), 프레스턴 터커(KIA) 등 익숙한 메이저리그 출신들도 포함돼 있다”고 정보를 제공했다. ‘보스턴글로브’는 아예 조쉬 헤르젠버그 롯데 투수 코디네이터와 인터뷰를 해 KBO 리그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AP통신 역시 4월 2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LG의 올해 첫 연습경기 장면을 상세히 전하면서 “두 팀은 2만 석 이상의 관중석을 모두 비워둔 채 경기를 했다. LG 선수들은 ‘코로나19 아웃’이라는 메시지를 모자에 쓰고 뛰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담았다. 실제로 이날 잠실구장에는 AP통신뿐 아니라 AFP와 EPA를 비롯한 해외 통신사 취재진이 찾아와 ‘코로나19 시대의 야구장 분위기’를 스케치하느라 바빴다. 관중이 없는 텅 빈 스탠드와 그라운드에서 하이파이브 없이 뛰는 선수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인터뷰를 하는 국내 취재진의 풍경까지 자세히 소개했다.
AFP통신은 이날 취재 후 ‘야구가 한국에 프로 스포츠로 복귀했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전 세계 스포츠팬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스포츠의 ‘라이브 액션’에 목말라 있고, 방송사들은 과거에 열린 경기 하이라이트 방송에 의존하고 있다”며 “한국은 모든 프로 스포츠를 중단하고 최악의 바이러스를 잘 견뎌낸 뒤 다시 프로야구를 시작하려 한다”고 치켜세웠다. 동시에 KBO가 업데이트한 코로나19 대응 매뉴얼도 집중 조명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