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비서실장. 사진=박정훈 기자
“별들의 향연장인 2022년을 주목하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1 지방선거)는 20대 대선(3월 9일) 직후 치러진다. 차기와 차차기 대권 잠룡들이 일거에 정치판으로 뛰어든다. 변하지 않는 상수는 ‘20대 대선 낙마→6·1 지방선거’의 순차 출마 시나리오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애초부터 봉쇄당했다. 20대 대선과 거리가 있는 차차기 대선주자에게 2년 뒤 6·1 지방선거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으로는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핵심인 우상호 의원을 비롯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종석 전 실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상 가나다순)이 꼽힌다. 여권 한 관계자는 “우상호 의원이 서울시장 도전에 대한 의사를 주변에 피력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우 의원은 2년 전 서울시장직에 도전장을 냈다.
박영선 장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 장관이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도전하지 않았느냐”며 출마 가능성에 한 표를 던졌다. 박 장관이 내리 3선을 한 서울 구로을 총선 출마를 포기하고 중소벤처기업부 수장으로 간 것도 ‘서울시장 플랜’과 무관치 않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박 장관 지역구는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윤건영 당선자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들과는 달리, 추 장관과 임 전 실장은 차기 대선으로 직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당 대표를 지낸 추 대표가 급이 맞지 않는 법무부 장관직을 수락할 당시부터 여의도 안팎에선 ‘검찰 개혁 완수→차기 대권 직행’ 플랜이 흘러나왔다. ‘조국보다 더 센’ 추 장관이 인사 단행을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손과 발을 자르자, 이 같은 관측에 힘이 더 실렸다.
신친문 시대를 연 임종석 전 실장도 차기 대권 잠룡으로 꾸준히 거론된다. 다만 임 전 실장은 차기 서울시장 도전에 대한 권력 의지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임 전 실장이 서울시장에 대한 애착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임 전 실장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다면, 포스트 박원순 구도는 ‘임종석 vs 우상호 vs 박영선’ 삼국지로 정리된다.
관전 포인트는 ‘86그룹 내 교통정리’다. 21대 총선을 통해 친문계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부상한 86그룹은 2018년 6·13 지방선거 전부터 ‘포스트 서울시장’ 플랜을 가동했다. 86그룹 현역 의원 중 1명이 서울시장으로 이동하고 운동권 그룹 2세대가 그 현역 의원 지역구를 이어받는 게 포스트 서울시장 플랜 핵심이다.
실제 86그룹 중 일부는 19대 대선 당시 박원순 캠프에 합류했다. 박 시장은 86그룹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선주자 지지도가 제자리걸음을 걷자, 중도 사퇴하고 전례 없는 서울시장 3선에 올랐다. 박 시장 임기가 마지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86그룹으로선 2년 뒤가 서울시장 자리를 꿰찰 기회 중 기회다.
하지만 임종석 전 실장과 우상호 의원이 교통정리에 실패할 경우 86그룹 분화는 불가피하다. 친문계에 이어 86그룹도 각자도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는 세 규합에 능하지 않은 86그룹에는 치명상이다. 다만 향후 당내 역학구도에 따라 ‘임종석 대권·우상호 서울시장’으로 역할 분담에 나설 수도 있다. 이 경우 86그룹은 2022년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보인다.
변수는 ‘친문계와 86그룹’의 관계설정이다. 현재 친문 직계가 지지하는 서울시장 후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별들의 전쟁판이 펼쳐지는 국면에선 친문계도 특정 후보를 옹립하면서 서울시장 판을 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86그룹은 친문계와의 관계 설정에 따라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한 친문계 인사는 “아직 시간이 2년이나 남지 않았느냐”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다만 당 안팎에선 6·1 지방선거가 20대 대선 3개월 뒤에 열리는 만큼, 친문계 대권주자와 함께 차차기 후보를 키울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박영선 장관. 사진=박은숙 기자
친문계 옹립 1순위 후보는 임종석 전 실장이다. 임 전 실장은 운동권 그룹에 속하지만, 동시에 친문계와 박원순계로도 통한다. 운동권 그룹인 임 전 실장은 친문계와 박원순계로도 분류된다. 그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초대 비서실장에 오르면서 신친문 부상을 주도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직에서 내려온 직후인 지난해 1월에는 청와대 아랍에미리트(UAE) 특임 외교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임 전 실장의 당내 파괴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정치권 안팎에서 임 전 실장 파괴력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그는 당 최대 주주인 친문계와 함께 박원순계의 지지를 끌어내고 86그룹의 표를 갈라치기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다. 3년 전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활동한 한 당직자는 ‘캠프 좌장이 누구냐’는 질문에 “당연히 임종석”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당내 권유를 완곡히 고사하고 총선 불출마를 한 점도 플러스요인이다. 임 전 실장은 총선 불출마에 대해 “이번에는 좀 저축해둔다는 생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두문불출하던 그는 4·15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깜짝 등장했다. 총선 격전지였던 서울 광진을과 동작을의 고민정·이수진 당선자 등을 지원 사격했다. 하지만 낮은 대중성은 임 전 실장의 약한 고리다. 야권의 운동권 프레임과 친문 패권주의 프레임 등도 임 전 실장이 넘어야 할 산이다.
우 의원의 강점은 ‘검증된 리더십’이다. 그는 김종인 체제 당시 원내대표를 맡아 당내 갈등 조정 및 대야 협상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 의원 측 관계자는 “우상호 리더십으로 86그룹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원내대표뿐 아니라 당 최고위원과 선거 대변인 등을 통해 전략가의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우 의원 역시 약한 대중성에서 나오는 낮은 중량감은 약점으로 통한다.
박영선 장관 강점은 ‘정책적 역량’이다. 박 장관이 작은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을 수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저돌적인 강공 드라이브도 강점으로 통한다. 여의도 정치권 인사들이 박 장관을 규정하는 말도 “그 누가 말릴 수 있겠느냐”다. 이런 이유로 개각 때마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해 중소상인들은 “박영선만이 대기업 일변도 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며 BH(청와대)에 그의 임명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박 장관 약점은 당 안팎의 ‘비토 기류’다. 박 장관은 당 내부에서도 적대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박 장관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올랐을 때 “친문계가 밀어내려고 추천한 게 아니냐”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렸을 정도다. 이에 박 장관 측 관계자는 “소신이 때때로 강성으로 비치는 것”이라며 “박 장관은 합리적 리더십 소유자”라고 반박했다.
차기 서울시장 삼국지 마지막 변수는 ‘차기 대권주자’와 얽히고설킨 먹이사슬이다. 여야 복수의 관계자들은 차기 대선 잠룡과 차기 서울시장 후보자들이 짝짓기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했다. 예컨대 이낙연 당선자와 임 전 실장이 차기 대권과 차기 서울시장 후보자로 동반 출격, 세몰이를 같이 하는 식이다. 친문계에선 ‘이낙연·임종석’ 카드를, 비문계에선 ‘이재명·박영선’이나 ‘이재명·우상호’ 카드를 각각 내세우는 시나리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차기 서울시장이 ‘차기 대선주자에게 달렸다’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2022년 대선·지방선거 동시 실시’가 현실화할 땐 차기 대선주자와 서울시장 득표율의 상관관계는 더 커진다.
그러나 이 같은 복잡한 셈법은 동시에 딜레마다. 친문계가 ‘이낙연·임종석’ 대신 다른 카드를 택할 땐 차기 대권 잠룡과 서울시장 후보자 간 셈법은 고차 방정식에 빠진다. 경우에 따라 한쪽이 불명예 퇴진할 땐 러닝메이트도 ‘동반 침몰’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여권 내부에선 2022년 두 운명의 주인공도 문심(문 대통령 의중)과 권력 디자이너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판 그리기에 따라 결정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2년 뒤 별들의 전쟁의 주인공도 문 대통령과 친문계 ‘손바닥 안’에 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