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경우 확진자수가 주춤한 것에 방심해 3월 23일 개학을 강행했다가 집단감염이 잇따르자 4월 8일 다시 휴교령을 내렸다. 싱가포르 상황이 우리 정부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한국의 9분의 1밖에 안되지만 확진자수는 우리나라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학교 집단감염의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동을 자녀로 둔 일하는 엄마들은 당장 피가 마른다. ‘워킹맘’인 한 30대 여성은 “일이냐 아이냐의 문제가 더욱 절박해졌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해결될 단기적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 워킹맘이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다시 한 번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며 “한국이 저출산율 세계 1위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로 부각된 워킹맘들의 고충은 어떤 것일까.
4월 중순, 온라인 개학을 한 초등학생들이 집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베이비시터 구하자니 월급보다 많아
코로나19로 등교개학이 미뤄지면서 맞벌이 부부에게는 요즘 하루하루가 위기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저학년과 미취학 자녀를 둔 워킹맘 A 씨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부부가 번갈아 아이들을 등교·등원, 하교·하원 시키고 학원으로 돌리면서 근근이 버텼는데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니 누군가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졌다”며 “손주를 돌봐줄 부모님이 주변에 계신 것도 아니라 돌봄 아주머니를 써야 하는데 두 아이 돌봄 비용이 230만~250만 원에 달해 엄마 월급과 맞먹거나 때론 넘기도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전에도 워킹맘 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돈은 돈대로 들어가면서 불안하기까지 한 요즘 같아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충동을 자주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또 다른 워킹맘 B 씨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면서 베이비시터(육아도우미)를 구해 첫 월급을 주고 내 월급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실감했다. 내 사회적 노동의 가치에 회의감이 든다”며 “베이비시터를 쓰려면 일이 많아도 급여가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거나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인천에서 초등생 고학년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C 씨는 “아이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출근하는데 할머니가 컴퓨터를 전혀 모르니 아이가 알아서 하게 놔둘 수밖에 없다.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켜 놓고 하루 종일 휴대폰 게임을 하며 누워 지낸다고 들어 속이 상한다. 사이트에 접속이 잘 안되거나 문제가 생겨도 무방비 상태다. 돌봄 아주머니가 있다 해도 학습 도움까지는 어렵다. 온라인 수업은 시간 때우기 정도”라며 9월 신학기제 도입을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개학을 연기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는데 학원들은 그대로 운영한다. 학교보다 더 밀집된 학원에 아이를 보내야 하나 불안하지만 안가면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 더 불안해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초등학생의 온라인 수업은 오전 9시에 출석체크로 시작해 4~6교시까지 이어지지만 온라인 수업 방식이 각 학교의 사정에 따라 다르고 각 반의 수업도 담임교사의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이사 등으로 두 아이가 서로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는 워킹맘 D 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를 돌봐도 두 아이의 서로 다른 온라인 수업을 봐주기가 쉽지 않다. 집에 컴퓨터도 한 대라 일하는 노트북까지 내어줘야 하는 형편이다. 수업이 과제 위주라 수업 성취도를 가늠하는 과제는 훨씬 많아졌다. 결국 학교 대신 온라인 학습을 도와줄 학원에 아침부터 오후까지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사태에서 사교육인 학원의 비중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다.
#회사 어려우니 워킹맘은 더 악착같이
교육부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초등생을 위해서는 긴급돌봄교실을, 미취학아동을 위해서는 긴급보육을 운영하고 있다. 4월 20일 기준으로 긴급돌봄에 참여한 초등학생은 11만 4550명으로 전체 초등생의 4.2%, 긴급보육에 참여한 미취학아동은 15만 6485명으로 전체 중 25.3%에 달한다. 하지만 맞벌이 가정 70% 이상이 최근 보육공백을 경험했다고 토로한다.
등교개학 연기에 따라 초등학교와 유치원 등에서 긴급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로 부부가 모두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가정의 워킹맘 E 씨는 “부부가 둘 다 재택근무를 해도 육아와 살림 부담은 보통 아내에게 더 가중된다. 일주일 정도는 반씩 나누어 집안일과 보육을 같이 했지만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자 남편은 일에 집중이 안 된다며 카페로 출근하고 있다”며 “재택근무에도 성차별이 존재함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로 직장 상황이 안 좋아 지다보니 워킹맘들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워킹맘 F 씨는 “회사가 어려우니 사내에서 어린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의 자리가 더 위태로워졌다. 아이가 아프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아빠보다는 엄마가 반차나 월차를 쓰는 일이 더 흔하다. 직장과 집안일에 대한 부담을 동시에 안아야 하는 워킹맘은 점점 더 상급자로 올라가기는 어려워지는 것 같다”라며 “회사에서 무급휴직을 번갈아 하면서 직책에 따라 권고사직도 이루어지고 있어서 여기저기 눈치가 보인다. 당장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한 아이는 시골 부모님께, 한 아이는 이웃집에 맡기면서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차라리 코로나 걸렸으면’ 눈물겨운 사연까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맘카페에도 워킹맘들의 눈물 섞인 사연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아이디 올망졸맘은 “4월 둘째 주까지는 긴급보육을 하는 유치원에서 차량을 보내줬지만 4월 셋째 주부터는 차량마저 운행하지 말라고 공문이 내려와 자차를 이용해 달라는데, 남편이 자차를 이용해 새벽에 장거리 출근을 하기 때문에 차량이 없어 막막하다. 아침마다 콜택시로 아이를 데려다주고 출근하니 지각을 할 수밖에 없다. 하원할 때는 할머니가 택시를 타고 데리고 돌아온다”며 힘겨워 했다.
아이디 워킥맘은 “아이 봐줄 친인척이 없는 육아독립군인 워킹맘에게 전염병은 피할 수 없는 악재인데 휴가 쓰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교대근무를 할 경우 장기 휴가가 불가피해서 퇴사가 정답이다”라며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 속에서 홀로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거 같아 눈물이 날 때가 많다”면서 “아줌마도 못 구하고 아이를 봐줄 데가 없어 종종거릴 때면 차라리 유증상으로 자가격리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방호복 입고 마스크랑 장갑 끼고 집에서 아이랑 있는 게 더 쉬울 것 같다”고 고백했다.
아이디 김남매맘은 “아기 낳아 출산휴가 중인 여동생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면서도 회사에서 무급휴직 대상자가 될까봐 야근도 마다 않고 당직도 핑계 안대고 섰다. 대기업처럼 유연근무제라도 하면 좀 낫겠다”고 전했다.
댓글을 통해 워킹맘들은 “코로나19가 사라져도 철마다 또 다른 전염병과 독감이 돌 테고,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마다 어린이집에서는 가정보육을 권한다. 워킹맘의 마음 졸임은 아이가 다 클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서글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댓글에선 “이런 글을 쓸라 치면 댓글엔 ‘다 지들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맞벌이면서 왜 징징대’, ‘아줌마들이 일자리 차고 있어 청년실업이 늘어난다’ 등의 악플이 달린다”며 “워킹맘의 보육문제가 여전히 개인의 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고되다”는 토로의 글이 이어졌다.
맘카페의 워킹맘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거나 하나라서 다행’이라거나 ‘현실감각 있었으면 아이 안 낳았다’, ‘돈 모으고 싶거나 일 계속할 거면 아이는 낳지 마라’, ‘대한민국 저출산 1위는 당연한 결과다’, ‘멘탈이 부서져 가루가 될 것 같다’ 등의 과격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고간다. 코로나19로 더 극명해진 대한민국 워킹맘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