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사내유보금을 쌓아둔 대기업이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지원을 요청하자 비난이 나오고 있다. 2017년 4월 1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빌딩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재벌사내유보금 환수운동본부 회원들. 사진=연합뉴스
#사내유보금 중 금융 자산도 상당
코로나19 사태로 수주와 매출이 급감하고 장기 불황이 전망되자 산업계는 앞다퉈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대기업들마저 이에 합류하고 있다. 다만 대기업들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관련 협회 등을 통해 정부에 감세, 금융지원 등을 요청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 지원의 대전제로 자구노력을 꼽는다. 재무구조 효율화나 자산 매각, 오너의 사재출연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대기업들에는 수백조 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사내유보금을 적립하는 것에 대해 대기업들은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곳간만 채운 채 투자와 고용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기업들은 성장과 존립을 위한 사내유보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사내유보금을 활용하지 않고 정부에 손만 벌린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모든 비용, 배당, 상여금 등을 제하고 남은 이익 잉여금을 뜻한다. 현금뿐 아니라 금융상품, 건물, 토지, 설비 등 자산이 모두 사내유보금에 포함된다. 시민단체 민중공동행동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30대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18년 말 기준 949조 5231억 원이다. 그룹별로 보면 삼성이 291조 2357억 원으로 가장 많으며 현대차 136조 3148억 원, SK 119조 389억 원, LG 58조 4523억 원, 롯데 60조 5271억 원 순이다.
사내유보금이 가장 많은 삼성은 금융 자산도 크게 늘렸다. 삼성전자의 2019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토지 자산은 9조 7745억 원으로 연초에 비해 4280억 원 증가했다. 건물은 30조 4696억 원으로 같은 기간 1조 1200억 원 증가했다. 기계장치는 52조 1499억 원으로 다소 줄어들었다. 기타 유형 자산을 합하면 삼성전자의 유형 자산은 119조 8254억 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금융자산은 대폭 증가했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6조 8859억 원, 단기금융상품은 76조 2520억 원으로 10조 4583억 원 증가했다.
30대그룹의 사내유보금 추이. 출처=민중공동행동
#자구 노력 나선 대기업들
일부 대기업은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고 장기 불황에 대비하기 위해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4월 27일 서울 강남의 성암빌딩을 1520억 원에 매각했다. 코오롱머티리얼은 최근 기계설비를 130억 원에 매각했다. 이마트는 지난 3월 서울 마곡도시개발사업 업무용지를 8158억 원에 매각했다. 엘지하우시스는 지난 2월 울산의 직원 사택을 630억 원에 매각했다.
정부의 대기업 지원 명분이 힘을 받으려면 부동산, 건물, 유휴자산 매각 등 해당 기업이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하지만 자구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기업은 유휴자산을 외부로 매각하는 대신 계열사끼리 주고받으며 유동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현대차그룹은 한국자동차산업협회를 통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유휴자산 매각 계획은 없다. 현대자동차가 대주주인 현대로템은 의왕연구소 부동산 중 878억 원 상당의 토지 및 건축물을 현대모비스에 매각하기로 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 등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자산매각은 최후의 단계에서 고려하는 카드기 때문에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사내유보금 역시 현금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시민사회에서는 대기업이 이처럼 어마어마한 돈을 쌓아놓고도 이를 활용할 생각은 없이 위기를 틈타 정부에 과도한 지원 요구와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중공동행동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도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경제 위기를 틈타 상속세 완화, 경영진 배임죄 적용 완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도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