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진중공업 채권단이 한진중공업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서울 용산구 한진중공업 서울사무소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수빅조선소도 떼어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4월 21일 “국내 채권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주주협의회가 보유한 출자전환 주식에 대해 공동매각을 추진한다”며 “대상 주식은 국내 주주협의회 및 필리핀 은행들이 보유중인 보통주 총 6949만 3949주(83.45%)이며 구체적인 매각수량은 추후 확정될 것”이라고 공시했다.
채권단이 매각을 결정한 이유는 최근 한진중공업의 재무가 개선됐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은 2017년과 2018년 각각 2780억 원, 1조 2836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거뒀지만 2019년 306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해 흑자전환했다. 인천 북항부지와 강변 동서울터미널 등 자산을 매각한 것이 유동성 위기 해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진중공업의 부실 원인 중 하나였던 필리핀 자회사 수빅조선소와 관계도 정리됐다.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수빅조선소는 2019년 1월 필리핀 법원에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때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 채무 4억 1000만 달러(약 5030억 원)의 보증을 떠안으면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이후 필리핀 현지 은행들이 수빅조선소에 대한 대출 채권을 출자전환해 한진중공업의 지분을 취득했고, 한진중공업은 현재 수빅조선소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한진중공업은 자산 매각 등을 거치면서 2018년 말 3조 4418억 원이었던 부채가 2019년 말 2조 2252억 원으로 1조 원 이상 줄었다. 한진중공업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한진중공업 경영정상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판단 하에서 매각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진중공업 입장에서도 채권단 공동관리보다 매각을 통해 독자경영을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매각 전망은 엇갈려
하지만 매각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김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영국 조선·해운 통계기관인 클락슨은 코로나19에 따른 충격을 반영해 2020년 발주량 전망치를 기존 추정치 대비 46.2% 하향한 바 있다”며 “교역 중단에 따른 수요 급감으로 운임 하락이 불가피하고, 해운업체들의 신용 리스크 부각에 따른 자금 압박 가능성 등이 그 이유”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업은 불황이지만 한진중공업 건설부문은 라이선스도 많고, 규모에 비해 시장가치가 있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며 “최근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선뜻 인수에 나서기는 어렵겠지만 채권단도 뭔가가 있으니 매각을 추진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진중공업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측은 한진중공업의 경영정상화가 이뤄졌다는 판단에 매각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영등포구 산업은행 본점. 사진=임준선 기자
국내 주요 조선업체들은 한진중공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현재 기업결합을 진행하고 있어 한진중공업 인수에 나서기 어렵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피인수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진중공업 인수 계획은 전혀 없다”고 전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도 “(한진중공업 인수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삼성중공업도 2018년과 2019년 각각 3882억 원, 1조 3154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아 한진중공업 인수전에 뛰어들 여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하고 있는 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다른 업체를 인수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사모펀드(PEF)가 인수 주체로 나설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한진중공업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위원장 김호규) 관계자는 “PEF 등 투기자본이 인수를 하는 건 곤란하다고 본다”며 “PEF들이 회사를 구조조정하고 재매각하는 걸 너무 많이 봤고, 인수 후에도 한진중공업이 지금처럼 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기본적 입장”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프리미엄 ‘눈길’
관건은 역시 매각가다. 업황이 좋지 않아도 매각가가 낮으면 인수전에 뛰어들 곳이 나타날 수 있다. 한진중공업의 장부가인 주당 5000원으로 단순 계산하면 매각가는 3475억 원이고, 현재 주가도 주당 4000~6000원 수준이다. 장부가보다 낮은 금액에 매각하면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일 수 있어 시장에서도 4000억 원 수준을 예상한다.
경영권 프리미엄과 한진중공업이 보유한 부동산 가치를 감안하면 더 높아질 수 있다. 국토교통부 공시지가에 따르면 2019년 1월 기준 한진중공업 소유의 영도조선소 부지 가치만 해도 약 3100억 원이다. 또 부산광역시가 2016년 발표한 ‘2030년 부산도시기본계획 변경’에 따르면 문화·관광시설, 수변상업 및 배후 업무시설 등으로 구성된 ‘영도베이타운’이 영도조선소 인근에 개발될 예정이다.
통상 부동산 거래에서 실제 거래액이 공시지가보다 높고, 인근 지역의 발전 가능성도 큰 만큼 부지의 실제 가치는 더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진중공업 채권단 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부동산 분리매각이나 PEF에 매각하는 방안 등은 일단은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예비입찰이나 실사 시기 등 구체적 일정이 정해진 건 없고, 제안이 들어온 곳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매각 방식 등에 대해서도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