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이상설에 휩싸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행보는 24일 현재까지 오리무중이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12일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 4월 15일 김일성 전 국가 주석 생일인 태양절에 치러진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북한 전문가들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이 돌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4월 20일 김정은 건강 이상설 보도가 등장했다. 국내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4월 12일 평안북도 묘향산 지구에 있는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계 시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데일리NK의 보도는 수많은 ‘썰’ 중 하나로 치부됐다.
그러나 4월 21일 상황이 백팔십도 바뀌었다. 미국 CNN이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을 전격 보도하면서부터다. CNN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술 이후 심각한 위험에 빠진 상태”라면서 “이 정보를 미국이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평일 전 주 체코 북한대사. 사진=연합뉴스
4월 22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미·일 협의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을 통치하게 될 수 없을 경우 권한이 모두 김여정에게 집중된다는 내부 결정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일요신문에 “앞으로 김여정 행보는 김정은 신변이상설 진위를 가려낼 중요한 힌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김정은 권력 승계받을 때와 유사” 김여정 행보에 관심 집중).
김여정이 북한 최고 권력 후계구도에서 가장 유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21대 총선 강남갑 지역구에서 당선을 거머쥔 태구민 전 주영 북한영사관 공사는 “김평일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태구민 당선자는 4월 23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은 최고지도자 건강에 이상이 감지되면 그 후계구도를 항상 준비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 당선자는 “얼마 전에 있던 북한 정치국 회의에서 김여정이 공식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김여정 이름으로 공식 담화가 나왔다”며 “만일 김정은이 어떻게 됐다고 할 때 이런 체제(김여정 체제)를 준비하고 있는 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태 당선자는 “지금 북한을 받들고 있는 세력들은 다 60~70대”라면서 “김여정과 거의 30년 차이인 그들 눈에 김여정은 완전히 애송이로 보일 것”이라고 했다. 태 당선자는 “그들(북한 고위 관계자들)은 ‘이번 기회에 우리가 한번 갈아 뽑을 것이냐’는 고민을 분명히 할 것”이라면서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옵션은 김평일이라는 존재”라고 했다.
김평일은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이다. 1954년생으로 한국 나이 65세다. 1979년 주 유고슬라비아 무관으로 발령된 김평일은 그 이후 줄곧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 소재 북한대사관에서 대사직을 역임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평일이 동유럽을 전전한 것은 사실상 권력 구도에서 밀려난 것으로 비롯된 유배 생활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평일은 2019년 11월 40년 유랑생활을 끝내고 북한으로 귀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중국에선 보다 구체적인 ‘설’들이 흘러 나왔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 북한 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이 시술이 아닌 수술을 받았으며, 수술 중 심혈관계 수축으로 48시간 정도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북한으로 중국 베이징 의료진이 급파됐고, 연락두절 상태라는 이야기도 뒤를 이었다(관련기사 [단독] 김정은 치료 위해 중국 의료진 북한 급파? 확산되는 ‘설설’).
중국 의료진 북한 급파설에 등장하는 의사들이 소속된 병원은 ‘푸와이 심혈관병의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푸와이 심혈관병원은 과거 ‘301 병의원’으로 불리던 곳이다. 앞서의 북한 소식통은 이 병원을 “중국에서 심혈관계 수술로는 넘버원(최고)으로 꼽히는 곳”이라고 귀띔했다.
북한 소식통은 “중국 현지 소문에 따르면 송타오 중국 중앙대외연락부 부주임이 ‘푸와이 심혈관병의원’ 의사들을 데리고 북한으로 건너갔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대외연락부는 중국 핵심 권력기관 중 하나로 송타이 부주임은 연락부의 주요 실무를 관장하는 실무 책임자”라고 덧붙였다.
중국 현지에서는 ‘김정은 뇌사설’까지 돌았다. “김정은이 심혈관 수술 도중 뇌기능이 멈춘 상태”라는 내용이었다. 심지어는 ‘김정은 사망설’까지 확산됐다. 4월 23일 중국에선 이와 관련된 내용이 담긴 토막글도 빠르게 퍼졌다. 중국에 거주하는 또 다른 소식통은 “(김정은을) 시술할 때 의사가 너무 떨려 8분이나 시술이 늦어졌다는 중국 현지 보도가 있다”면서 “4월 22일 12시경 김정은이 사망했으며 중국 수술팀이 사망 4분 후에 도착했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4월 23일엔 김대중 정부 초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김정은 사망설’을 언급했다. 장 이사장은 중국에 거주하는 대북 소식통과의 통화 내용을 인용해 “김정은 상태는 심각한 중태에 빠져 사실상 회생 불가능한 사망 단계로 진입했다”면서 “한마디로 의식 불명의 ‘코마 상태’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각종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한·미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에 특이 동향이 없다”는 반응이다. 4월 23일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했다. 상임위원회의 북한 동향 점검 결과 현재까지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이 없다는 게 청와대 공식 입장이다.
4월 23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나는 그 보도(CNN발 김정은 중태설)가 부정확하다고 본다”면서 “나는 그 보도가 부정확한 방송사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본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CNN)은 오래된 문서를 썼다고 듣고 있다”면서 “그 보도는 CNN의 허위 보도”라고 말했다.
4월 22일엔 미 행정부 당국자가 “김 위원장이 지난주부터 원산에 체류했으며 4월 15~20일 사이 걷는 모습이 포착됐다”면서 “그는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를 타지 않았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일부 보좌진과 고위직 인사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평양을 떠난 것으로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중국 당국 역시 조심스런 모양새다. 4월 21일 로이터통신은 중국 공산당 국제연락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월 22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김 위원장 건강과 관련한 보도를 봤다”면서 “보도 출처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했다. 겅솽 대변인은 ‘김정은 건강 상황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구민 당선자는 4월 23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4월 15일은 김일성 생일인데 김정은이 안 나왔다. 이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태 당선자는 “북한 당국이 김정은이 건재하냐 건재하지 않느냐를 빨리 알려야 하는데 아직 북한 주민을 향해서 조용히 있다”면서 “외부에서 (김정은이) 수술 받았다 어쨌다 하는 구체적 추측이 난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아직도 북한이 가만히 있는 것도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덧붙였다.
취재에 응한 복수의 북한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였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은 그동안 최고지도자 신변이상설이 생길 경우 ‘지도자가 건재하다’는 것을 상당히 민첩하게 보여주는 언론플레이를 해왔다”면서 “김정은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김정은 신변이상설을 둘러싼 여러 가지 추측은 계속해서 난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북한 전문가는 “현재 김정은의 정확한 상태를 외부에서 파악할 방법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김정은 행보를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있을 거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