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구단, 연맹, 선수, 관련 종사자들의 수입도 0에 가까운 상황이다. 이에 일부 리그에선 선수나 관계자들의 임금 삭감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실제 현 시대 축구 황제 리오넬 메시는 소속팀 바르셀로나 구단 직원들의 급여 보전을 위해 자진해서 임금의 70% 삭감에 동의했다. 무려 30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이어지는 코로나19 상황에 미디어의 연습경기 취재 또한 ‘거리’를 두고 이뤄지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구단주 돕느니 병원을 돕겠다”
현대 스포츠에서 선수들의 연봉은 수백억 원을 뛰어넘었고 한 경기에 걸린 광고비, 중계권료는 천문학적 수준이다. 일본 J리그조차 10년간 수조 원에 달하는 중계권료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경기가 열리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손해액의 규모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번리 등 일부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중단된 2019-2020시즌이 그대로 종료될 경우 파산에 이를 가능성도 대두됐다.
수입이 줄어들자 구단들은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임금 지출을 줄이기 위해 구단 직원들을 해고하는 방안까지 고안해낸 것이다. 리버풀은 직원들을 해고한 이후 급여의 20%를 지급하고 나머지를 영국 정부지원금으로 충당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사우샘프턴과 본머스도 이 같은 움직임을 취했고 토트넘 홋스퍼는 일부 직원의 일시적 급여 삭감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재정적 여유가 있는 구단들이 과한 대응을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의 뭇매가 쏟아진 탓이다. 영국 축구 전문 언론은 “리버풀은 미국 억만장자가 구단주로 있는 팀이다”라며 리버풀의 움직임에 비판을 가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지 직원 해고나 임금 삭감을 진행하려던 구단들은 그 계획을 줄줄이 철회했다.
반면 선수들의 연봉 삭감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선수 개인이 아닌 구단 차원의 움직임도 있다. 그 선두에는 아스널이 있다. 이들은 선수단 급여의 12.5%를 삭감했고 첼시는 10%를 삭감하며 동참했다. 구단으로선 100억 이상의 비용을 절감하게 됐다.
선수들의 연봉 삭감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바르셀로나는 무려 70% 연봉 삭감을 발표했다.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는 10~20%, 이강인이 몸담고 있는 발렌시아는 18%, 기성용이 데뷔전을 치른 마요르카는 15% 삭감 계획을 밝혔다. 이탈리아 세리에 A와 독일 분데스리가도 마찬가지다. 유벤투스의 연봉 삭감 총액은 12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흐름에 일부 선수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미드필더 토니 크로스는 “임금을 받으면 선수들이 합리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며 삭감보다 ‘전액 수령 이후 기부’ 제안을 내놨다.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도 리그 사무국과 회의에서 연봉 삭감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구단주를 돕느니 병원을 돕겠다”는 것이다.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고액 납세자인 선수들이 연봉을 그대로 받아 정부 재정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는 코로나19로 인해 화상회의로 진행된 긴급 이사회 내용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임금 삭감 ‘거물’들의 입김?
국내 프로축구도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선수단이 아닌 협회와 연맹 측에서 먼저 움직였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4월 8일 “전례 없는 어려움에 부닥친 만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임원은 월 20%, 직원은 10%의 급여를 반납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역시 이에 동참했다. 울산 현대와 부산 아이파크 등 이를 따르는 구단도 등장했다. 이들도 같은 비율로 급여를 반납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수원 FC는 임금 반납 형태로 선수 급여의 10%를 수원시에 기부하기도 했다.
협회와 연맹, 두 구단의 발표에 축구계는 술렁거렸다. 협회와 연맹, 울산과 부산은 각각 사실상 같은 수장이 이끌고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부산 구단주를 맡고 있다. 권오갑 연맹 총재는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으로 울산 구단주다. ‘거물’들의 입김에 축구계 임금 삭감이 한꺼번에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실제 일부 구단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부에선 “삭감이 진행된 측에서 직원들로선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흉흉한 후문까지 돌았다.
이에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가 나섰다. 협회는 공식 성명을 내며 “연봉 삭감 문제에 대해 연맹 및 각 구단 관계자와 공식적인 논의의 장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고 발표했다. 연맹도 “선수협의 연봉 삭감 논의 제안을 환영한다”고 반응했다.
#“선수 동의 없는 삭감 안 돼”
선수협 입장은 “선수 동의 없는 삭감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화상회의로 열린 이사회에서 이근호 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축구계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연맹은 “올해 K리그 매출 손실이 약 575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양측은 한 차례 만남을 가졌다. 선수협 김훈기 사무총장은 “선수협 설립 이후 비공식적 접촉은 있었지만 연맹과 공식적 미팅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손실 규모의 정확한 파악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리그의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대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맹 또한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연맹 관계자는 “결국 임금 삭감을 진행한다면 이를 실행하는 주체는 구단과 선수들이다. 연맹과 선수협의 대화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는 정도”라고 전했다.
이들의 미팅에서 삭감 여부나 그 폭 등 정해진 것은 없다. 김 사무총장은 “손실 규모를 파악하면 임금 삭감 이외에도 다른 방법으로 손실을 최소화할 방안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논의는 이어질 전망이다. 선수들의 개별 의견은 제각각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스타플레이어도 있지만 최저 기준(2400만 원)으로 계약한 저연봉 선수들도 많다. 이들에게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하기에는 구단과 선수 모두 부담이 될 수 있다.
국내 축구계 임금 삭감 관련 논의에 많은 눈길이 쏠리는 이유는 다른 종목에서 기준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는 리그 개막이 지연돼왔고 농구와 배구는 리그가 조기에 종료됐다. 하지만 축구 외 종목에서 임금 삭감 논의는 현재 별달리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임금’은 근로자가 노동의 대가로 사용자에게 받는 보수를 의미한다. 스포츠에서는 경기뿐 아니라 훈련도 노동으로 간주된다. 훈련이 없는 기간에는 임금 지급이 중단되기도 한다. 따라서 임금 삭감과 관련해 더욱 조심스러운 논의가 요구되고 있다. 국내 축구계로 번진 임금 삭감 움직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