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김용범 CP와 안준영 PD가 프로듀스 48 제작발표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김용범 CP와 안준영 PD 등은 지난해 7월 방송된 ‘프로듀스X101’ 생방송 파이널 경연에서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유료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한 혐의를 받아왔다. 이에 수사가 시작됐고 11월 이들은 구속됐다. 이들은 수사 기관에서 이미 조작 사실을 자백했다. ‘프로듀스X101’ 마지막 방송 시점으로부터 약 10개월, 구속 후 약 6개월이 지나는 동안 공판이 이어져 이제 선고까지 단 한 번의 재판만을 남겨두고 있다. 다음 공판에서 검찰 측 구형이 예정돼 있고, 그 다음이 바로 선고 공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프로듀스 재판의 핵심 쟁점, 즉 김용범 CP와 안준영 PD의 혐의는 네 가지다. △문자 투표를 조작해 CJ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 △프로듀스 시즌3와 시즌4가 문자 투표를 받아두고 이를 조작했기 때문에 받는 사기 혐의 △안준영 PD가 기획사들로부터 접대 및 부정한 청탁을 받고 순위를 조작했다는 혐의(배임수재)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업무 방해와 사기 혐의 그리고 안준영 PD의 김영란법 위반 등 세 가지는 이미 자백한 바 있다. 반면 자백이 이뤄지지 않아 핵심 쟁점이 된 부분은 배임수재 혐의로, 관건은 부정청탁이 있었느냐 여부다. 4월 27일 공판에서도 부정 청탁이냐, 아니냐를 놓고 검찰 측과 변호인단이 격하게 충돌했다.
4월 27일 검찰 측에서는 기획사 관계자를 불러 이를 지속적으로 따져 물었다. 검찰 질문의 핵심은 술을 접대한 사실이 결국 순위 조작 목적 아니냐는 거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기획사 관계자들은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은 ‘안 PD와의 친분으로 술을 마셨지 순위를 부탁한 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가운데 한 대형 기획사는 재판에 나와 청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형 기획사는 최종 투표에서 청탁을 통해 굳이 프로듀스 멤버로 데뷔시킬 이유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최종 프로듀스 시리즈 데뷔 멤버가 되지 않아도 대형 기획사인 만큼 자신들이 데뷔시켜도 충분히 성공시킬 수 있었다는 맥락이었다. 그러나 이런 증언들이 어느 정도 효력이 있을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김 CP와 안 PD가 순위를 정한 방법이 재판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검찰 측이 “김용범 CP가 한 명, 한 명 호명하면 안준영 PD, 이 아무개 PD가 의견을 말해서 정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 CP는 “이 PD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고 방송은 120분이지만 나는 그보다 30분에서 40분 더 긴 영상을 보고 멤버를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 측이 다시 “시즌3·4 문자 투표는 이미 순위를 정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지 않았느냐”고 묻자 김 CP도 “문자 투표는 의미가 없었다. 다만 온라인 투표 결과를 참고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재판에서 소위 ‘PD픽’(PD가 원하는 멤버에 방송 분량을 일부러 많이 줘 밀어주는 것)이 실제로 있었느냐를 따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PD픽이 존재한다는 입장은 유일하게 프로듀스 시즌1에서 시즌3까지를 담당한 박 아무개 작가가 주장하고 있다. 박 작가는 안준영 PD가 메인 PD로서 영향력이 있어 소위 PD픽이 존재한다는 것처럼 설명했다.
진짜 순위가 공개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졌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사진=디시인사이드 프로듀스X101 갤러리 캡쳐
반면 다른 제작진은 PD픽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프로듀스 시리즈를 같이 제작했던 한 PD는 “PD들이 워낙 많고 어떤 연습생 내용을 넣을지 의견이 갈리면 결정할 때 다수결로 정했기 때문에 방송 분량을 특정해서 몰아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프로듀스 시즌4를 담당한 이 아무개 작가도 “PD픽은 없었고 특정 후보를 밀어주는 편집이나 지시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앞서의 PD는 “안 PD가 프로그램 성공 압박감에 많이 부담스러워 했다”고 조작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어 “PD와 연예기획사는 일방적 갑을관계가 아니다”라면서 접대 배경은 친분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제 사실상 검찰 구형과 법원 선고만 남은 가운데 김용범 CP와 안준영 PD 측 형량이 어느 정도일지 주목되고 있다.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인 데다 가장 중요한 배임수재 혐의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어 결론 내리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문자 투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순위를 정한 사기 부분은 투표로 모은 금액 전체를 유네스코에 기부해 제작진의 재산상 이득이 없어 처벌 수위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문자 투표를 조작해 CJ ENM의 업무 방해를 했다는 혐의도 무거운 형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김영란법도 김영란법만으로는 실형을 산 전례가 없기 때문에 엄벌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배임수재가 인정되느냐다. 청탁을 통해 순위조작을 기대했는지, 아니면 이들 주장처럼 친분으로만 만났는지가 형량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따라서 순위 조작을 지시한 김 CP보다는 직접적인 접대를 받은 안 PD 처벌이 무거울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략 실형 1년 정도로 예측된다. 대중의 관심이 쏠린 사건인 만큼 솜방망이 처벌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집행유예 가능성은 적다는 게 중론이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실형인데 1년보다 적게 나오면 변호인이 변호를 잘한 것이고, 1년보다 많으면 검찰 측 승리로 봐야 한다”면서 “이 사건은 대중의 관심이 없는, 일반적인 회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집행유예 사건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재 여론이 집중된 사건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일부 팬들이 기대했던 진짜 순위, 소위 찐순위는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이 순위 공개에 부정적인 것으로 보이고 있고 재판부에서도 굳이 판결에 영향이 없는 순위 공개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과 변호인 측 모두 진짜 순위가 공개됐을 때 순위에 관여되지도 않은 연습생들이 악플 등으로 피해를 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