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저비용항공사(LCC)들의 구조조정이 앞당겨지고 있다. 김포공항의 국내선 출국장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자구책이라곤 감축뿐
KDB산업은행(산은)과 한국수출입은행은 최근 유동성 위기에 빠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각각 1조 2000억 원, 1조 7000억 원을 금융 지원키로 결정했다. 대형 항공사(FSC)를 지원하면서 LCC에 대해서는 지난 2월 발표한 운영자금 긴급융자 3000억 원 지원 계획 외에 추가 지원은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최대현 산은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4월 24일 열린 간담회에서 “LCC 추가 지원은 현재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산은이 지난 3월까지 LCC에 지원한 금액은 에어서울 200억 원과 에어부산 300억 원, 제주항공 400억 원, 진에어 300억 원, 티웨이항공 60억 원으로 총 1260억 원이다. 산은 관계자는 “5월까지 에어부산에 최대 280억 원 추가 지원하고, 티웨이항공 지원도 검토 중”이라며 “제주항공은 해외 기업결합심사가 끝나면 이스타항공 인수 자금 관련 최대 2000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며 이를 끝으로 LCC 지원은 일단락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원이 끊기거나 지원받지도 못한 LCC들은 존폐 기로에 놓였다. 항공업계는 공급 과잉과 과당경쟁, 일본 보이콧, 홍콩 시위로 2019년부터 아시아나와 이스타항공 매각이 결정되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항공사들마다 국내외 노선 운항을 대부분 중단하면서 업계 재편이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특히 LCC들은 FSC와 달리 매각할 자산이나 계열사가 적고 보유 현금도 바닥나 자구책이라곤 인력 감축뿐이다. 정부 지원이 절실한데 이마저도 받기가 쉽지 않아 시장에 여러 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 LCC는 운항 중인 7개와 취항을 준비 중인 에어로케이·에어프레미아까지 총 9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반기 국내선은 5월 5일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 기간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수요가 빠르게 회복될 전망이지만, 전체 항공시장에서 국내선 비중은 7%로 매우 작다는 점이 약점”이라며 “LCC 업계에서 비중이 큰 일본·중국·동남아의 경우 일본 보이콧은 지속되고 중국은 하늘 문이 언제 열릴 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가 하반기에도 지속되면 항공사 몇 곳이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급과잉과 일본 불매운동에 체력을 소진한 LCC들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일부 도산할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인천국제공항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산한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매물 후보는 어디?
시장에 나올 후보군으론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에어부산·에어서울이 꾸준히 언급된다. 아시아나는 에어부산 지분 44.17%를 보유했는데,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아시아나를 인수하면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HDC의 손자회사인 아시아나가 증손회사인 에어부산의 나머지 지분을 2년 내 확보해야 하므로 부담이 된다. 2015년 아시아나의 단거리 비수익 국제노선들을 물려받으며 설립된 에어서울도 수익성이 낮아 매년 자본잠식을 지속해오다 2019년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다.
허희영 교수는 “정부가 아시아나 인수를 지원키로 한 만큼 현산이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은 낮아졌으나 LCC들을 어찌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에어부산은 국내선, 에어서울은 단거리 국제선, 아시아나는 중장거리 국제선으로 비중이 나눠진 보완관계고 에어부산은 김해공항을 거점으로 자리를 잘 잡아 팔기엔 아깝지만 그렇다고 다 안고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현산은 LCC 비즈니스까지 다 가져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데다 성공적으로 포지셔닝하지 못한 에어서울을 인수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며 “인수하지 않거나 인수 후 바로 재매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티웨이항공도 매물 후보로 꼽힌다. 최 연구원은 “정부가 티웨이 지원을 미루는 것을 보면 기존 플레이어에 통합되길 바라는 듯하다”며 “스스로 유상증자나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거나 진에어에 흡수돼 산은이 추가 지원해주는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신생 LCC들은 체력전에서 버텨내거나 자체 정리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취항한 지 1년도 안 된 플라이강원의 경우 비행기 뜨자마자 악재가 겹쳐 자본잠식이 시작됐다.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의 경우 당장 직격탄은 피했어도 초기 대규모 자본 투입에 따른 장기간 적자를 버텨야 하고 이후 재편될 시장에서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키운 경쟁사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사갈 기업도 없다는데…
LCC 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재무적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에 단순히 연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신생 LCC들이 정부 지원 없이는 버티지 못할 걸 알면서도 자구책을 요구하거나 있을 수 없는 ‘최근 3년간 경영실적’을 지원 조건으로 내건다는 건 알아서 정리되길 바라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문제는 LCC들이 매물로 나와도 인수할 항공사가 없을 것이란 우려다. 항공사마다 여유가 없고, 단기간 회복이 어려운 상황에서 누가 사겠느냐는 것. 같은 맥락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빅3’ 체제로 항공업계가 재편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버티지 못한 항공사들이 매물로 나올 텐데 항공사마다 상황이 나빠 인수 여력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산하 LCC들을 끌어안고, 제주항공도 이스타를 흡수하는 빅3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항공사 하나가 문을 닫으면 수천 명의 직접고용 근로자들이 실직하고, 항공사와 연계된 협력사와 영세사업장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 고용안정 차원에서라도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지금 위기만 벗어나면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허희영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많은 은행이 무너지면서 살아남은 곳은 더 커진 것처럼 코로나가 걷히면 살아남은 항공사는 더 성장할 것”이라며 “항공 수요가 많아질 텐데 공급사가 줄어든 셈이어서 남은 항공사들이 커진 파이를 향유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