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가공식품업계에 변화가 감지된다. 사진은 경기도 안양시에 위치한 오뚜기 공장. 사진=고성준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가정 내 간편식 수요가 증가하면서 B2C 사업 비중이 큰 농심과 CJ제일제당이 수혜를 입고 있다. 하지만 오뚜기는 소스와 면류 등 식자재 제품군 비중이 높고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납품하는 B2B(기업간 거래) 사업 부문이 큰 탓에 경쟁업체들만큼 큰 특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즉석조리식품 시장 점유율 1위인 CJ제일제당은 코로나19 사태로 소비자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가정간편식 매출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국내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월 24일부터 3월 1일까지 간편식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4% 증가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생수와 즉석밥, 라면 등에 대한 수요가 높았고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프리미엄 가정간편식도 잘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뚜기는 해외 전략에서도 경쟁업체들과 비교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랜 기간 미국 시장에 공을 들여온 CJ제일제당은 ‘K-푸드’ 인지도와 몸값이 올라가자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라면 시장 점유율 1위 농심은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달성을 계기로 인기를 누리면서 해외시장에 ‘앵그리 짜파구리’ 등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매출 신장을 이끌었다.
가공식품업의 경우 국내보다 훨씬 더 넓은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성공해야 매출 증대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해외 시장보다 국내 시장을 주무대로 성장해온 오뚜기에 아쉬운 대목이다. 오뚜기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482억 원으로 2018년 1517억 원에서 다소 줄어들었다. 2013년 이후 6년 만에 처음 겪는 감소세였다.
오뚜기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로 심지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로) 둔화가 전망되는 소재식품 부문(외식 수요와 관련 있는 양념류)이 국내 라면 경쟁사 및 간편식 경쟁사 대비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해외시장 비중이 낮다는 점도 한몫한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 다른 관계자는 “CJ제일제당‧오리온‧농심만 해외 매출 비중이 굉장히 높은 편이고 그 외 대부분 업체는 내수 중심의 판매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오뚜기도 해외 수출이 없진 않지만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오뚜기가 지배구조를 개편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사진은 함영준 오뚜기 회장. 사진=박은숙 기자
오뚜기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언급된다. 심 연구원은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오뚜기라면을 종속회사로 전환하면 오뚜기의 영업이익률이 상당 폭 향상될 것”이라고 봤다. 현재 오뚜기라면은 오뚜기의 관계회사인데, 관계회사의 실적은 오뚜기의 연결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는다. 만약 오뚜기가 오뚜기라면을 편입 또는 흡수합병해 종속회사로 전환하면 그동안 반영되지 않던 오뚜기라면의 실적이 오뚜기에 반영돼 영업이익률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오뚜기라면을 종속회사로 편입하면 경영자원을 효율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주회사 밑으로 계열사를 수직구조화시키면 공정거래법에 저촉되지 않고 거래를 수월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신사업을 신속히 추진하고 사업구조에 변화를 주는 데도 수직구조화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오뚜기의 최대주주는 함영준 오뚜기 회장으로 28.91%의 지분을 보유했다. 오뚜기라면의 최대주주 역시 지분 32.18%를 보유한 함 회장이며 오뚜기는 27.65%를 가지고 있다.
오뚜기라면의 대부분 매출이 내부거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지배구조개편의 필요성에 힘을 싣는다. 오뚜기라면의 2019년 매출은 6376억 원인데 이 중 98.8%에 해당하는 6305억 원이 오뚜기와 거래로 발생했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피하고 ‘착한 기업’ 이미지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오뚜기 측은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으며 오뚜기라면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며 “개선을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