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부정을 했다는 건데?” 내가 되물었다.
엄상익 변호사
“우리는 구경꾼이지만 선거판 후보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의 전쟁이잖아? 부정이 있었으면 그 사람들이 가만있겠어? 그런데 왜 그 사람들이 조용할까?” 그는 순간 멈칫했다. 그가 잠시 후 한 단계 낮아진 톤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아, 이건 통계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거야.”
“낙선한 후보들도 통계학을 전공한 여론조사팀이 옆에 있었을 거 아니야? 자기네들의 예측과 선거결과가 다르다면 확인해 보지 않았을까?”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는 방향을 돌렸다.
“우리나라 전자개표기가 문제가 있대. 너무 보안이 허술하다는 거야. 우리나라 전자개표기를 사간 이라크에서도 선거부정이 있었대. 미국에서도 그랬고 유엔은 각국에 한국산 전자개표기를 쓰지 말라고 권고했대.” 이번 선거는 부정선거여야만 하는 게 그의 인식 같았다. 다음 날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여보, 여고 동창생한테서 카톡이 왔는데 부정선거를 보고 침묵하는 건 패배주의에 젖은 인간이라는 거야. 내가 아주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야.”
선거는 수많은 사람의 눈이 불을 켜고 본다. 당사자인 입후보자뿐만 아니라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 참관인, 경찰관, 우편집배원 등 수많은 사람들이 공모를 해야만 부정선거가 가능하다. 그게 가능할까. 투표지와 발표된 결과 수치를 바로 확인해서 오류를 잡을 수도 있다. 선거에서 사용되는 컴퓨터 시스템은 계산 기능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는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선뜻 믿기 힘들었다. 그들이 피리를 분다고 꼭 춤을 출 필요도 없다. 우리 사회는 항상 진실이 두 개였다. 허위도 다수가 지지하고 목소리를 높이면 진실로 둔갑했다. 광우병 사태 때였다. 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는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게 진실이었다.
한 젊은이가 “그렇지 않아요, 광우병에 걸리지 않습니다”라고 외쳤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 청년을 욕하고 침을 뱉었다. 후에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허위를 만든 사람들은 법적인 제재를 제대로 받지 않은 것 같다.
요즈음도 박원순 시장 아들의 소재지를 알려주면 보상금을 준다는 현상광고를 붙인 트럭이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돌아다닌다. 시장이 신체검사를 조작해서 아들의 병역을 기피시켰다는 주장이다. 나는 그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는 변호사의 입장이었다. 200명가량의 기자를 모아놓고 연세대학병원에서 공개검진을 하게 했다. 최첨단 의료기계로 과학적인 검사를 하고 여러 명의 권위 있는 교수가 시장 아들을 직접 진찰했다. 그리고 의학적 진실을 발표했다. 나 역시 진실을 봤고 법정에 가서 증언도 했다. 그래도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여러 명의 의사뿐 아니라 의료기사나 직원 등이 모두 공모해서 조작했다고 의심했다. 직접 진찰한 의사보다 안 본 의사들의 목소리가 훨씬 높았다. 그들은 공개검진을 또 하자고 한다. 또 하고 또 한다면 믿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거짓이 이기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거짓에 능한 사람이 정치판에서 당선이 됐다. 거짓과 술수를 잘 쓰는 악인이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소비자를 잘 속이는 장사꾼이 돈을 버는 사회였다.
그런 거짓들을 진영논리가 보호하기도 한다. 우리 편이면 거짓도 진실로 믿어주고 적 편이면 진실도 거짓으로 매도한다. 우리들의 눈에는 비늘이 끼어 있고 마음은 불신병으로 닫혀있다. 비늘은 털어내고 마음은 열어야 한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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